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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 칙령 – 1492년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령
게시물ID : history_270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5
조회수 : 174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02 15:48:06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 세 개의 세계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1월 2일 스페인은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Granada를 정복하여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종결하게 되었다. 3월 31일에는 유대인 추방령인 알람브라 칙령(Alhambra Decree)의 포고가 있었고, 8월 3일에는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 출발이 있었다.
 
1492년의 스페인 유대인 추방령은 향후 세계 강대국의 변천 그리고 부의 이동과 유대인의 이동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세계사에서 주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유대인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유대인 공동체를 건설했다. 화려했던 이 시기는 결정적으로 1392년의 반유대주의 폭동과 1492년의 알람브라 칙령으로 끝이 난다. 그 결과로 학자들 간에 숫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20만~25만 명의 유대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4만~10만 명의 유대인들이 망명해야 했다.
 
알람브라 칙령은 그라나다 정복이 이뤄진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칙령에서 명시한 유대인들의 죄는 "신성한 가톨릭 교리를 무너뜨리고 신앙 깊은 교도들을 무너뜨리려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단 4개월 만에 떠날 것을 강요받거나 개종을 명령 받았다. 당시 스페인 인구 700만 명 중에서 유대인은 수십만 명 정도였지만, 도시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스페인은 유대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칙령에 "유대인의 모든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반출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단서 조항으로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금지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만 재산의 반출을 허용했을 뿐 실제로는 금지시켰다.
 
알람브라 칙령 당시 스페인에 있던 의사는 거의 유대인이었다.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도 유대인이었고, 주 납세자도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또한 은행가, 상인, 고리대금업자였으며, 여러 왕들 밑에서 재정 관리를 담당했었다. 유대인들은 또한 스페인의 귀족들이 자신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고 꺼리던 일까지도 기꺼이 떠맡았다. 유대인 관리들이 없다면 왕실 재정은 파탄에 이르고 스페인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되자 이런 예상은 현실로 나타났다.
유대인 추방은 스페인 역사에 치명적이었다. 우선 스페인은 앞으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하여 절실히 필요했던 수많은 재능과 서비스를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 스페인의 브레인이 빠져나간 것이다. 유대인과 함께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떠났을 때, 그들을 받아들인 아랍 본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스페인은 가난을 택했다."
 
8월2일 마지막 유대인이 추방된 날,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 출항했다. 콜럼버스가 유대인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
 
유대인 추방의 명분은 종교적인 이유였다. 가톨릭 왕들은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 이후 기독교 문명에 대한 이슬람의 압력 격화에 대한 반응(종교적 불관용의 강화)이자, 가톨릭의 정통 신앙과 인종의 순수한 피를 기반으로 가톨릭 왕국의 통일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바닥난 국고를 재정비하고, 유대인에게 빌린 빚을 청산하며,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영주며 기사들에게 나눠줄 땅과 재화를 유대인에게서 빼앗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이때 쫓겨난 유대인들의 주류는 포르투갈을 거쳐 네덜란드에 자리 잡아 16~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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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0년 ~ 1600년 유럽에서의 유대인 추방과 재정착 지역
 
 
근대 세계사에서 세계 패권 국가의 흐름을 보면 네덜란드, 영국, 미국의 순으로 패권이 이동되었다. 유대인의 이동과 일치한다. 유대인이 유럽에 퍼지면서 근대 자본주의도 싹텄다.
 
자본가와 혁명가 양 진영 모두에서 유대인은 독보적이다. 로스차일드, 리카도, 골드만, 듀폰, 소로스 등과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체 게바라, 로자 룩셈부르크, 콘 벤디트 등은 모두 유대인이다.
 
‘시온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오도르 헤르츨이 “우리가 사회의 밑바닥에 있을 때는 혁명가가 되고 정상에 있을 때는 자본가가 된다”고 한 게 괜한 말이 아니다. 오른손에는 자본, 왼손에는 혁명인 셈이다. 일찍이 헨리 포드가 『국제 유대인(1922)』이란 저서에서 유대인의 파워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 이유다.
 
'희생자인가 지배자인가'라는 어느 책의 카피가 떠오른다.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492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http://yellow.kr/blog/?p=1457
출처 http://yellow.kr/blog/?p=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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