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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관순 열사는 생일이 3개?…순국선열 기록 '제각각'
게시물ID : history_142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범고래Oo。
추천 : 2
조회수 : 4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7 10:48:24
SBS

3.1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열사들,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들을 다함께 떠올리고 기려야하는 날이지요. 지난해 이맘 때쯤 SBS에선 한국사에 어두운 청소년들의 문제점을 조명한 뉴스 리포트를 8시뉴스를 통해 보도한 적 있습니다. 당시 '3.1절'이 적힌 패널을 보여주고 읽어보라는 기자의 질문에 '삼점일절'이라고 읽던 학생이 떠오릅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서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문제를 다시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이 또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순국선열들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관계들이 인터넷 포털,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각종 백과사전, 민간 출판사 서적마다 제각각 달리 표기되고 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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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예를 볼까요? 유관순 열사의 생년월일은 국가보훈처와 네이버, 위키백과에는 1902년 11월17일, 다음, 두산백과, 유관순열사 기념관은 1902년 12월16일, 한국근현대사사전, 21세기 정치학대사전은 아예 태어난 해가 1904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1월17일과 12월16일은 양력을 택하느냐, 음력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걸로 추정됩니다만, 태어난 해가 2년이나 늦춰진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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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닙니다. 일제 법원이 유관순 열사에게 선고한 형량도 제각각입니다. 네이버와 두산백과, 유관순 열사기념관은 3년, 국가보훈처와 한국근현대사사전은 7년입니다. 7년형으로 기록한 매체는, 당초 유관순 열사가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검사에게 의자를 집어던져 4년형이 추가됐다는 식으로 설명됩니다. (국가보훈처 문의 결과 정확한 형량은 5년으로 봐야한다고 합니다. 3년, 7년은 유관순 열사 지인들의 구전으로 전해올 뿐 정확한 재판 기록이 없었는데, 지난 2007년 관련 법원 기록이 발견돼 5년으로 정리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3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밖에 유관순 열사의 만세 운동 현장을 아우내 장터가 아닌 '아오네'로 잘못 표기한 사이트도 있더군요. 

만해 한용운이 불교 청년 운동을 시작한 해는 1930년(충남도 홈페이지)과 1931년(두산백과) 등으로 엇갈리고, 이동녕 선생이 한국독립당을 조직한 해도 1928년, 1929년, 1930년대까지 다양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충남도 홈페이지는 윤봉길 의사의 고향을 사량리(시량리가 정확한 지명)로 잘못 표기했고, 최초의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 창시자인 이종일 선생의 출생지도 매체마다 충남 태안과 서산, 경기도 포천 등 제각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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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독립유공자 관련 기록을 보유, 관리하고 있는 정부기관은 국가보훈처입니다. 20명의 전담 직원을 두고 독립열사들의 생애와 활동 관련 기록을 찾고, 고증해 데이터베이스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그래도 가장 정확하고, 권위를 인정할 만한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자료가 기준 자료로 널리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국가보훈처의 유공자 관련 자료를 받아서 참고하는 곳은 네이버 캐스트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다른 포털이나 인터넷 백과 사전, 민간 사료들은 제각각 다른 자료를 참고해 저술하기 때문에 일관되고 통일된 기록이 아닌 저마다 다른 기록이 남게 된 것입니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한국근현대사사전은 대형 서점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절판돼서 찾을 수 없을 정도니, 정기적인 오류 수정 등이 가능할지 회의적입니다. 

원래 역사는 저술가의 사관에 따라 사실이 취사선택될 여지가 있고, 맥락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事實)에 대한 평가는 엄격해야합니다. 다양한 사관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해야 그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이지만, 불과 100년 안팎의 역사 조차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열사의 삶은 하나인데, 이를 기록한 후손의 역사가 열갈래 스무갈래 나뉘어진 꼴입니다. 국가보훈처가 중심을 잡고, 국가기록원 등도 함께 나서서 순국선열들의 생애가 정확히 기록될 수 있도록 시급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조성현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http://zum.com/#!/news=0432014022711956863&t=0&cm=newsbox&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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