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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문룡과 가도 주둔 명군
게시물ID : history_276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금연구가
추천 : 6
조회수 : 172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3/03 02:44:03
사드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과 미국간에 끼여서 샌드위치 식빵 사이에 낀 치즈 신세가 되었는데, 이것을 정묘, 병자호란에 빗대어 예측하신 분들이 많이들 계셨고 대표적인 분이 한명기 교수님이죠 주로 임진왜란~인조 시기 역사 관련 책과 기고문을 많이 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모문룡 편을 올려 봅니다.

누르하치에게 명군이 와장창 깨지던 그 과정에서 모문룡이란 장수가 등장합니다. 요동의 주요 성들이 누르하치에게 함락되고 패퇴하던 명군들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이 인물이 요동에서 탈출해서 의주 쪽으로 옵니다. 그러다가 상사인 요동 순무 왕화정의 지시로 진강이란 도시를 공격하여 일시적으로 승리합니다. 진강은 오늘날의 단동입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의주-신의주와 맞보고 있는 중국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뒤통수 날리기로 얻은 일시적인 승리였을 뿐 곧 여진군의 반격으로 강냉이가 털리고 조선으로 넘어 옵니다. 

사실 모문룡의 실력은 보잘것 없었지만 워낙 연패하던 명군 입장에서 비록 소규모이고, 일시적인 승리였지지만 모문룡의 진강 일시 탈환은 뜻깊은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인해서 명나라 중앙에서 모문룡을 과대평가햇다는 것입니다. 모문룡도 모문룡 나름대로 박사모가 친박집회 참여자가 5백만이라며 국민 대다수는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다고 뻥을 치듯이 자신이 여진 야만족 따위야 초전박살 내고 요동을 수복하겠다고 그럴 역량이 있다고 뻥을 친 탓도 잇었습니다. 

이때가 광해군 집권기 였습니다. 그런데 모문룡이 순 사짜임을 파악한 광해군은 가도라고 해서 평안도 철산 앞에있는 섬으로 들어가게 한 뒤에 철저히 무시합니다. 물론 광해군은 거기가 섬이라서 말만 탈줄 아는 여진족은 못쳐들어가지만 모씨 당신은 쳐들어 갔다가 빠질 수 있는 곳 이라고 꼬시긴 했습니다. 

가도의 전략적 위치를 보면 광해군의 말이 맞긴 했지만 패잔병 신세였던 모문룡 입장에서는 조선의 원조가 없이는 요동침투 작전은 고사하고 생존이 불가능했습니다. 어쨌건 명이 패권국으로서의 위치가 아직은 건재하던 시절이었기에 비위를 맞추기 위한 측면에서 모문룡을 원조하긴 했으나, 연명할 정도의 지원만 해주고는 나머지 지원 요청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러나...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내고 정권을 차지한 인조는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명의 승인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오늘날이야 상호 평등한 주권국가의 관계에서야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강대국의 승인 여부가 다른 나라 정권의 정통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지만...

당시 유교적 천하질서에서 명나라 황제는 유교국가조합의 총회장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귀하는 조선 지역 조합장이 맞다고 확인해줘야 했던 겁니다. 


광해군의 중립양다리 외교 때문에 인조는 당연히 명의 승인이 제깍 내려올 줄 알았지만 명은 광해군의 양다리 외교에 철저히 속아서 오히려 광해군을 친명 국왕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종(인조 이름)이 역적놈의 새퀴야 감히 삼촌을 내쫓고 니가 임금이 된다고?" 한 겁니다. 

다급해진 인조는 모문룡을 로비스트로 삼습니다. 모문룡에게 둔전 경작권과 제염권을 주고 원조를 시작하고 모문룡에게 바리바리 떡값을 챙겨주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명나라 조정에 대고 "광해군은 감히 왜란때 구해준 황제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캐들과 양다리를 걸쳤고 황제님의 군대인 모문룡 군대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이에 새 정권은 황제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200년 의리를 생각하여 모문룡 대인의 군대와 함께 오랑캐 깡패 자쉭들을 때려눕히겠다고 맹세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조선 사신들의 공작과 모문룡의 로비, 그리고 당장은 후금을 격파해야하는 다급함으로 인해서 명은 인조를 승인하고 승인하는 대가로 "너네가 맹세한대로 모문룡과 함께 오랑캐들 뒤통수를 제대로 날려주기를 바란다."라고 합니다.

이로인해서 조선 정권은 모문룡에게 제대로 코가 꿰이고 맙니다. 모문룡은 상국의 장수이자, 인조의 정통성 확립을 성공시켜준 은혜로운 로비스트였기에 기세가 마구 올랐습니다. 오랑캐 토벌과 로비의 대가를 요구하며 명나라 조정과 조선 조정 양쪽에서 원조를 받았고 심지어 조선, 명, 후금 사이의 삼각 밀매부역을 벌여서 축재까지 벌입니다. 그리고 수익 중의 일부는 당시 명의 황제 천계제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던 환관 위충현에게 바칩니다. 

천계제는 박근혜, 위충현은 최태민 최순실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문룡이 말로는 오랑캐를 무찌르고 요동을 수복하겠다면서 몇차례 출동했지만....그게 몽땅 뻥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배타고 대충 후금 영토내에서 깔짝깔짝 거리다 도망나와서는 가도 부근 평안북도를 습격해서 주민들을 학살하여 머리털을 박박 밀어서 변발처럼 꾸며서 여진족들 때려잡았다고 선전하고 약탈, 방화, 유괴납치, 폭행,부녀자 성폭행을 저질렀던 겁니다. 

병사들 뿐만아니고 요동이 깨지면서 피난 온 명의 주민들까지 가도에 꼽사리로 들어와 있었는데, 개중에 양심있는 쪽은 제값 치르고 조선주민들과 장사를 했지만 대다수 가질것 없는 피난민이던 이들은 모문룡 군대의 위세를 빌려서 같이 약탈행위를 자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끽 소리도 못했습니다. 왜냐 모문룡은 바로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 은혜로운 로비스트였고, 명의 실세권력인 명나라의 최순실 위충현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즉 모문룡을 건드리는 것은 명을 건드리고, 이는 곧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초래되니 참고만 있었습니다. 

오직 이충무공의 조카인 의주 부윤 이완만이 군사들을 풀어서 행패를 부리는 모문룡 패거리들을 잡아다가 곤장을 때렸을 뿐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문룡측이 조선 조정에 항의하여 이완은 직급 1게급 강등이란 징계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이 모문룡이 계속 후금 영역에 들어가서 까불락거리니까 후금은 이것이 매우 신경쓰였는데 이 귀찮은 모문룡을 조선이 계속 원조해주고 또 이 모문룡과함께 무찌르자 빨갱이 오랑캐를 외치니까 덩달아서 조선도 안 좋게 보게 된겁니다. 

더구나 당시 요동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서 식량이 태부족에 굶어죽는 자가 속출하여 어디서인가 삥을 뜯어낼 곳도 필요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벌어진 것이 정묘호란 제1차 조청전쟁이죠. 후금이 쳐들어오자 인조 정권은 당황합니다. "아니 우리는 후금에게 원수 질일을 안 했는데 왜?" 

흔히 인조 정권을 두고 친명배청이라고 하지만 그건 순 내부선전 용이었지 실제 외교 정책에서는 광해군의 양다리 외교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모문룡을 원조해주느냐 안 해주느냐, 비록 구호에 그치는 것이긴 했지만 무찌르자 오랑캐를 주장하며 국정 목표로 삼고 있었느냐 아니냐는 것의 차이 였죠. 그러면서도 광해군처럼 더러운 야만족의 일따위는 관심가지고 싶지 않다면서 사신을 보낸일도 없고, 그렇다고 정보수집을 부지런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늘 세작들을 풀고 강홍립을 통해서 중국 대륙의 정세를 면밀히 파악하던 광해군과는 달랐습니다. 덕분에 중국 대륙의 정세에 대해서는 깜깜해 진 상태였습니다. 

인조 정권은 그거 순 내부 선전용인데 그거때문에 설마 여진족애들이 열받아서 쳐들어 오겠어? 했지만....

쳐들어 왔습니다....이괄의 난으로 광해군이 키웠던 북방 정예병력들이 모조리 날아간 상태에서 조선군은 연패를 거듭했고 인조는 강화도로 도망갑니다. 뻥만 치던 모문룡은 역시 내가 곧 대포를 끌고가서 그 오랑캐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겠다면서 호언장담했으나 뻥으로 끝이 났고....오히려 조선이 후금군과 즉당해 자신을 죽이려했다며 생억지를 부렸고 명나라 조정에는 자신의 눈부신 횔약으로 오랑캐 군대를 박살내서 조선을 구출했다는 허위보고를 합니다. 


정묘호란은 인조와 청 태종이 서로 형제관계를 맺고 후금에게 유리한 불공정 무역을 하고 조선에 후금에게 일정량의 세폐를 정기적으로 바친다는 조건하에 끝이 납니다....


그리고 후에 청 태종이 황제를 칭하자 이에 동의하지 않은 조선으로 인해서 열받은 청 태종이 쳐들어온 것이 병자호란이고...

모문룡은 정묘호란이 끝난 뒤에, 역시 모문룡의 사짜 기질을 혐오하던 원숭환에 의해서 그자리에서 즉결 처분으로 참수형을 당합니다. 원숭환은 명군의 동북방어 전반을 책임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새말로하면 중국 동북군구 최고 사령관 정도 될 겁니다. 모문룡이 죽은 뒤에도 병자호란이 끝날 때까지 가도의 명군 주둔은 계속 되지만...모문룡이 죽은 뒤에 가도의 명군 총대장이 된 자들도 모문룡과 별다를 바 없는 작자들로, 여전히 횡포와 삥뜯기, 무례를 범하기 일쑤였습니다.

병자호란이 조선의 패전으로 끝나고 승전국 청의 요구대로 조선은 가도 주둔 명군 제거 작전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가도의 명군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가도 명군 제거 작전을 두고 조선군과 청군이 연합작전을 펼쳤는데 정작 조선군이 청군보다 더 가혹하게 가도 주둔명군을 진압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런 조선군을 보고 가도 주둔 명군은 "우리가 조선에 무슨 죄를 그렇게 저질렀다고 청군보다 더 가혹하게 우리를 진압하느냐."라고 했다지만...


이는 과거에 지들이 조선을 상대로 저질렀던 각종 범죄행위와 진상짓을 제대로 생각 안하고 한 망언에 불과한 것이었지요. 아마도  조선군이 청군보다 더 가혹하게 가도주둔명군을 진압힌 이유는 그간에 쌓인 원한이 매우 깊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오랑캐보다 더 나쁜 한적(漢賊)넘들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한적이란 한족 도둑이란 뜻입니다. 심지어 인조 정권의 대신들조차도 가도 주둔 명군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뒤에서만 이렇게 욕했을뿐, 실질적 대책은 없었습니다.

 
결론 : 모문룡의 가도 주둔 명군은 조선에게 폐만 끼치고 도움은 안 되던 백해무익한 존재였다. 그리고 인조와 인조 정권은 자기들의 집권정통성때문에 모문룡의 호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조리 조선의 국민들이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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