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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스탈린이 모택동 잡으려고 일으킨 것
게시물ID : history_258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0
조회수 : 145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4/02 11:30:09
이런 의견도 있네요.
 
이세기 前 통일부장관 "한국전은 애치슨 선언에 대한 소련의 반격"
 

......
 
스탈린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마오쩌둥이 제2의 티토가 되기 전에 제어하고 압박해 자신의 예속하에 두고, 적대국인 미국을 시험하고 흔들어 힘을 뺄 수 있는 대전략이 절실했다.
 
1950년 3월 30일 김일성은, 스탈린을 찾아가 미국의 애치슨 선언 등 변화된 정세를 거론하면서 남침계획을 승인해 줄 것을 간청했다. ‘만주를 상실한 허탈감 등으로 상심해 있던’ 스탈린은 이전과 달리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흔쾌히 허가하면서도 반드시 마오쩌둥의 동의를 구하라고 지시한다.
 
스탈린은 소련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개입이나 참전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김일성에게 경고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공산화를 통해 국경을 따라 완충지대를 확장, 중국을 포위·견제하고, 만약 개입하더라도 미중 간의 전쟁을 통해 신중국을 미국의 화약고 속에 빠져들게 해 자국의 예속하에 두며, 특히 미국의 힘을 중국의 늪 속에 빠뜨려 유럽에서 힘의 우위를 도모하려 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은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소련은 유엔 안보리 회의에 불참,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용이하게 했다. 소련의 안보리 불참 의도는 미국 등 서방의 참전을 유도해 미중 사이에 분명한 적대(敵對)관계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중국을 자국의 손아귀에 두려고 한 것 같다.
 
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38선 이북으로의 북진(北進)은 중국의 개입을 초래해 마침내 한국전쟁은 미중 간의 국제전이 되고 말았다.
 
애치슨 선언을 통해 중소 간의 이간과 불화를 획책한 미국은 그로부터 5개월 후 스탈린의 치밀한 책략에 따라 한반도에서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미국의 애치슨 선언에 대한 스탈린의 대반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세계사 연대표 : http://yellow.kr/mhistory3.jsp
출처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3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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