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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게시물ID : gomin_17746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WZta
추천 : 1
조회수 : 32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10/16 03:20:51

스물여덟살입니다. 빚이 천만원 있고, 몇 년째 다달이 이자만 내고 있습니다. 

휴대폰 요금이 몇 십만원 밀려 있고, 월세도 두 달치 밀려 있습니다. 밥 해먹을 돈도 없어 굶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되는 줄 알면서 몸도 마음도 움직여주질 않아요.

갖은 병으로 10년째 정신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질 못해 약도 못 타온지 오래 됐습니다. 언젠가 의사가 제 케이스를 자신의 책에 써 올린 적이 있습니다. 잠들기 전 떠올리며 걱정하는 환자들 중에 늘 제가 있다고, 이곳에서 저를 끌어내주려 애쓰지만 저는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몇 년째 저를 붙잡고 노력하는 주치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아버지는 저만큼 가난한 자영업자입니다. 어머니는 쉰이 넘은 나이에 공사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습니다. 

저는 아직 잘 버티고 있습니다. 버틸 수 없는 상황들조차 버텨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버텨내겠지요. 하지만 언제 어디서 터져버릴지 몰라 제 스스로가 무섭습니다. 제 모든 에너지를 삶을 버티는 데에 끌어쓰고 있습니다. 

얼마전 모르는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 삶을 무가치하게 써보고 싶었어요.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습니다. 돈을 받으면 이 잠자리가 가치 있는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참 묘해서, 기회가 된다면 모르는 사람들과 한 번 더 관계를 가져볼까 해요.

오늘은 종일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문득 치킨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어 한참을 웃었습니다. 마음은 이리도 공허한데 육신은 배고픔을 느낀다는 게 우스웠고, 무슨 상상 속의 음식처럼 치킨을 떠올린다니 그것도 너무 우스웠어요.

호들갑 떨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오늘 떴던 해가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요.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에 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티비 속에서 봤던 넓은 사막같은 곳에 던져져 사자의 밥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예요.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유난스럽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게 조용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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