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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논쟁에 대한 간략한 소개
게시물ID : history_275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10
조회수 : 103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7/02/19 03:40:57







마케도니아를 둘러싼 논쟁은, 마케도니아에 대해 각국이 민족적 연결성을 주장하여 마케도니아에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함이다.
이 지역은, 주변 민족들의 문화적 영향들로 마케도니아인과 주변 민족들간의 정확한 경계가

명확히존재하지 않고 매우 모호하다. 마케도니아 논쟁은
이런 배경 속에서 격화했다.

.


Macedonia_region_map_wikipedia.png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마케도니아 지방(점선)



이런 결과로 1, 2차 발칸전쟁을 거치면서 마케도니아 지방은 최종적으로 여러 국가가 나눠가졌다.

그리스는 1913년 최종적으로 남부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에게 마케도니아를 차지했고 세르비아 왕국은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 지역을 비롯한

중부 마케도니아를 불가리아는 동부 마케도니아를 획득했다.


마케도니아 논쟁에서, 가장 적은 이익을 보았으며 마케도니아 지역의 귀속을 가장 강하게 바라던

불가리아는 근방 발칸 국가들, 그리스-세르비아에 아주 큰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슬라브인들은 중세 불가리아 지배 하에 불가리아인으로 동화되어 이후,

서부 불가리아인이 되었으며 언어상으로 마케도니아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가 불가리아어이므로

마케도니아가, 적어도 세르비아가 가져간 중부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의 일부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하여 불가리아인들은 현재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마케도니아인이나

마케도니아어를 서 불가리아인, 서 불가리아어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만, 외교상으로는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가 국가임을 인정하였고 상호간에 외교관계를 맺고있기

때문에 21세기 접어들어 불가리아-마케도니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세르비아는 마케도니아 일대의 세르비아인, 특히 세르비아 마케도니아와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 지역의

마케도니아는 역사상 오랫동안 세르비아의 일부였으며 세르비아인으로 불려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세 세르비아 이후, 근대 세르비아 왕국도 마케도니아 일대를 점유했으므로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특히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 지역 영토 종주권이 세르비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많은 파이를 얻어낸 그리스는 고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문화권에 속한

그리스인이었으며, 중세 이후 슬라브족이 정착했지만 이 지역의 마케도니아 슬라브인,

혹은 불가리아인들이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견지하던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분할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여, 고대 마케도니아인은 우선 그리스와 관련이 없으며

슬라브인들이 이 지역에 이주해왔지만 마케도니아인들은 민족정체성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나 세르비아어와 구별될 수 있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불가리아-세르비아가 가져간 마케도니아 영토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마케도니아의 생각은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을 때에는 비교적 소강상태였으나

1991년 9월 국민투표에서 독립을 결정지으면서 다시 불 붙었다.


특히 갈등은 그리스-마케도니아 사이에서 일어났다. 시작은 '마케도니아' 명칭의 역사적 귀속을

주장하는 그리스가 마케도니아 공화국 국명에 반발한 것에서 시작하였다.

또한 위 지도와 같이, 마케도니아 독립 즈음해서 구 마케도니아 지역을 마케도니아로 통합하자는

영토 회복운동이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났던 것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결정적으로는 1991년 9월 17일 마케도니아 공화국 선포 이후 만들어진

마케도니아 헌법 초안 때문이었다.


마케도니아 헌법 초안 2조에 마케도니아 영토는 결코 분할되거나 양도될수 없다는 것,

49조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이웃국가에 거주하는 마케도니아인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하고

그들의 문화발전을 지원하고 그들과 연계를 강화한다라는 조항이 문제였다.


이 헌법 초안에 그리스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전의 국경선을 존중할 의사가 없다는 것, 그리스 북부의 이른바 마케도니아 주장에 따르면,

북부 그리스의 옛 마케도니아인들에 대해 관할권, 내정간섭을 행사하겠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이 지역에 마케도니아인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Makedonija_-_Etnicki_sastav_po_naseljima_2002.gif

마케도니아 민족 분포


그리스의 반발이 마케도니아 자체와 문제가 있었다면, 세르비아의 경우에는 북 마케도니아 일대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의 지위문제, 마케도니아가 세르비아인 자치주를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의 공산 불가리아 설립 이전,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민족적, 역사적 귀속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 독립을 비교적 순탄하게 인정했다. 이는 공산 불가리아 붕괴 직후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 를 두고 그리스와 경쟁을 벌일 입장이 아니었으며, 불가리아마저

마케도니아의 독립국 지위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서 그리스의입장을 강화시키는 것보다 마케도니아를

우선 인정하고차후에 불가리아-마케도니아 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자체는 인정하였지만 마케도니아인, 마케도니아어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하였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어, 마케도니아인은 존재하지 않으면 불가리아인,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방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1999년 변화하여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불가리아의 마케도니아 지방을 회복을 주장하는 것을포기하고

불가리아의 마케도니아에는 마케도니아인이 없으며 불가리아인만이 살고

있다고 인정하는 대신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불가리아, 세르비아가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취한 반면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마케도니아 명칭이 그리스 밖에서 사용된다면 그리스의

이익을 훼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포르투갈이 중재를 위해 구 마케도니아와의 연결성을 끊을 수 있는

신 마케도니아 공화국 (New Macedonia)이라는 국호를 제안했지만, 양측 모두 거부하였고

1992년 6월 EU회담에서 마케도니아 국명에 마케도니아를 제외할 것이 마케도니아에 제의했지만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거부하였다.


EU가 다분히 그리스편에 서서 의견을 펼치자, 마케도니아는 1992년 9월

마케도니아 지방 전체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대 마케도니아'를 국가 목표로 선포하였다.


마케도니아는 외교적 고립 속에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고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안보리에서 817항 결의를 통해 1993년 8월 17일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승인되었다.


Greece_location_map.svg.png


그리스-마케도니아간 갈등은 이것으로 사실상 종결되었고 이 지역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스-마케도니아 간 격차가 상당하고 그리스의 테살로니카가 마케도니아의 주요 수출입 항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테살로니카를 봉쇄하여

마케도니아에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1995년 9월 13일 양국은 봉쇄를 풀고 '대 마케도니아' 등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그리스-마케도니아 관계는 정상화 되었으나 국명 문제 등 여러 가지 불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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