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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포기.. 빙빙 돌아 여기까지 왔네요.
게시물ID : gomin_17873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QOOTO
추천 : 4
조회수 : 108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1/03/06 01:29:21

조금 술을 먹었습니다.

 

그냥 어딘가 아무렇게나 글을 쓰며 제 인생의 결을 다시 밟아보고 싶어서 써봅니다.

 

-

 

대학에 들어와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실패도 하고 상처도 주고 상처도 받고 하면서..

 

그렇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어지며 제 스스로 뜻을 세웠습니다.

 

작가 비슷한 무언가가 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대 후 이런저런 방황을 또 이어갔습니다.

 

책 영화 배낭여행 어학 등..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일단 작가든 뭐든 내 밥벌이를 해내야 한다.

 

또 생각해보니 재수 이후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작년 1년동안 휴학하고 감정평가사라는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시험은 아닌데 고시에 준하는 어려운 시험입니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1년쯤 공부하다보니 느낌이 오더군요.

 

이건 내가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구나.

 

생각보다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제 그릇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 걸려있는 합격자 현수막..

 

변리사니 외무고시니 다들 11, 10, 09..

 

그 시간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졌어요.

 

그게 제 그릇인 거겠죠.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낡은 자동차도 다시 보게 되었고요.


사실 이게 딱 목적이라기보다는 소설 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도 말이죠.

 

이렇게 변명이 늘어지니 책을 덮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렇게 책을 덮고보니 저도 나이가 27이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라고 해주셔도,

 

집안사정을 생각하면 이제 어디든 빨리 자리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를 결심하고 2주간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경희대 룸메 친구도 졸업 후 고향에서 9급 준비..

 

서강대 친구도 노무사 준비하다 포기하고 9급 준비..

 

마침 9급 현직인 선배도 9급 정도면 너도 하면 금방 된다고 말해주시고..

 

어차피 취업도 어렵고 제 성격상 사기업에 맞지도 않고 소설 쓸 시간도 안 날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선택지가 공무원 시험밖에 남지 않았어요.

 

또 평소 성격도 딱 공무원이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감정평가사도 돈보다는 퇴근하고 소설 쓸 시간이 필요했던 거니까..

 

그렇게 학교도 복학하게 되었고 오늘 9급 공무원 수험서적을 구매했습니다.

 

그래도 해왔던 게 엉덩이 싸움이라,

 

어떻게든 올해 졸업하고 계속 하다보면 내년에는 붙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떨어지면 그 다음해에는 붙겠지..

 

열심히 한다면..

 

-

 

사실 이번에 붙은 선배가 2년 전에 9급 준비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우리 학교 정도 나왔는데 9급을 준비하네..

 

그런데 이제 그 자리에 제가 서있게 되었네요.

 

스스로 너무 자만했던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또 책을 펼치려니 이것도 만만치는 않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요.

 

인생에 있어서 제 힘으로 이뤄낸 유일한 성취가 대입입니다.

 

별볼일 없는 시골 촌바닥에서 아득바득 재수까지 해가며 입학한 학교니까요.

 

하지만 세상이 넓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이뤄낸 성취는 그냥 흙먼지 정도의 성취였구나 싶습니다.

 

그동안 조금 자만했던 건..

 

제가 너무 좁은 세상에서 살았던 탓이겠죠.


그런 자만을 했던 벌이라 생각하며 다시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

 

2주간 정말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면서 제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행시 3차에 아깝게 떨어져서 도피하듯 군대에 갔지만 또 의외로 군대 체질이라 기수 1등이 된 선배,

 

회계사 시험에 떨어져 방황했지만 결국에는 현대차니 유명 공기업이니 취직한 선배 둘,

 

잘 나가던 집안 사업이 망해 갑작스레 정말 어렵게 살게 된 친구,

 

선배 누나의 장례식에서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사인이 자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친척 중 홀로 대학 가 떵떵거리며 살던 삼촌도 돈으로 자만하며 살다가 이혼하고 폐인,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들.

 

잘 되다가도 안 되고,

 

안 되다가도 잘 되고,

 

인생사 새옹지마 운칠기삼이라는 옛 현인의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가만 생각해보니 인생이란 게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건희도 죽고 박원순도 자살하고 하는 거 보면 나중가서 보면 인생이란 게 별거 없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마윈이 25살까지는 어떤 실패를 해도 괜찮다고 했다는데,

 

한국 나이로 26살, 지금까지는 실패로 치부하더라도 이 치부를 거름삼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되겠죠.

 

-

 

평일에는 공무원 시험도 준비하고 졸업 준비도 하는 것이지만,

 

토요일 저녁만큼은 학원을 다니려고 합니다.

 

만화학원..

 

만화 같은 거 그려본 적도 없는데 그냥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평사 시험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너무 옥죄었던 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토요일 저녁만큼은 이런 소소한 일탈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하고 싶은 건 이 길이니까.

 

이 길도 조금씩은 걸어둬야 겠다..

 

-

 

가만히 누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정말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생은 그냥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아요.

 

그저 새옹지마와 운칠기삼이라는 두 단어를 거름삼아

 

그냥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려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정말 그렇게 살게 된다면 좋겠어요.

 

잘은 모르겠다..

 

그냥 가자..

 

이제 그만 잡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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