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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보같아서 속상하다..
게시물ID : gomin_17791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mRkY
추천 : 6
조회수 : 68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0/04/09 23:19:43
24살.

남들 다 그렇다는 흔한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많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엔 두분 다 잘 나가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들을 다니셨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아버지는 영업팀으로.

그러나 아버지가 회사를 나가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흙수저로 가라앉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온통 잿빛같았다.

빚쟁이들이 집을 찾아와 시도떼도 없이 문을 두들겨 어머니가 두려움에 찜질방에 도시락을 싸들고 우릴 데려가 며칠 머물려고 하기도 했었고, 어릴 땐 그게 쪽팔리는 건 줄도 모르고 찜질방 비상구같은 문으로 골목길에서 몰래 도시락을 먹고 며칠 더 머물기도 하고 그랬다.

호프집에서 일하셔서 호프집 안에 조그만 직원방에 우릴 데려다놓고 밥 먹고 재우고 씻기고 학교를 보내기도 했다.

그 힘든시절을 견디고 버티며 아버지로부터 돈을 내놓으라고 매일같이 싸우고 빚쟁이로부터는 우리를 감싸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난 눈물이 날 것 같다.

홀몸으로 집을 떠나던 어머니.
정말 아무것도 들고가지 않으셨다. 

지금도 어머니는 생각만 해도 펑펑 울게 될 정도로 내가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내가 잘못한 건도 아닌데. 그냥 다 죄송스럽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머니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아버지와 만나지 않게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나 역시 부모님의 이별, 갑작스런 집안일, 잦은 이사 등으로 왕따도 당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해 학창시절을 남들은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떠들 때, 마냥 웃지 못하고 쓴웃음 지으며 넘기지만,
그런 못난 나도 좋아해주고, 계속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에게 나는 요즘도 먼저 연락하고 받은만큼 잘해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머니와 어릴 적 계속 같이 못 산게 한이 되어서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24살 징그러운 어른이
엄마한테 애교부리고, 계속 옆에 있으려고 취업도 지금 못할 것 같아 가게일을 도우며 살고 있다.

취업이야 나중에라도 하면 되지만 지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 같아서.

이럼에도 물론 불안감이야 다 있다.
이 나이 먹도록 가게일이나 하고 제대로 된 스펙도 없고 남자친구는 커녕 연애 한번 못해보고 어른구실 할 수 있나 나중에? 남들은 뭐하고 뭐한다고 다들 스펙쌓고 취준하기 바쁜데

나 좋다는 남자들도 의외로 몇 있었고, 이런 나라도 들어오라고 해주는 기업들이 있어서 일도 몇개월 해봤지만 엄마랑 같이 있고싶어서 도시도 버리고 시골로 들어와 가게일을 돕고있다.

코로나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라 내가 인건비 받을 걸 받지 않고 돕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대고 인건비를 안 준다고 너무 부려먹는다고 농담처럼 이야기 하면 엄마가 그래 우리 딸이 최고지~ 그럴 줄 알았는데
엄마가 그걸 농담처럼 듣지도 못하고 진심으로 미안하고 속상해서 화 내시는 걸 보고는 다시는 그런 말도 안한다.

내 생각보다 엄마는 나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항상 맘에 담아두고 한이 되셨구나 그때 알았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었다.
1500만원.
어머니가 피땀처럼 흘려 남의집 가게살이를 하며 벌어 모은 돈이다. 

사실 어머니는 강해보이지만, 마음이 여리셔서 젊을 적부터 우릴 키울때도 돈을 많이 떼이셨다.
젊을 땐 회사 후배에게 5000만원.
그 후 나와 같은 초등학교 친구 엄마에게 몇천만원.
결국 그 친구엄마는 감방에 들어갔는데, 돈을 갚을 능력도 없고 민사재판같은 게 복잡하셨던 엄마는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돈을 다 잃으셨다

그렇게 잃으면서도 끝까지 엄마는 누군가에게 계속 돈을 빌려주고 계셨다.

내가 너무 속상했다.

아는 지인 둘한테 200씩. 아버지한테 또 1500만원 전재산을 털어준거다.

이미 젊을 때 결혼했을 때 날 키울 때 다 데여놓고
또 돈을 다 빌려주셨다.
엄마는 아빠가 그렇게 하면 나에게 2000만원을 더 얹어주기로 해서 그랬다고 했다. 나한테 해준 게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오늘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 또한 그 사실 때문에 아빠에게 며칠 째 그 돈을 달라고 전화를 하고 울면서 빌다가 오늘은 쌍욕을 던졌다.
아빠는 적반하장으로 자신이 큰소리를 치며 어디서 가시나가 쌍욕이냐고 그랬다. 너 장례식장에서 내 얼굴 보기 싫으면 이번에야말로 돈 주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자기 장례식장에 초대도 안 할거라 그러더라?
아니, 다 늙은 니 장례식 말고. 내가 장례식 주인공이라고. 내 얼굴 사진으로 보고 장례식장에서 서로 얼굴 보게 되기 싫으면 제대로 갚으라고.

엄마가 약 먹고 콱 죽어버리겠다느니 심란해서 가게일이 손에 안잡힌다느니 그러면서 오늘 방에 들어가서 울어버리는 모습을 보니 나도 엄마에게 그 돈을 어떻게 찾냐고 따지고 일단 기다려보자고 계속 얘기하다가 엄마가 울어버리시니 그 모습에 나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도저히 아빠에게 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6일까지 처음엔 갚겠다 했는데 미루고 미뤄서 15일까지 갚겠다 하고 엄마는 그 돈이 또 떼일까봐 불안감에 계속 나를 쪼아대고 아빠에게 말해보라고 그런 것이다.

나도 지치고 힘들어서, 엄마에게 그럼 안 되는데 내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하냐고 그랬다. 내가 아무리 쪼아대도 저 녀석은 15일까지 주겠다했는데 뭘 더 어떡하냐, 내가 쪼아대도 답은 같다같은 말을 되풀이할거다. 일단 기다려보자..

왜 같잖은 짐승만도 못한 년놈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피해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우리만 받아야하는걸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나는 병신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서도
막상 그게 내 지인이고 소중한 가족인데, 그 사람이 돈을 빌려준 걸 후회까지 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쌍욕을 붓고 전화를 끊은 후 눈물을 애써 그치고

방으로 들어가 엄마가 얼굴을 감추고 우는데 어깨를 토닥여드렸다. 엄마가 이대로면 정말 힘들어서 죽어버릴까봐. 
달래면서 엄마를 다시 한번 설득했다.

엄마가 지금 너무 생각이 많은 거라고.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심란해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아빠랑 쭉 몇십년을 산 내 생각으로는 아빠가 돈을 빌려가고 늦게 돌려주고 자꾸 약속을 미뤄서 그렇지 돈을 안 갚을 사람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따뜻하게 말해드리니 그제서야 진정하고

너한테 2000만원 더 얹어준다길래 그 말에 또 혹해서 멍청하게 자신이 그놈한테 데이고 살았음에도 또 빌려주고 말았다고 너까지 속상하게 만들고 자꾸 딸도 힘들게 한 자신이 속상하고 미안해서 운다고 그러셨다.

또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자꾸 알면서도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화가 나는데도 아무런 얘길 하지 못하겠어서.

나 때문이라는데.

나는 최대한 나쁜 쪽으로 생각하시지 않게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해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또 돈을 약속기한까지 돌려주지 않으면 2000만원 더 받는 건 생각도 않고 원금만 받고 차단하자고 아빠랑은 연을 끊자고. 1500은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제가 받아보겠다고 정 안 되면 법원 가서 상담 받고 내가 다 알아보겠다고.그리고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마시라고. 지금 200씩 빌려드린 지인분들도 있는데 친하면 친할수록 돈관계에서 달라고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재촉도 힘드니까 더더욱 빌려주는데 신중해야하고 없는 형편에 자꾸 빌려주지 마시라고 했다.
마음이 약해져서 또 돈을 빌려주고 싶거든 내 핑계를 대라고 했다. 딸내미에게 쓸 돈도 모자르다고 그래도 달라 그러면 나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시라했다. 내가 막을거라고.

엄마는 착하다며 내 뺨을 쓰다듬더니 진정하시고 누우셨다.

정말 막막하고 답답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엄마도 한평생 살면서 제대로 된 친구나 지인도 다 연락을 끊으시고 정말 홀몸으로 사셔서 도와줄 사람도 그 누구도 없이 나에게 의지하시는 형편인데 나 역시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딘 초년생일 뿐이라 큰 도움을 드리기가 힘들었다.
이 밤에 둘이 그렇게 울다가 서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내일 해가 뜨면 그 아빠라 부르기도 싫은 놈한테 다시 저자세로 기어들어가며 돈을 받아내야한다 생각하니 생각도 하기 싫다. 쌍욕한 건 술을 마셔서 그만 실수한거라고. 다시 설득하고 또 돈을 안 줄까 기어야지. 방법이 없다.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는데 강해져야하는데
자꾸만 눈물만 보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나 역시 도움을 청하려해도 주변은 다들 초년생인 친구들 뿐이고.
모두가 힘든 걸 아니까 참으려해도 가끔 이렇게 터져버린다.
엄마나 나나 너무 바보같아서 속상한 밤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테니 엄마와 행복하게 남은 삶을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웃으면서 옆에서 있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거든 그때 울면 좋을텐데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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