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툴루즈 전투 (Battle of Toulouse) - 721년
게시물ID : history_27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7
조회수 : 103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2/25 10:48:52

툴루즈(Toulouse) 전투 (721년)는 아키텐(Aquitanian)의 오도(Odo) 대공의 기독교 군대가 툴루즈를 포위한 이슬람 우마이야(Umayyad) 왕조 알-안달루스 총독인 알-삼(Al-Samh ibn Malik al-Khawlani) 총독이 이끄는 이슬람 군대에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이슬람 세력의 나르본에서 아키텐으로의 확장을 저지하였다. 즉, 현재 프랑스 남부 지역을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할 유명한 전투인 '투르 푸아티에 전투'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투르 푸아티에 전투 (Battle of Tours) – 732년 : http://yellow.kr/blog/?p=1761


711년 이슬람 군대는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고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다. 719년에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나르본을 점령하여 산맥 너머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그리고 721년에 아키텐을 공략한다.


오도 대공(Odo the Great, ? - 735년)의 출신은 모호하다. 프랑크 왕족이라는 설이 다수지만, 로마인이라는 설도 있다. 오도는 700년 무렵에는 아키텐의 실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도는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아키텐의 독립을 기도했던 인물로, 아키텐에서는 대왕 또는 대공이라는 별칭의 the Great로 부른다. 이슬람과 손잡고 아키의 분리 독립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계기로 카를 마르텔의 종속인이 되었다.


민족국가 형성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툴루즈 전투는 서구 기독교 세계를 무슬림의 파도로부터 구출한 사건이었다. 역사적 대결에 뛰어든 기독교 전사들은 이런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도 대공은 그보다는 아우스트라시아의 피핀 왕조와 코르도바 총독들의 몰락을 더 원했을 것이다. 대공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공국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군대와 싸웠다.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mhistory2.jsp


툴루즈는 프랑스의 남서쪽 가론 강 연안, 지중해와 대서양으로부터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있는 도시이다. 미디피레네 레지옹과 오트가론 주의 중심지이다. 2010년 현재 인구 441,802 명으로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며, 근교를 포함한 대도시권은 1,218,166 명으로 프랑스에서 5번째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721년툴루즈전투.png

- 721년 툴루즈 전투 당시의 역사지도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아보았다.


※ 발췌 : http://yellow.kr/blog/?p=1800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