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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논란...그리고 민족대표 33인
게시물ID : history_277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선(가입:2016-04-10 방문:163)
추천 : 0
조회수 : 4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18 14:12:51

설민석의 민족대표 33인 발언...
문제될 발언은 맞습니다.
중고등학생을 주 상대로 하는 강사답게 좀 자극적이었죠.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좀 너무나간 면이 있습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선언의 의미에 큰 방점을 두었죠.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민족의 주체성과 일제병탄의 억압성을 알리는데 의미를 둔것으로 보이니까요.

당시 기독교, 불교, 천도교는 일제의 탄압속에 있었죠.
그때만해도 기독교가 개판이 되기 전이라...교세도 크고 민족운동의 적극성도 강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마 태화관을 장소로 정한것이 아닐까....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일제의 감시에 들어나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아마...자기들이 잡혀가면 일제의 탄압이 덜 할것이라 판단한 것일 수있습니다.
주동자가 잡혔으니 밖으로 나가는 일제의 폭력이 덜하리라....
이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이후에 제암리 학살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분들이 너무 앝게 생각했다는 느낌이죠.

위의 판단은 대학시절 수업 들었던 사학과 교수님의 의견이라 보편적 의견은 아니지만....
그 교수님에 따르면..
구한말, 일제시대에 사회적 지도자들은 봉건적 분위기에서 벗어났지 봉건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오히려 봉건적 느낌이 나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족대표의 변절은..
대놓고 변절한 분들이 있기는 합니다....속 터질 일이죠....
이것도 봉건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사실관계는 일부의 인물이지만....33명의 인물이 일제말기까지 생존했다고 가정을 하면...
아마 변절의 길을 갔던 인물은 몇분 더 있기는 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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