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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소스 (Hyksos) – 이집트 제2중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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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1
조회수 : 13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20 09:13:09


이집트 제2중간기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혼란에 빠진, 중왕국의 끝(제12왕조의 끝)인 기원전 1800년경부터 기원전 1570년경 신왕국(제18-20왕조)의 시작 사이를 말한다. (고대 이집트 연표는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 고대 이집트 연표, 연대표 (Egyptian chronology) : http://yellow.kr/blog/?p=980

 

이집트 제2중간기 동안 힉소스Hyksos인이 이집트 역사에 나타나 나일강 동부의 델타(Delta) 유역을 점령하고 이집트 제15왕조를 만들어 통치한 것이 유명하다.

4200년전의 기후변화 사건과 이후의 한랭화로 인한 대규모 민족이동이 역사적 배경이 아닌가 추정된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5호16국의 시기(400년 전후)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 4200년전 기후변화 사건 – 이집트 제1 중간기 : http://yellow.kr/blog/?p=716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의 이집트에서의 체류와 출애굽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 힉소스의 이집트 정복과 이집트로 부터의 축출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힉소스의 주류가 가나안 출신으로 서부 셈어를 말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 둘 사이의 연계를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다나오스와 카드모스에 관한 이야기도 힉소스와 관련있다는 주장이 있다.

 

힉소스(Hyksos)라는 이름은 ‘외국 땅의 지배자ruler(s) of the foreign countries’라는 뜻의 이집트어(헤카 카수트heqa khsewet)에서 유래한 말로써,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사제 마네토Manetho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름의 원형 헤카 카수트는 힉소스 시대만이 아니라 그 전후의 시기에도 존재했음이 입증되었다.

 

힉소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관련 문헌이 거의 없어 불분명한 점이 많다. 주요한 논쟁은 두 부류의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한편은 힉소스는 가나안어를 말하는 인근 팔레스타인 주민만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은 힉소스는 북시리아와 동코카서스로부터 온 북후르리적 또는 아리아적 요소도 포함한다고 믿는다.

가나안인 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힉소스’ 또는 헤카 카수트라는 칭호는 족장 또는 지도자의 의미를 담고 있지 결코 특정 인종에 대한 함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대항해 후르리인 설과 아리아인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마네토를 따르고 있는데, 그는 힉소스를 먼 ‘동쪽 지역’에서 온 ‘모호한 종족의 침입자’로서 묘사했기 때문이다.

 

야만인의 공격이나 정복은 학자에게 항상 혼란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그것은 급격히 발생했다가 사라지거나 빠르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의 시간적 범위가 짧거나 지리적 범위가 넓게 분산되어 있다면 체계적인 발굴은 어렵다.

야만인의 정복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외부의’ 야만인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내부의’ 야만인(그들은 종종 수세기 동안 더 부유한 문명권에 인접해 살아왔다)을 부추겨 부유한 문명권을 침입하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훈족이나 터키어를 말하는 자들은 로마제국에 침입한 경우가 거의 없지만, 훈족의 출현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고트족과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비슷하게, 비록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했던 무굴인의 지도자가 터키어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침입으로 인도에 도입된 문화는 터키나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아니라 페르시아 문화였다. 그 문화는 수세기 동안 인도의 북서쪽에 살았던 고도로 문명화된 사람들의 문화였다.

이러한 ‘축적된 자극cumulative impulses’의 모델은 시리아-팔레스타인 및 하이집트에서 발굴되는 기원전 1750-1570년 사이의 고고학적 증거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마네토의 전승, 스페오스 아르테미도스 비문, 기원전 18세기 시리아로 후루인의 팽창, 미탄니의 말과 전차에 대한 관계, 기원전 15세기 팔레스타인에 후루어와 인도유럽어를 쓰는 자들의 현존에 대한 증거 등을 고려하면, 후루리어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자들이 힉소스의 이집트 침입에서 한 부분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힉소스.jpg

– 이집트 제2중간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표현한 지도로 여러 추정 중의 하나임을 감안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700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http://yellow.kr/blog/?p=1352


출처 http://yellow.kr/blog/?p=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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