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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 이야기
게시물ID : gomin_17955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bW1tc
추천 : 1
조회수 : 101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6/24 01: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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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 중에는 '적토마'라 불리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고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그는 국가대표와 프로팀의 주축 선수로 뛰던 그런 선수였습니다. 프로 데뷔부터 신인상을 받았고, 베스트 11에도 뽑히는 등 프로와 국가대표로서 화려한 명성을 날리던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런 선수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저와 몇 명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 이곳에 글로 남겨볼까 합니다.

 

때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월드컵에 24개 국가만이 참가할 수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종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본선에서 C조에 속해 있었고, 같은 조에는 독일, 스페인, 불가리아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독일과 스페인이라는 두 강력한 축구 강국과 남미의 불가리아가 있어서 사실 예선 통과는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첫 경기였던 스페인에는 2:0으로 지던 상황에서 후반 홍명보의 추격골과 경기 막판 서정원의 동점골로 2:2로 비길 수 있었습니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대로도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인 셈이었죠. 두번째 불가리아와의 경기는 0:0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독일과의 경기. 이미 그 명성만으로도 우리 국가대표는 경기 초반부터 얼어버렸으며 전반에만 3골을 내줘 3:0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낮의 댈러스에서 열린 경기는 30도를 훌쩍 넘긴 기온으로 경기는 커녕 구경하는 관중도 더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은 달랐습니다. 경기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넘어왔고, 독일은 수비를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후반전 황선홍의 추격골이 터졌고, 홍명보의 벼락같은 중거리 슛은 독일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당시 곻을 넣은 홍명보 선수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치켜 펼쳐들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이제 한골만 더 넣으면 동점이라고 암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전원 수비로 돌아선 독일의 골망은 결국 열리지 않았고, 3_2라는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2무 1패의 성적으로 예선 탈락을 하고 말았죠.

 

'적토마'라 불리던 선수는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중원을 누비며 공격의 활로를 뚫기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리고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뛰었던 그 선수를 위해 한때 같이 운동을 했었던 선배들이 그를 위한 술자리를 서울 모처에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일요일이었죠.

 

강남의 모 룸살롱. 당시에 장사가 잘되던 룸은 일요일에 아가씨들이 잘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인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하는 직장인들 때문에 사실 술집에 손님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날도 그 룸엔 단 두 명의 아가씨만 합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적토마' 선수의 양 옆에 아가씨들을 앉혔습니다. 흥겹자고 마련한 술자리였지만 골도 넣지 못하고, 예선도 통과 못했기에 '적토마'라 불리던 선수는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한때 같이 축구를 하기는 했었지만 당시에는 밤거리를 담당하는 소위 건달 비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만원짜리 백장 다발 두개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아가씨들이 옷벗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추라고 말이죠.

 

이백만원이라는 돈. 어찌보면 별 것 아닐거 같아 보이지만 당시 강남권 아파트 평균 가격이 2억원 정도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그 열배에 가까운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아가씨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쎘는지 아무도 테이블 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는 더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돈 뭉치 두개가 놓인채로 말입니다.

 

뒤늦게 연예인 매니저인지, 실장인지 하는 후배가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되는 연예인 있으면 불러보라고 했죠. 그래서 몇 군데 연락을 돌렸고, 나중에 한 연예인이 불려와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데뷔하면서부터 '산소같은 여자'로 이름을 날리던 여자였죠. '적토마'라 불리던 선수 옆에 앉은 그녀의 미소에 그는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평소 그가 남몰래 짝사랑하던 그런 여자 연예인이었으니까요. 사실 지금도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밴드도 부르고, 흠모하던 연예인과 함께 손잡고, 껴안고 노래를 부르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좋아지자 아까 그 선배는 그 연예인을 향해 테이블에 있는 돈 다발을 가리키며 옷 벗고 올라가서 춤추면 그건 네거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서슴없이...

 

'적토마'라 불리던 선수는 놀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텔레비젼에서는 그렇게 다소곳하고 얌전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그럴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게 그에겐 아주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그는 k 리그 통산 두번째로 30-30 클럽에도 가입했고, 일본 j 리그에서도 활약했으며, k 리그 최초로 40-40 클럽에도 가입했습니다. 프로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셈이죠. 그리고 운명의 1999년 비운의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는 포항에서 뛰고 있었는데, 한 밤에 시내의 모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술집에서는 소위 진상 손님이었습니다. 가게에는 준비되지도 않았던 찜닭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술을 무척이나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포항시 지곡동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죠.

 

그곳으로 가는 길가에는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2층짜리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언덕 위쪽 출입구는 2층이고, 아랫쪽 출입구는 1층이었죠. 그리고 가운데에는 1, 2층을 통으로 튼 광장과 폭포, 분수대가 있었습니다. 그의 차는 2층쪽 유리벽을 뚫고 폭포가 떨어지는 1층으로 내리 꽂히고 말았습니다. 그의 BMW는 완전 박살이 났지만 그는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대신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고 말았죠. 당시 지곡동은 포스코 직원들의 숙소가 있는 단지로 자체 청원경찰들이 치안을 관리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덕분에 음주운전 부분은 조용히 덮힐 수 있었죠. 그러나 포스코 감사반에 의한 철저한 뒷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어느 술집에서 무슨 안주를 먹었고, 술은 무슨 종류를 얼마나 먹었느냐 하는 것까지 다 조사해갔죠. 결국 그 사고로 인해 그는 2001년 선수로서 은퇴하게 됩니다.

 

지금은 지도자로 뛰고있는 그가 한국 축구를 위해 이바지하기를 바라며 긴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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