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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 방진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 -2
게시물ID : history_276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4
조회수 : 9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03 22:24:32
뽕이 식기 전에 한 편 더 올려봅니다,

보병의 방진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은 동인녀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한때 수많은 선량한 이들을 낚으신 시오노 나나미 여사님의 로마 덕질에 의하여 평가 절하된 팔랑크스를 빼놓을수 없을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방진이야 있었겠습니다만 시스템적으로 완성본이 도출된 것은 이 것이 시작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late-greek-hoplites.jpg

그런데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 것 중 하나가 --위키에도 올라온 이야기입니다만 팔랑크스를 이야기할때 결코 팔랑기타이만을 별개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팔랑크스라는 것은 중장보병을 중심으로 하는 보조 경보병과 기병이 하나의 시스템이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를 말하는데 어느 특정 게시판만을 꼽지는 않 잖아요? 모든 게시판이 모여야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가 설명되지요, 근데 각각의 게시판들이 오늘의 유머가 아닐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거랑 같다고 보시면 되요.

애시당초 팔랑크스라는 보병 방진 시스템이 망치와 모루 즉 팔랑크스가 보조 경보병들과 함께 정면에서 적을 붙잡고 있으면 기병이 우회 돌격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이 골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적의 측면 공격을 기민하게 대처할수 있다는 자체가 --위키의 설명을 반박할수 있음과 동시에 얼마만큼 이 들이 정예였는지를 말해줍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팔랑크스가 단순한 모루였는가 하면 그 건 아닙니다, 자 문과도 잘 아는 과학 상식을 하나 생각해보면 힘 = 질량 + 가속도라는게 있지요, 그와 같이 이 들은 대열을 흐트려뜨리지 않는 범주내에서 수십미터를 정도의 거리를 냅다 달려들어 적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것을 오스티모스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팔랑크스의 핵심중 하나입니다, 단순한 망치와 모루를 넘어 확실한 타격력을 가지고 있는셈으로 이러한 오스티모스는 약점이자 강점이 되었는데 그 것이 바로 마케도니아 식 팔랑크스의 핵심입니다.

필립 2세가 그리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병제를 개혁함에 있어 자국의 군대의 무력함을 통감하였고, 그 결과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창안한 것이 장창병을 중심으로 하는 방진으로 주요 골자는 부족한 훈련에서 이어지는 부족한 사기 그러니까 쉬이 일어나는 모랄빵을 최대한 긴 리치로 적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틀어 막겠다는 거죠,

800px-phalanx.jpg

대강 초창기의 사라사는 4-5m 정도 됩니다만 이 것을 들고 행진한다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라 창을 두 파트로 분리하는 한편, 호플리타이들의 중무장에서 벗어나 '비교적' 가벼운 린넨 갑옷으로 대체하였고 최대한 군장을 가볍게 하였습니다...라고 해야 사실 도리(창)을 사라사로 바꾼 것뿐이라 큰 의미도 없고 뒤로 갈수록 청동 갑옷으로 바뀌는 등 중무장 되는 경향도 있었죠.

다만 당시 활의 위력이야 기본적인 나무 방패는 물론이거니와 린넨 갑옷이나 하다못해 창대로 막을 정도는 되었고, 당장 그리스의 팔랑크스가 3m 정도 되는 창을 들어 내밀었을때 1.5m 정도의 리치를 가진다면 이 친구들은 리치가 기본적으로 3m는 되었고 1열을 뜷어봐야 2열 3열 줄줄이 적을 맞이하였기에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답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잘 상상이 안 가실것 같아 그림 하나를 첨부하자면

1488546416.jpg

요렇게 오스티모스를 하는데 마케도니아 놈들에게 달려들어봐야 아예 닿지를 않습니다, 1열을 뜷어봐야 2열 3열 4열 말 그대로 자신들의 가속도와 무게를 실어 부딪히니 줄줄이 꿰뜷려나가고 밀려무너집니다, 거기다 이론적으로야 창 아래로 들어가면 혹은 최 전열이 전열을 무너뜨리면 파훼할수 있다지만 저 친구들도 기본적으로 칼은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2열 3열 등 뒤에 있는 친구들이 노는 것도 아니고요.

측면을 노린다고 해봐야 경보병들이 좌 우 측면을 받치고 있는데다 후위로 기동하는 기병대도 문제이고 또 팔랑크스의 기민한 대응은 무시할것도 못되서 여러모로 난항을 겪어야 했으나 물론 그리스 친구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마케도니아 밑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패배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마케도니아 식 팔랑크스를 담습하여 장창이 근간이 되는 바는 일부 아시아와 헬레니즘 문화권에 널리 퍼졌고, 조금이라도 더 긴 리치를 얻으려 경쟁을 거듭한 끝에 7.5m에 이르는 긴 장창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만 사실 이러한 과열이 팔랑크스라는 방진의 약점이나 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인프라가 붕괴하여 나가는게 문제로 이 중장보병들은 각자의 무구를 각자가 장만해야되는 특성상 시민권과 재산을 가진 중산층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만 그 근간 자체가 뒤흔들리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라는 하나의 문화권이 가진 전통적 정치체제 및 인식이 가져온 바가 크지요,

갑자기 역사 상식으로 넘어가는데 요약하자면 결국 그리스 인들의 선민 사상이 문제라는 것으로 디아도코이의 말기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그 들에게 바르바로이는 함께 나아가야 할 우리가 사회 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 였고, 그 들과는 어떠한 이해관계가 성립될수 없었으며 그러하기에 상시적으로 부딪힐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비단 바르바로이 뿐만은 아닌게 그리스는 본디 민주정입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는 왕정 국가이지요,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생각하는 바 모두가 달랐습니다, 그러하기에 사트라프 부터 키레나이카, 수단 등 디아도코이는 물론이거니와 생각할수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끊임없이 병력은 소모되어 갔습니다만 이를 보충해줄 중산층 및 상비군의 자원은 외부의 유입 없이 자체적으로 충당해야 되는바 이미 디아도코이가 성립된 이후부터 회복이 가능한 단계를 아득하게 넘어가고 잇었지요,

그 결과 질적 숫적 문제는 물론이고 팔랑크스라는 시스템을 지탱해야 할 기병과 경보병 등 보조병의 숫자는 참담하리만치 떨어졌고, 결국 키노스케팔라이, 피드나, 마그네시아 등지에서 그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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