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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 러시아가 이겼으면 한국은 독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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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푸쉬킨
추천 : 20
조회수 : 3277회
댓글수 : 69개
등록시간 : 2016/09/23 00:45:43
* 역게 오른 러일전쟁 토론 글을 보고 씁니다
 
 
흔히들 착각하는게 개항기에 한반도의 패권을 둘러 싸고
 
열강이 각축을 벌여서 서로 먹고자 했는데
 
일본이 청나라, 러시아를 모두 이겨서
 
결국 일본이 먹었다고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착각이고 정확한 사실을 말하면
 
개항기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고자 한 나라는 그냥 일본이 유일합니다.
 
청일전쟁, 러일 전쟁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는데 간섭할 가능성이 있는
 
두개 나라를 완전히 축출한 전쟁이었을 뿐이지
 
정작 청나라, 러시아 모두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는데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청나라의 경우 전통적 조공관계를 근대의 식민지 개념으로 이해 한 바 없었고
 
베트남의 영향력을 둘러 싼 청불전쟁을 계기로 비로소 그때야 근대식의 속국 개념을 이해해
 
이와 동일하게 최초로 적용하고자 유일하게 남은 조공국인 조선에  
 
위안스카이를 조선에 보내고 내정간섭을 한 시기가 있었지만
 
어차피 청불전쟁에서의 패전 여파로 전통적 조공국이 전부 이탈해
 
중국이 세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피하고자 급박하게 이뤄진 조치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온 정책도 아니었고
 
청나라 자체가 내부에서 이미 몰락하는 중이라 식민지 따위가 성립할 사안도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조선의 개항 이전 1865년 부터 이미 조선과 국경을 마주했음에도
 
1885년 수교 이래 한반도에 관심을 가진바 없고 오직 관심 사안이 있다면
 
1년 중 4개월이 얼어붙는 블라디보스톡을 보완할 부동항 확보 단 하나였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건국 된 이래 러시아가 극동 지역을 정책의 중심으로 상정한 적이
 
단 한번도 없거든요 이는 러시아의 외교.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외교 주력은 유럽이었고 이를 위해 독일과 손 잡으며
 
동유럽, 발칸 진출 외교를 진행하였으나 발칸 지역으로의 진출이
 
그 유명한 크림전쟁으로 개박살이나며 흑해함대가 전멸하고 좌절한 경험이 있습니다
 
 
발칸에서 진출 길이 완전 막혀 버리니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페르시아와의 외교를 통한 중앙아시아, 중동으로의 진출이었고
 
이때 저지를 한게 그 유명한 그레이트 게임이라 부르는 영국과의 대결입니다
 
영국의 입장에서 영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건 강력한 해군력의 존재와
 
초크포인트의 선점을 통해 언제든 영국의 해군으로 이를 통제한다는 국책인데
 
 
유럽 국가중에 유일하게 러시아만 해상 교통로가 필요없이
 
육로횡단으로 아시아와 인도까지 진출이 가능했으니
 
영국의 국익을 훼손한다 판단하여 러시아 견제를 국책으로 내세운 것이죠
 
우리가 배우는 러시아의 남하정책 저지라는게 바로 19세기 영국의 국책을 말합니다.  
( 남의 나라의 국익에 입각한 편견을 무슨 대단한 용어인양 배우는 자체가 좀 웃기죠) 
 
 
중앙아시아 역시 중동 및 인도의 이권 보호를 위해 적극 저지한 영국에 밀려서 진출이 저지되고
 
마지막 남은게 지구상 유일하게 식민지화가 안된 중국 시장 진출입니다.
 
이미 영국, 미국이 와서 상권을 장악한 지역에 러시아가 끼어들게 된 사건입니다.
 
이때 러시아의 외교 정책을 두고
 
 "가죽푸대의 입구를 모두 막으면 반대가 불룩해 진다" 라고 표현하는데
 
 
발칸, 중동지역 모든 방향이 영국, 프랑스에 저지당한 러시아가
 
마지막으로 남겨진 중국에 진출한 사건입니다.
 
당연히 그 중심은 만주지역을 발판으로 중국 진출을 말하는 것이지
 
시장 가치라는게 책정 된 바도 없는 한반도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유일하게 한반도가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저 부동항만을 말하고
 
그 이유도 무슨 대단한 해군을 동원에 아시아를 침략하기 위해 부동항이 필요하단 것도 아닙니다
 
이때는 애초 블라디보스톡의 해군이란게 경비대 수준이라 해군력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상황입니다
 
그 항구 자체가 4개월간 얼어붙는 항구라 건설 당시 부터 보조 항구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무슨 러시아의 남하정책 운운하면서 러시아의 영흥만이니, 마산항이니 탐사가 침략의 증거이니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데 이때 함께 고려 된게 일본 북부 지역의 항구를 빌리는 방안도 있습니다
 
일본의 적개심이 확인 되자 안보상 이유로 철회된 것 뿐이고
 
 
 
러시아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유도 결국 일본 때문입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청나라를 축출하고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이때 건드린 것이 바로 요동반도 입니다.
 
한바도를 넘어 일본이 만주로 진출하게 되면
 
러시아가 유일한 대안으로 여긴 중국 상권, 그것을 위한 교두보인 만주상권이
 
침탈 받는 다는 것이고 이때 러시아가 개입해서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돌려 주라며 만주에서 일본을 축출한게
 
그 유명한 삼국간섭입니다.
 
 
조선의 명성황후가 이때 일본을 단지 외교만으로 축출하는 러시아의 힘을 지켜보고
 
러시아와 외교를 진행하려 시도했고 이때 위협을 느낀 일본이 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죽인 사건이 을미사변입니다,
 
 
일본은 개항 이래 최초로 외국을 이긴 청일전쟁을 굉장한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겼는데
 
러시아가 개입한 삼국간섭 사건을 두고
 
러시아가 일본의 청일전쟁의 보상을 부당하게 강탈했다고 여겨 국가적으로 큰 치욕을 당했다 여기며
 
한반도 식민지화에 가장 큰 장애물로 러시아를 상정하고 이때부터 러일전쟁을 준비합니다.
 
어느정도인가 하면 국가 무역 물자의 60% 이상을 전쟁물자 수입에 국가 예산 70%를
 
모두 전비로 쏟아 부으며 오직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한 전시경제 체제로 진입한 것이죠
 
 
 
반면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 정책에서 유일한 이유였던 부동항을
 
삼국간섭의 결과로 해결까지 합니다
 
요동반도를 일본으로 부터 빼앗아 청나라에 돌려 준 대신
 
뤼순항을 청나라로 부터 조차 받는데 성공함에 따라
 
러시아가 그토록 바라던 부동항을 손에 넣은 것이죠
 
 
 
러시아가 뤼순항을 얻은 시점 부터 한반도의 가치는
 
곧 블라디 보스톡과 요동의 뤼순항을 연결하는 대한해협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즉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정부의 존재만으로 그 가치를 다하게 됩니다.
 
어차피 러시아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를 방어할 해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만주의 식민지화에 올인 중이었으니 말이죠
 
 
때문에 아관파천으로 조선의 왕 고종이 아예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을 온
 
말 그대로 조선 정부가 러시아 공사관에 예속 되었을 때 행한 러시아의 정책이
 
한반도의 보호국화가 아닌 반대로 한반도 중립화 정책인 것입니다.
 
 
그 유명한 니시 - 로젠 협정으로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 모두가 철수하고
 
한반도를 중립화 하자는 협정입니다.
 
 
일본은 아직 러시아와 전쟁 준비가 안되었고
 
명성황후 시해의 역풍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조선 정부가 아예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중에 단행 된 친일내각 숙청으로
 
한반도 내 일본세력이란게 사실상 전멸한 상황이라 이를 수용합니다
 
 
이때 개항 이래 최초로 한반도에서 외세라는게 사라진 기간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란 세력이 한반도에서 사라진 그 기간에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그 유명한 광무개혁이 진행 된 것입니다.
 
 
 
러일전쟁 승리 시 러시아가 한반도를 먹었을 가능성은 제로가 가깝습니다.
 
애초 한반도를 먹을 계획이라면 아관파천으로 한국정부가 아예 러시아 공사관에 예속 되었을 때
 
일본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을사조약 같은 보호조약을 한국과 체결하고 난리가 났겠죠.
 
 
근데 러시아는 안했어요
 
당연한게 러시아의 극동 정책은 한반도를 말하는게 아니라
 
만주와 중국을 말하는 겁니다. 어차피 열악한 해군력으로 커버도 안되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를 먹는 것 보단 만주의 보호를 위한 방어막으로 한반도 중립화가
 
더 현명한 러시아의 정책이었을 뿐입니다.
 
 
이때 러시아가 해군력이 영국에 딸리는 입장에서
 
만주상권의 확실한 확보를 위해 청나라에 러청은행을 설립하고
 
만주에 동청철도를 깔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깔고 하니
 
영국, 미국이 개입해서 이를 극격히 반대하고 러시아의 중국 침략을 비난하는
 
국제적 긴장관계가 만들어 졌으며
 
 
청나라에서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러시아가 동청철도를 중심으로
 
만주를 장악하자 영국이 중국에서의 영국 이권 침탈 의도를 명백히 한
 
러시아를 중국에서 축출하고자 그 유명한 영일동맹을 체결합니다.
 
 
영일 동맹의 의도는 영국의 중국 상권 보호를 위해 만주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고 대신 일본은 그 댓가로 한반도를 먹겠다 이런거죠
 
세계최강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자신감을 얻은 일본이
 
청일전쟁 직후 부터 준비한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러시아를 기습공격하여 일으킨게 러일전쟁입니다.
 
 
 
이때 러시아가 일본에 완전히 패배 한 것도 아니였지만
 
내부의 혁명으로 결국 일본과 협정을 맺어 한반도를 주는 선에서 끝냈고
 
이후 더 극동 정책이 후퇴해 남만주를 일본에 넘겨주고
 
러시아는 북만주만 먹는 선에서 종결하죠
(블라디 보스톡까지 이어지는 철도의 단축을 위한 북만주 철도 보호 때문이죠)
 
이 만주 분할 협정을 마무리 한게 이토히로부미였고 그 회담차 간 장소가
 
하얼빈입니다. 안중근 의사한테 총맞아 죽은 그 장소죠.
 
심지어 그 북만주 조차 이후 동청철도 우회 철도가 건설 되자 포기합니다
 
러시아의 정책이 유럽으로 선회하며 극동 자체를 아예 방기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죠
 
만주 자체도 무슨 연해주 처럼 러시아가 달라고 해서 먹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인구가 지금 1억이 넘는 지역이고 당시에도 수천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지역이죠
 
일본 조차 만주를 조선처럼 합병 못 했고 괴뢰국을 두어 이권만 챙겼을 정도입니다  
 
 
 
역사가 이러한데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
 
러시아가 한반도를 식민지 화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한
 
존재 가능성도 없는 헛소리입니다  
 
 
러시아의 극동 정책 자체가 애초에 만주와 중국을 말하는 것이고
 
한반도 자체는 식민지화의 대상 자체가 아님은 너무 자명한 사실입니다.
 
19세기 20세기 초 지구상에 모든 열강중에 중국과 같은 유일무이한 큰 시장을 두고
 
한반도를 식민지 대상으로 고려한 국가는 일본 말고 아예 없거든요
 
일본 자체가 식민지화 대상으로 고려 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옆에 중국이란 거대 시장의 존재 때문이고 일본 자신들 조차
 
그런 이유로 외세의 침탈을 모면하며 메이지 유신을 순조롭게 진행했는데
 
당시 열강이 무슨 약을 빤것도 아니고 뜬금 없이 한반도를 왜 노리겠나요
 
심지어 한반도의 경우 삼면이 바다인지라, 일본이 기각된 이유처럼  
 
인접한 주변국도 아닌 원거리 국가의 경우
 
영국과 같은 강력한 해군 강국이 아니면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1907년을 기점으로
 
유럽 내부의 외교적 지형과 정책이 송두리채 변화합니다.
 
과거 유럽지역에서 영국, 프랑스에 적대국으로 찍혀 저지당한 러시아의 경우
 
독일과 우호적 관계를 통해 최소한의 끈을 유지하는 중이었는데
 
20세기 초 민족주의의 극렬한 득세속에서 발칸문제가 발단이 되어
 
독일이 비스마르크 외교정책이라 불리워 지는
 
대 러시아 우호 외교를 페기하고 발칸 이권에 적극 개입하게 됩니다.
 
 
과거 영국+프랑 VS 러시아 +독일 구도로
 
기존 식민지 제국과 신흥 식민지 제국간의 쟁탈전 양상이던
 
유럽의 외교 구도가 송두리채 무너지고
 
 
영국 + 프랑스 + 러시아 동맹 체제가 새롭게 결성 된 것이죠
 
러시아가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국책 방향이 유럽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게 나폴레옹 전쟁의 경험으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유일한 지역이 오직 유럽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이권이고 자시고를 떠나 유럽문제는 국가 존립의 문제입니다.
 
1907년 러시아는 영국과 협정을 맺고
 
그레이트 게임의 종결은 물론
 
극동 문제에서도 완전 이탈하게 되어 발칸에 올인하고
 
그런 긴장 관계가 폭발한게 1914년 1차 세계대전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극동문제는 한반도도 아니고 그냥
 
만주, 중국을 말하는 것이고
 
그 조차도 건국이래 정책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는
 
단지 10여년 정도 잠깐 등장한 정책일 뿐입니다
 
유럽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자 마자 바로 손 뗀게 그러하고
 
심지어 현대에 이르기 까지
 
러시아는 극동문제를 유럽, 중앙아시아 보다 단 한번도 중요하게
 
정책적 목표로 설정한 역사가 없는나라입니다.
 
 
 
그런데 무슨 러시아가 러일전쟁을 이기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무슨 공산화하고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주장할까요???
 
 
개항이래 한반도의 식민지 화를 정책으로 삼았던 국가는
 
지구상에 일본이 오직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 말고는 식민지화를 안하면
 
지들도 생존 자체가 불가능 하거든요. 중국 시장이란 것도
 
한반도를 먹어야 진출 하던지 말던지 하죠
 
그런 목적이 뚜렸하니 국가의 사활을 걸고 한반도를 먹어야 한다
 
일본 고무라 외상이 대놓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일본의 이런 사활을 건 국가 정책의 수행을 위해
 
무러 한 세대 이상 지속 되는 지속적이고 치밀한 정책으로
 
한반도 식민지화에 영향을 주는 주변의 2 강대국을 전쟁으로 이탈 시킨 것이고
 
더이상 간섭할 국가가 없는 힘의 균형이 무너진 한반도를
 
강제로 식민지화 할 수 있던 것 뿐입니다.
 
간단하게 그 과정에서 청나라, 러시아 단 한 국가만이라도
 
그런 일본을 꺾었음 한국은 독립했습니다.
 
(일본이 포기 안했을 테니 한국이 근대화할 시간을 벌도록
 
최소한 식민지화 시기라도 늦출 수 있었습니다)
 
 
 
청나라, 러시아 모두 한반도 식민지화에 관심 없던 나라고
 
전후 일본측에서 전쟁의 합리화와 식민지 당위성을 위해
 
수십년간 주구장창 만든 일본측의 자료와 논리만 볼게 아니죠
 
러시아 자료를 못 보는 무슨 냉전 시대도 아니고
 
이미 공개된 러시아 측 문서보관소 자료가 충분히 인용된지도 오래고   
 
아니 당시 세계사와 국제여건 조금만 상식을 가지고 보면
 
무슨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음
 
러시아가 한반도를 먹었네 이런 헛소리 못 합니다. 
 
 
 
과거 냉전 시절
 
러시아의 존재가 곧 소련이고 공산주의 국가인지라
 
러시아 자료는 열람도 못하고 러일전쟁의 연구자는 일본인 아니면
 
일본에 우호적인 영, 미 학자들 뿐이니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일본 우익이 우리가 너희 안먹었으면
 
너네 소련처럼 공산화 되었다는 낡은 주장을 고스라니 인용해
  
그게 전부인양 배워 온 분들이 있습니다
 
뉴라이트가 득세하던 2천년 초반
 
일본 우익잡지에 똑같은 헛소리를 기고했다가
 
국내 역사학자들에게 욕 오지게 먹고 매장 된 교수도 있죠
 
그런 무식한 주장은 욕먹어 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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