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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을 중심으로 보는 한반도의 국방정책
게시물ID : history_197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나리온
추천 : 15
조회수 : 1998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5/02/20 02:23:07
안녕하세요
1년동안 역갤에서 눈팅만 하다가 드디어 가입하고 나서 기념할겸 첫글을 써봅니다.많이 부족하지만 잘부탁 드리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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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가기에 앞서 한반도의 산성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산(山)성(城): 말 그대로 산에 지은 성입니다.
                  반대말은 나성(羅城).평야에 지은 성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냐 ㅡㅡ;;)
일단 나성은 평야에 마을,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이고 산성은 순수하게 군사적 목적, 즉 지역방어와 피난소 역활을 합니다. 근데 우리 선조님들은 나성을 짓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산성을 무지막지 하게 건설하셨죠.(남한에만 대~충~ 1200백여개... 여기에 이북과 만주, 그리고 조그마한 성까지 더하면;;;;;;;;) 
그러면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생깁니다.
 
"헐 그러면 적이 쳐들어 오면 그곳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산성으로 도망가면 된다 치더라도 기껏 지어놨던 마을이나 도시가 무방비여서 손쉽게 잿더미가 되버리잖슴???"
"ㅇㅇ"
"뭐임 그러면 선조들은 바보들이네? 그럴바에는 산성말고 나성을 짓어야 되는거 아님?"
 
사실 조상님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성,평양성(장안성),요동성,개성,한양,화성 등  손에 셀수있을 정도로 적기는 하지만 나성이 존재하기는 했고 우리 조상님들도 나성의 중요성을 인식은 하고 있었으며 또한 기술력이 부족하여 못 짓는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 딱 한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그놈의 '돈'......
 
일단 한민족의 성의 특징을 정의 한다면 바로 "활의, 활에 의한, 활을 위한 성" 이라고 정의할수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한민족은 마치 온라인 게이머가 강화질 하듯, 스텟을 민첩에만 꼬라박듯 oIny 활만 강화시켜 버렸으니 ...(한민족이 옛날부터 활과 같은 요격무기에만 과도편향되게 스텟을 투자한 이유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가장 우세한 의견은 역시나 '쪽수가 딸려서..' 입니다.. 대체로 가장 많이 충돌하는 중국이나 북방 유목민족의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영아 사망률과 낮은 출산률, 그리고 좁은 땅덩어리와 전근대 농업의 한계로 인한 낮은 농업생산률은 부담가능한 인구한계선을 낮게 잡아 버렸죠. 쉽게 말해서 친구들과 스타를 하는데 내 친구들은 인구수 한계가 1000, 2000이런데 나혼자 200.. 이런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선조님들은 어떻게 하면 잘 짱박혀서 활만 쏘면 이길수 있는 상황을 만들수 있을까? 를 항상 고민했고, 고민하고 보니 나온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치.jpg 
 
치(雉)라고 불리는 이 것입니다...
 
"응? 이게 뭐길래? 걍 성벽에서 조금 튀어나온것이 전부인데?"
 
예 맞습니다. 근데 이놈이 하나로 과장좀 심하게 해서 우리 조상님들이 무적이 되셨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것의 효과는 크게 두가지 입니다.
 1. 튀어나온 길이만큼 요격무기의 사거리가 증가한다.
 2. 방어군의 요격무기의 사각지대가 사라진다?!!!!!!!
 
성의 방어군에게 가장 까다로운 공격타겟은 바로 적이 성벽 아래까지 진격해 벽에 바싹 붙어있을 때, 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적일 것입니다. 왜냐면 그런 적을 상대하려면 방어군이 성의 방어벽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 치가 건설되면 그럴 필요가 없이 치의 왼쪽 또는 오른쪽의 적을 정확한 조준사격할 수 있으니 이른바 교차사격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방어군의 손실이 0가 되는 싸움을 벌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러한 치는 하나가 있어봤자 쓸모가 없고 일정간격으로 수십여개의 치가 건설되어야만 효과가 있는데 여기에 한민족 특유의 혼을 담은 시공기술과 다양한 축성기법이 더해져 우리 조상님들의 MADE IN KOREA 성벽은 단위면적당 건설비용이 기존의 두배, 세배를 가뿐히 뛰어넘는 그야말로 돈먹는 하마가 되어버립니다.
 
그 결과 우리 조상님들은 도시 전체에 치의 구조를 갖는 톱니형 성곽으로 둘러 나성을 세우고 싶다는 욕구야 강하겠지만, 예상되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요새형 산성만 세웠던 것입니다... ㅜㅜ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평양천도때 만든 안학궁도 그냥 허허 벌판에 세운 궁입니다. 고려의 개경도 초기에는 나성이 없었구요.  그러면 여기서 또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근데 산성도 성벽을 다 둘러야 되잖아? 그러면 비싼건 똑같지 않나?"
 
아닙니다. 나성은 평지에 건설되기 모든 성벽높이와 두께가 일정해야 하지만 산성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구요? 건설계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적의 진입로, 또는 공격루트를 한정시켜 놓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형 산성은 공성측이 전술단위의 병력으로 접근이 가능한 루트를 아예 정해 놓고 시작합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입구막기랑 비슷하고나 할까요?  적이 기동가능한 길은 한정되어 있고 쳐들어 올곳도 정해져 있으니 방자측은 그곳만 틀어막고 시간끌면 적은 자연스레 GG치기 마련. 그러다보니 방어해야 할 곳만 높은 성벽과 치를 설치하면 되니 자연히 건설비용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산에 있다 보니 운제, 충차, 투석기등 각종 공성병기들 말그대로 무용지물, 써먹지를 못하게 되니(자신있음 끌고 올라와 보시지, 산을 깍아 버리는 로마군을 제외하고) 공격하는 측은 그야말로 냉병기(창,칼등)와 사다리만 가지고 성을 공격해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도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말이죠
 
결국 한국형 산성은 방자측의 수성의지와 충분한 식량과 화살,물자만 갖추어져 있다면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수성이 가능해지는 그야말로 무적이 되어버립니다. 더군다나 이런성들이 접근조차 힘든 한국의 개념을 상실한 산 위에 건설되어 있으니 ....(얼마나 개념을 상실했는지 궁금하시다면 강원도에서 군복무 해보시거나 등산을 몇번 다녀보시면 깨닫게 됩니다.;;;;) 몇번이나 중장비를 들고 등산해가며 성을 공략해야 하는 공자측은
우린 안될거야 아마.jpg 아마 이런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한반도의 적대 세력은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한반도 국가의 영토를 빼앗고 싶다.=>마을을 점령한다=>주민들이 산성으로 튄다=>산성을 공격하거나 그대로 회군한다. => 회군했을 경우 주민들이 다시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재건, 산성을 공격했을 경우 대부분 실패=> 공자측이 공세한계점에 도달하거나 적의 원군이 당도=> 퇴각=>주민들이 마을을 재건=>다시 쳐들어 온다.=>산성으로 튄다.=>이거 무한반복
하지마 포기하면 편해.jpg.... (이 말을 하고 싶군요)
 
이러한 산성중심의 방어 전술을 통해 한반도의 국가들은 "적이 쳐들어오면 요새화된 국경지대에서 적을 고착화 시키거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킨다음 힘빠진 적을 중앙군병력을 동해  적을 격파한다" 라는 산성+야전군의 필승의 전략을 깨닫게 되고 실제로 이 방법은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적들도 곧 해답을 찾아 냅니다. 그것은 바로 우회 였습니다. 산성이 아무리 견고하다 하나 길목에 위치한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비 두거나 소수의 병력만 보내어 견제토록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덩어리가 되어 버리고 그러면 적군은 아무런 저항없이 국경지대를 돌파하고 적의 중앙군이 채비를 하기 전에 수도까지 진격,점령할수 있습니다. 다음 사례를 보겠습니다.
 
2차 여수전쟁: 요동성에서 막히자 수나라는 별동대를 보내어 평양으로 직공
견훤의 서라벌 진공작전: 왕건이 짜놓은 정교한 포위망을 무시하고 냅다 서라벌 쳐들어감
요-발해 전쟁: 요군은 압록강유역에서 발해군에게 막히자 부여성을 공격한후 곧장 상경성으로 진격
2차 여요 전쟁: 통주전투에서 승리한 요군은 병력의 절반을 남하시켜 개경을 공략함
3차 여요 전쟁: 소배압의 거란군은 흥화진에서 패배했지만 곧장 개경으로 쳐들어감
홍건적의 침입: 역시나 개경 직공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jpg
 
물론 우리 조상님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이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고구려는 요동-압록강-살수로 3중방어선을 구축했고, 고려는 개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평양을 요새화 했고 훗날에는 개경에 거대한 나성을 둘렀습니다. 또한 고려때부터 수운을 주 운송수단으로 삼기 시작하는데 이유는 도로를 잘 닦아 놓으면 외적이 그 길을 따라 빠르게 침입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많이 신경쓴것은 적을 야전에서 격파할수 있는 중앙군의 운용 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야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대표적인것이 주필산전투와 봉산전투, 2차 여요전쟁의 통주전투,귀주대첩, 동선역전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몇십만 단위의 대규모 야전군의 운용이 조선에 와서는 대가 끊기고 맙니다. 왜냐구요?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 물론 조선에 중앙군이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조선의 잠재적 적국을 꼽아본다면 1.왜구 2.여진인데 , 일단 왜구의 경우 고려말기 왜국의 침입때의 경험으로 인해 바다의 적은 바다에서 막는다라는 개념이 정착되어 각 도별로 수군도절제사를 두어 사실상 해군을 만들었으니 걱정이 없고  여진의 경우 하나의 통일된 집합체가 아닌 부족단위이기에 머릿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선조정 자체가 국방비에 돈을 쓴다는것 자체를 꺼려하기도 했습니다.(이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ㅡㅡ;;)
 
그런데 양란을 겪고 나서 조선은 대규모 상비군의 존재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이는 훈련도감을 위시한 5군영의 출현을 야기시킵니다. (이때부터 조선의 예산이 갈려나가기 시작했다는건 함정)
그리고 귀결된 결론은 무었이냐 하면 "산성으로 적의 주력군이 들어올 수 있는 공격 축선을 한정시켜 놓고 중앙군으로 적을 격파"입니다. 애시당초 적이 수도로 직공을 한다면 최소한 만단위 병력이 온다는 건데 산지가 많은 한반도에는 그러한 기동로가 한정되어 있거든요. 이는 현대 한국군의 전술에도 그래도 통용되는데요 한국군 또한 갖은 참호와 벙커등 무지막지한 방어자산을 투입하여 고지와 고지를 요새화 시켜놓고 적이 예상된 축선으로 오면 그놈의 막강한 포병(역시나 포방부)으로 때려잡는다는 뭐 대충 이런 전략이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앙군은 미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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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부족한글 봐주셔서 감사하고 오타나 지적사항이 있으면 댓글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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