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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발(李時發)
게시물ID : history_22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3
조회수 : 132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7/16 20:08:42

이시발(李時發)

1. 생몰 1569(선조 2)~1626(인조 4)
 
2. 급제
 - 21세 1589년(선조 22) 증광시(增廣試) 병과8(丙科8)
 
3. 암행어사 연보
- 21세 1589년 급제 후 승문원에 등용 - 임진왜란 접반관(接伴官)으로 임명 -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활약 - 그뒤 전적·정언·사서를 역임
- 26세1594년 병조좌랑에 재직중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진운홍(陳雲鴻)을 따라 적장 고니시(小西行長)의 군영을 방문하여 정탐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 27세 1595년(선조 28) 병조정랑으로 승진하여 순무어사(巡撫御史)를 겸임
- 28세 1596년(선조 29) 충청도 순안 어사로 이시발이 홍산에서 변란이 일어났음을 보고한 서장
 
4. 관련 기록 ≪선조 063 28/05/25(정유). 훈련 도감에서 염초 구하는 일에 대해 보고하다≫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바다 흙으로 염초(焰?)를 구워내는 일을 도감에서 매번 중국 사람들과 시도해 보려 하였으나 아직 실효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천(舒川)의 군보(軍保) 임몽(林夢)이 염초를 구워내는 일을 여러 가지 꾀를 내 시험하여 성공을 거두고서 도감으로 찾아와 말하기를 ‘어떤 곳에 가서 구워보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즉시 감관(監官) 조효남(趙孝南)을 시켜 남양(南陽) 지역의 바닷가로 데리고 가 굽도록 하였더니 5일 사이에 바다 흙으로 구운 염초 1근과 함토 2분(分), 바다 흙 1분을 합하여 구운 염초 3근을 가지고 왔습니다. 약제들을 합쳐 시험삼아 쏘아 보았더니 성능이 뛰어나 쓸 만하였으므로 두 가지 약제를 각기 담아 올립니다. 필요한 바다 흙은 반드시 사람과 말들이 밟고 다닌 염전(鹽田)에서 취하고 바닷가의 숲이 많은 지역을 찾아서 많은 양을 구워낸다면 힘도 덜고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우선 임몽으로 하여금 염초를 굽는 각소(各所)에서 기술을 익히는 장인(匠人) 중에 그 방법을 대강 터득한 자를 뽑아 거느리고 다시 남양 등지로 가서 그 굽는 방법을 모두 전수케 한 다음 논상하여 권장한 후에, 충청 어사(忠淸御史) 이시발(李時發)에게 내려보내어 남포(藍浦) 등지의 소금을 구워내는 곳 중 숲이 있는 지역에서 많은 양을 굽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서쪽으로 피난갔을 때에 바다 흙으로 염초를 굽는다는 말을 익히 듣고 내심 기뻐하며 만일 이 방법만 얻게 되면 무궁한 이익이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승전(承傳)을 내려 ‘이 방법을 터득한 자가 있으면 특별히 높은 벼슬을 주어 포상을 내리겠다.’ 하였다. 그러나 그 뒤로 한 사람도 터득한 사람이 없고 중국 사람에게도 여러 차례 물었으나 그 방법을 얻지 못하여 마음에 늘 탄식해 왔는데 뜻밖에 오늘날 이처럼 능히 이뤄냈으니 축하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에 드는 힘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얼마만큼의 염초가 얻어지는지를 알지 못하겠다. 의당 조예가 있는 낭청(郞廳)을 보내 임몽과 다른 염초장(焰?匠) 몇 사람을 데리고 다시 남양 지방으로 가, 눈 앞에서 직접 구워내게 해서 허실을 자세히 알게 된 뒤 크게 논상하겠다.” 하였다. 【원전】 22 집 500 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과학-화학(化學) (자료 : 조선왕조실록, 원문번역 민족문화추진회)
출처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220&dic_seq=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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