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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에서의 장개석 진영의 내부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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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고금연구가
추천 : 1
조회수 : 97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3/06 12:12:46
장개석이 공산당을 습격숙청했던 시점에서 국민당과 장개석의 전력차이로 따지면 국민당의 힘은 공산당의 60배 이상이었습니다.그리고 국공내전 시작 시점에서 국민당의 전력은 공산당의 4배였고 미국의 원조를 더하고 있었으나 결국 패배하여 대만으로 쫓겨났습니다. 장개석 정권 내부의 문제에대해서 지적해보겠습니다.

1. 중일전쟁으로인한 타격이 너무 컸습니다.공산당이 항일을 부르짖었다고는 하지만 공산당은 일제점령구 내의 독립적인 유격대의 활동 중심이었고 임표의 평형관 전투같은 활약이 있긴했지만 공산당의 본거지인 섬서성 일대는 최전선에서 먼 곳에있어서 일본에의힌 타격이 적었고 일본군과는 주로 국민당군이 싸우면서 계속 타격을 받았습니다.


2. 장개석의 경제개혁실패가 있습니다.중일전쟁과 대기근의 후유증으로 경제상태가 어려웠는데 여기에 더해서 토지개혁을 하지않아 농민들의 지지를 잃었고, 화폐개혁으로인해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면서 중산층, 노동자의 신망을 잃었습니다.

3. 국민당군대는 통일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군벌연합체같은 성격이었습니다.그러다보니 일사불란한 지휘가 안 되었고 각자가 각자의 이익을 생각하느라 협조가 안 되고 손발이 안 맞았습니다.이를테면 좋은 무기는 장개석 중앙군이 차지하고 타군벌 군대에게는 주지 않는다 던가...그리고 장개석직속군을 제외한 군벌군은 사기도 낮았고 전력도 형편없었습니다. 반면에 공산당은 대장정 과정에서 중앙공산당 인사들이 모택동에게 굴복했고, 경쟁자 장국도가 자멸하며 모택동의 영도 아래 완전 통합된 상태였습니다.

4.장개석의 독불장군식 통치와 강압적인 파시즘 통치로 인해서 지식인들과 대중들 이반했고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주장을하는 공산당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여기에더해서 일제점령구에서 일제부역자들 잡아들인다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점령군 행세를 하는 바람에 민심을 잃었습니다.대만의 2.28 학살사태도 이래서 일어났죠.그러나 막상 장개석이 한간(일제앞잡이)처벌에 공산당보다 소극적이란 평판을 얻으며 민심 이반이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5. 지휘괸들의 무능과 부정부패...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여기에 교훈을 얻은 장개석은 대만에서는 부정부패는 무조건 극형으로 다스리게됩니다.지금도 대만은 공무원들 부정부패에대한 처벌이 무지 셉니다.


6. 동북지구, 그러니까 민주를 공산당에게 내주었습니다.일제가 중국침략을위해 공장을 동북에 엄청많이 세웠기에 만주는 중국의 최대공업지구 였고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만주 선점에 열을 올렸으나 결국 소련의 도움으로 동북을 먼저 접수한 공산당이 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7. 미국의 원조가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미국의 도움에 도취하여 온실 속의 화초화가 되었다고 해야하나.그리고 연패하면서 미제 무기가 공산군 손에 들어가며 오히려 국민당을 위협했습니다.게다가 정작 미국 여론은 장개석을 부정부패하고 무능하고 케케묵은 집단으로 인식하여 원조에대해서 논란이 많이 일어나면서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원조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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