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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무저항투쟁이 먹힐 수 있었던 배경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게시물ID : history_27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ogenes
추천 : 2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3/17 13:36:44
모든 것에는 맥락이라는게 있는데 그걸 잘라먹고 특정한 싯점만 강조하면 이상한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심지어는 심대한 해까지 끼치죠.
 
제가 보기에는 간디의 무저항투쟁이 단순히 간디의 도덕적 투쟁(?)의 소산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 싶더군요.
 
일단 당시 인도에는 영국 식민당국에 대해 대표성을 띄고 발언할 수 있는 정치주체가 존재했죠. 국민회의가 그거죠. 그게 애초에는 인도의 식민통치를 위해 영국이 깔아 놓은 밑밥 같은 건데 이게 어느 순간 돌변하여 인도 독립의 초석이 된 거죠.
 
대놓고 인도 하층민은 백주대로에 학살할 수는 있어도 이들 국민회의 요인 정도라면 아무리 서슬퍼런 영국 식민당국이라도 함부로 못하는 셈이지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결국 뭡니까? 전국적인 정치조직 아닙니까?
 
청원의 형식으로 또는 대의자가 항의를 한다는 방식으로 영국 식민당국에 대드는 건데 이 쯤 되면 단순히 총칼로 짓밟아 버릴 수만은 없는 거죠.
 
이런 든든한 빽이 있기에 간디는 지고지순하게 무저항투쟁을 해서 영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세포이 반란 같이 대 놓고 무장투쟁 벌인다면 가차없이 반란을 진압해 버리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즉 간디와 같은 무저항 투쟁이 먹히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거죠.
 
헌데 3.1운동 지도자들은 대다수가 종교지도자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도덕주의로만 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저항으로 시위만 한다고 해서 일제 당국이 선선히 물러나 줄리도 없거니와 총칼을 휘두르지 않을 리도 없는데 말입니다. 초기에는 지도자들이 제창한 방침에 따라 무저항으로 나섰다가 잔인하게 유혈진압하게 되자 눈 뒤집어진 일부 군중들이 폭동까지 일으키기는 했습니다만... 전혀 조직적인 것도 아니었고 우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피만 뒤집어 썼을 뿐이지요.
 
투쟁역량이나 지도 방향을 보면 당시 3.1운동 지도부난 낙제점 중에 낙제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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