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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을 마지막으로 여기에 남겨보고 싶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770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콜라먹는아이
추천 : 3
조회수 : 1391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9/05/31 06:16:30
뮌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내 흔적이란걸. 사람은 포기하면 편해지는데 포기를 하지못해서. 항상 힘이드나봅니다.

기억의 시작이라고 하면 아주아주 어릴때부터지만

제 인생은 7살쯤 부터 시작한다고 될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남부럽지않게  살았습니다. 7살짜리 꼬마 방이 따로 있었고 게임기와 게임기용 티비가 제 방에 따로 있었고. 집에는 매우 큰 어항이 있어 아버지와 주말마다 물을갈아주던 기억이 나니까요..

아버지가 잘 하던 세차장을 팔고 엔진오일 사업을 시작했다가 급속히 망했고. 부도로 집에 빨간딱지거 붙자. 불꺼진 안방에서 엄마가 흐느끼며 울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얼마간 저는 외가집에 맡겨졌고 학교다니는 누나만 부모님과 지내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1학년이 되기 전 날 부모님과 다시 살수 있었고 제 방보다도 작았던 단칸방에 네명 가족이 살았죠. .

2.3년만 고생하고 나가자던 그 방에서 무려 10년을 살았습니다.

10년도 재개발때문에 쫓겨난거죠.. 

그사이에 아버지는 빚을 다 갚기만 하면 또 되지도 않을 사업을 벌입니다. 김치냉장고 사업. 길거리 치킨집. 생선장사. 과일장사. 다 망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때 자동차부품사업을 한다고 꽤 큰돈을 빌리곤 운영하다. 엄마가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불쌍한 우리엄마. 집안살림 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자들도 하다 도망간다는 철근공장에서 10년가까이 일만했는데 안아플수가 없었죠..

가난했던 형편상 보험도 없어 헐값에 공장처분하고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어머님 치료비로 사용했고.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완쾌하셨지만

집에는 2002년 기준 1억원이 넘는 빚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이 이렇다 보니 저는 자연스럽게 성공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집안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데다

히키코모리 누나를 대신해서 집안에서도 저에게만 압박이 들어왔었습니다. 

꽤 괜찮은 지방국립대를 졸업하기 전 중소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대기업을 썼지만 인적성에서 떨어지고. 면접에서 떨어졌기때문입니다. 집안에서는 실망감이 컸었죠..

동기들은 취업재수한다고 하지만 저는 여유가없어 중견기업.중소기업 써서 합격을 했고. 돈을 쫓아 급여가 많은 중소기업으로 갔습니다.

말도안되는 엄무량에 말도안되는 지시들. 대졸이면 4년 경력자랑동급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업무지시를 내리고 사회초년생인 저는 버티고 버텼습니다. 

스트레스로 위에 구멍이 나고 ..손끝이 마비가 와도 참고 참았습니다.

당시 집에서 돈버는게 저 하나 뿐이라 저까지도 일을 그만두면 다들 굶어죽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월 260받아서 집에 160 만원. 보내고 100 만원으로. 월세.교통비.식비.생활비.공과금.학자금대출 다갚아나갔습니다.

결국 이회사에서 오래버티지 못하고.

급여가 더 적은 중견기업으로 옮겼고. 기숙사제공이라

집에는 그래도 전처럼 돈을 보낼수 있었죠. 

그때는 그래도 내가 우리집을 먹여살린다ㅈ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이래선 내 삶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주식에 잠깐 손댔습니다. . 엄청난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의 생활비에 나마 보탬이 되고자 했던  것 이였으나. 완전 망했고...

그러다가 빚만 잔뜩지게 되었고 회사로 독촉전화에 방문추심까지..

회사를 더이상 다닐수 없어 거제도의 조선소 까지 갔었습니다.

빚갚기도 벅찼는데 집에서는 생활비를 왜 적게 보내냐 자꾸 집에 독촉온다 왜 넌 그모양이냐 이런반응이였습니다..

2년을 넘게 집에 생활비 대고 가족들은 다 쉬고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집에 올라와 가족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나 너무 힘들다.. 내 또래 친구들은 결혼준비다 뭐다 바쁜데

난 가족들 먹여살리는 기계가 된거 같다라고. 나도 사람답게  살고싶다 하니. 니가 빚진거 왜 우리한테 그러냐 누가 주식하라고 했냐?

그 얘기듣고는 다음 날 낮에 가족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자살을 기도했었습니다..

집에 있던 신경안정제 300 알을 털어넣고 방에 누웠고 이내 죽을듯 잠이 쏟아졌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지옥같은 현실이 그대로 였습니다. 6일이나 혼수상태에 빠졌고 중환자실이였습니다.

능력없는 가족들이 아닌 외가 친척들의 도움으로 퇴원한 후 가족들에게 그동안 힘들었던 점을 털어놓자 또다시

가족들은 니가 책임질일이다 우리는 모른다 라는 자세로 나와

집을 나오게 되었고 이렇게 떠돌게 되었습니다.

이젠 저는 가족도 없는 혼자 입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발버둥도 쳤었습니다.

캐치미 이프 유캔 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마리의 생쥐가 우유찌꺼기를 담은 통에 빠졌다 한마리는 포기하고 익사 했지만 다른 한마리는 미친듯이 발버둥을 쳐 버터로 만들어내 통안에서 나와 살았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두번째 생쥐처럼 살고자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익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한테 한 줄기 빚이 올수 있을까요??

적어도 이번 생에는 힘들것 같네요...

뭘하든 안되는 쪽으로만 흘러가니 더 이상은 버틸기운조차 남지 않았네요...

뭐하러 사냐..  장기기증 지원이라도 해놓고 죽고싶네요.

쓸데없는 목숨이지만 남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일전에  저를 도와주셨던 분께서 저를 다시 한번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어제부터 통틀어 밥은 처음 이였네요.

찜질방이라도 가서 쉬라고 도와주셨는데 스르르 잠들었을때 깨지않기를 기도하며 잠을 청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일어서보려고 노력했는데 또 쓰러지게 되니 두배로 더 힘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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