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서진(西晉)을 계승하다, 동진(東晉) - (19)
게시물ID : history_20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유없음
추천 : 15
조회수 : 340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7/13 10:51:45
유유가 북벌을 시작했을 무렵의 화북 정세는 어떠했을까. 앞서 말했듯 비수대전 이후로, 전진은 각지에서 자립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 중 선비족 모용수(예전편 참고)는 연왕을 칭하고 후연(後燕)을 건국, 역시 전진의 장군으로 있던 요장이란 이는 부견을 시해한 후 후진(後秦)을 세웠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전진이 멸망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영토와 국력이 크게 축소되어 하동일대 부근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걸복씨의 걸복국인이란 사람도 자립하여 서진(西秦)을, 당시 서역원정을 나가있던 전진의 장수 여광(이것 역시 예전편 참고)이란 사람은 비수전투에서 부견이 패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주둔해있던 서역에서 독립을 꾀해 후량(後凉)을, 한편 북방에선 전진의 복속 하에 있었던 탁발씨의 탁발규가 북위(北魏)를 일으킨다. 즉 화북의 형세는 다음과 같았다. (이 지도에는 나와있지는 않으나 모용씨의 일족인 모용충이 서연(西燕)을 건국했었고 이 서연은 후연에게 멸망당했다. 즉 윗지도는 그 이후의 판도다) 그러던 중 391년에 이르러 함께 연합하여 서연을 견제하던 후연과 북위의 동맹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하북을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 허나 북위의 세력이 워낙 강대해 후연은 멸망당하고 후연의 왕족이자 모용수의 동생인 모용덕은 남하하여 남연(南燕)을 세웠다. 한편 서쪽에서는 후량의 여광이 서진을 공격했으나 크게 패하자 당시 후량에 복속되어있던 선비족의 독발씨 출신인 독발오고란 이가 이를 기회로 여기고 자립하여 남량(南凉)을 건국하고 후량의 무장이었던 단업이란 사람은 북량(北凉)을, 역시 후량의 신하였던 이고도 자립을 도모, 서량(西凉)을 세워 후량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다음은 당시의 판도. (윗 지도에서는 북연(北燕), 하(夏)라는 나라가 나오는데 북연은 후연의 장수였던 풍발이란 사람이 세운 짝퉁국가다. 하나라는 흉노족인 혁련발발이 후진으로부터 독립해 세운 국가다) 이때가 4세기 말에서 막 5세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동진의 유유가 땅따먹기를 시작하는 때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