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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에 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간행도서
게시물ID : history_15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6/8
조회수 : 99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4/07 21:40:40
제가 지금부터 밝히는 이 내용들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간행한 도서, 『낙랑군 호구부 연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낙랑군 호구부 연구』중 영남대학교 권오중 명예고수께서 집필하신 항목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 한가지 덧붙이자면『낙랑군 호구부 연구』는 북한에서 몇 년전에 발견된 「초원 4년 낙랑군 호구부」를 근거로 편찬된 책입니다.


......(중략)......

 낙랑에 대한 연구 기간이 어느덧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군'의 위치 문제에 있어서까지 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난 1세기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상황과 인식이 결부돼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1909년은 일제의 식민지 작업이 완료 단계에 이르렀던 시기다. 이 시점에 고대 중국 행정기구인 낙랑군 유적이 조선 땅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조선은 '중국의 일부'이거나 '식민지'로 설명되었으며, 이러한 논리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기본적 통념으로 자리함으로써 식민사학의 주요한 논거로 자리하였다.

 1945년 해방은 낙랑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낙랑에 관한 부정적 인식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하나는 낙랑에 관한 연구를 기피하는 현상이다. 4백년이 넘는 낙랑군에 관한 연구는 낙랑과 결부된 한(漢) 문화의 수용이나 고대국가의 출현이라는 사실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사 분야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낙랑에 관한 연구는 아직 낙후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략)......
 
 다른 하나는 낙랑에 관한 편향된 인식으로 말미암은 부작용으로, 이는 낙랑의 위치에 관한 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낙랑의 소재지를 현재의 중국 요령지방으로 설정하는 '낙랑요령설'을 들 수 있다. 이 주장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에 맞선 대응논리의 성격을 갖기는 하지만, 조선후기의 실학자 중에서 '응소'는 '낙랑요령설'과 유사한 주장을 펴기도 하였으므로 '낙랑요령설'을 순전히 식민사학에 대응하기 위한 반대 논리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용강, 박천, 봉산, 은율 등 북한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낙랑시대의 유적이다. 낙랑시대를 증명하는 낙랑한묘(樂浪漢墓)가 평양지역에만 5000여 기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낙랑평양설'은 그만큼 유력한 정설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하겠다. 반면 '요령설'은 평양을 비롯한 북한지역에 산재한 낙랑 유물이 내포한 지역적 의미에 관해 합리적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설득력이 약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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