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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성추행한 직장상사를 고소하고, 합의했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7521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2Rpa
추천 : 9
조회수 : 1694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06/19 2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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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냥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혹시나
고민게시판에 글을 쓰다 지우다 하는 저 같은 분이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에 익명으로 글을 써봅니다.
지난달 초 성추행을 당하고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어요.
드디어 어제 종지부를 찍었는데, 사실 잘한 건지는...

이십대 중반 첫 직장에서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중입니다.
작년 종무식에 술버릇이 안좋아 제게 실수를 하신 분과
같은 곳에 발령을 받아 항상 조심하는 마음으로 지내다
결국 또 같은, 더 심한 짓을 한 상사를 고소했어요.

실수라고 할 수도 없이 '예쁘다, 섹시하다, 유혹적이다'
라는 말을 들었고, 허벅지 안쪽과 가슴에 터치가 있었어요.

밤에 얼마 못자는 잠을 자다가도 매일 한두 번을 깼어요.
어버이날 혼자 저는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했어요.
그리고 딸아이가 있는 그분께는 처벌 말고는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조용히 처리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제 눈을 피하고 변명 몇 마디를 하던 상사는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그 저녁 죽어라 연락을 시도했고,
그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회사의 인사담당자 한 분에게만 알려 정직 처분 요청했고
검찰로 송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저 잘 처리되기만을 기다리다 조정위원회에 출석해달라
요청을 받아 뭣 모르고 어제 다녀왔습니다.

만 스물넷의 나이에 곱상한 외모가 할아버지 위원들에게
오히려 좋은 점이 되었는지 의문이지만, 잘해주시더군요.

그저 처벌을 원한다, 나는 합의에 대해 알아본 바가 없다
하니 생각보다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없을 거라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아직도 그 사건에 시달리는 저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분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건진 모르겠어요.

저는 회사에 일파만파 퍼트리거나, 제가 뭐라고 가정이 있는
피해자의 밥줄을 끊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고 말씀드렸고
조정위원분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저를 돌려보내고는
피해자에게 금액적인 부분을 물어보시고는 알려주셨습니다.

처벌은 미미한 수준에 거칠 것이고, 보통 어느 정도의
선에서 합의가 되며,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셨어요.

그때 저는 '아, 내가 겪은 일이 사회에서 그렇게 중대하고
큰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고, 다 두고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져서 억지로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했어요.

피의자가 버겁다는 그 금액을 내시거나, 처벌을 받거나
선택을 하시라는 말을 하고 다시 조정실을 나왔습니다.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고 저를 부르시더니, 합의를 한답니다.
버겁다는 그 금액으로 합의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난생 처음 간 검찰청에서 그렇게 쉽게 처리가 될 거라고도...

처음 들어갈 때 마음가짐은 무조건 처벌! 이었던 제가
합의를 하고 나왔다는 것에도 사실 부끄러움이 컸어요.
전혀 현실적으로 생각을 안해봤던 것 같아서요.

오늘 조정실에서 합의금 확인하시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회 초년생인 제가 아등바등 모으기도 힘든 그런 금액이
제 통장에 찍혀 있네요. 기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곳에 발령난 이후에 제 일을 맘껏
사랑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텐데, 연고 하나 없는 곳
여기서 참 속앓이만 했구나 싶습니다...

합의금으로 정말 많은 것을 할 수는 있겠으나,
아직은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그냥 묵혀두려 해요.

아직 후임자가 들어오지 않아 하루에 한두 번은 마주치는
상사가 너무 징그럽고 싫어서 괴롭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일이기에
더는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하고, 털어놓으려 이 글을 쓰지만
이 사건을 겪으며 피해자인 제가 너무 많은 걱정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더니, 꼭 맞는 말은 아닌가봐요.

그래도 어떤 방향으로든 마무리가 되었으니,
오늘은 일찍 잠들어 보려고 합니다. 내일 또 일을 해야하니.

어떤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써내려오니 넋두리스러운
글이 되어버렸지만, 잘했다고 한 마디 해주는 분이라도
계시다면, 더욱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생각보다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음 속에 품고 묻어두겠다 생각만 하지 않으면요.

당초 여름이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겠거니 하고 온 게
늘고 늘어 겨울까지가 되었는데, 잘 견뎌보려 합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지... 힘들 때 이 글 보면서 곱씹고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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