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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에 대한 개인적 생각(저장이나 해놔야지...)
게시물ID : history_277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ina
추천 : 0
조회수 : 63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3/19 01:53:11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지금의 생각... 어디써둘 데도 없고 나중에 지금의 생각을 함 돌이키고 싶어 적은 거라 지극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많은 부분을 모르는 상황에서 보자면


1. 민족대표 33인은 당시 무단정치로 단체하나 만들 수 없었고, 조선태형령으로 
   길바닥에서 맞아죽는 조선인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시기에 놈들의 감시망이 소홀했던 종교계라인과 학교를 통해 만세운동을 기획합니다.
   그리고 기미독립선언서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립니다.
   당시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죽을 각오를 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이 되자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태화관에 모여 선언문 낭독 후 자수를 하게 됩니다.
   저도 이전까진 굉장히 배신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인데요. 
   다시 생각해보면 이들의 입장은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들은 뭐 다른 선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민중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당시는 토요일, 만세운동을 민중들에게 더욱 확산시키기 좋은 날로 잡은 거라고 하지요.
   하지만 많은 피해는 불보듯 뻔했고 이걸 예상했던 그들은 자신들이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스스로 해산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 싶네요.
   하지만 학생들끼리 만세운동은 진행되었고 이로인해 전국적으로 7~8천명이 사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기록상이구 뭐 1만단위를 넘을거라는 의견도 있다고 들었구요.
   아마 그들은 이부분을 우려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결과적으로 본다면야 그로 인해 임정이 만들어지고 국외 항일운동이 전개되는 등의 성과를 낳게 되지만 
   당시의 상황에선 그들도 어느 정도는 알았겠죠. 만세운동을 한다고 해방이 되진 않을 거란 것을요.
   그런 일에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희생하게 할 순 없었을 거라 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만 봐도 그런면이 없지않죠. 일단 일본을 비판함에 있어서는 굉장히 소극적인데요.
   그에 대해 한용운선생이 수정을 주장했지만 결국 거부되고 공약3장을 추가한 사실도 잘 알려져있죠.
   글을 쓴 건 육당 최남선... 결과적으론 다들 알만한 대표적인 변절자가 되는데요. 
   여튼 당시엔 강력한 반발을 주장할 경우에 입을 피해를 막기위해 최대한 순화한 게 아닌가 생각되요. 물론 좋게 해석해서죠.

   결국 일제는 통치 방법을 바꾸기에 이르는데 이른바 문화통치... 뭐 말뿐이긴 했지만..
   하지만 일제는 민족대표의 처분을 놓고 고민했을 겁니다. 
   그들은 그래도 명망있는 종교지도자였고 역사이래 종교가 가진 단결력은 어마무시하죠. 
   그리고 그들은 이미 잠재력을 보았고 이들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막을 수 없다는 예상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였을 경우에 더 큰 소요를 예상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 그들은 이들을 석방하게 된 거라 생각됩니다.

   민족대표33인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거라 생각했음에도 오히려 3.1운동으로 인해 산 꼴이 되었던거겠죠.


2. 사실 저도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비굴하게 자수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목숨을 구걸하려 했다면 전날이라도 미리 일제에 알렸지 않을까 싶더군요.
   하지만 그들도 당일에 모인 사람이 스물 몇명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나오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음... 뭐 모르겠네요.

   또한 나오는 추세로 볼 때 룸살롱은 아닌듯 하고...
   이 생각에는 전우용님의 글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역사전공자도 아닌 설선생말보다는 그래도 레베루가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제가 당시 자료를 직접 조사할 만한 능력도 없고요.

   그럼에도 낮술 먹은 건 맞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것도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두 잡혀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생들은 해산할테고 그러면 그들이 목숨을 잃는 피해는 막을거라고 봤겠죠.
   만약 그렇게 3.1운동이 없었다면 그들은 모두 죽었을겁니다.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임에는 틀림없다는 얘기인거죠.
   그렇다면 그들은 당연히 그 자리에 나오면서도 죽음을 예상했을테고 
   마지막 가는 길 죽기 전에 술 한잔은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라는거에요.


3. 하지만 이들이 결국 뭐 얼마안가 석방되었고 그들은 일부 변절하게 되는데요.
   그들이 어떤 변절행위를 했는지 한명 한명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친일인명사전에는 3명밖에 올라와있지 않다고.
   그걸가지고 모두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요.

   근데 반대로 생각해 볼 것이 3명은 그럼 뭐 변절했다고 치고 약 4300여명을 규정한 것 이내에 들었다는 건데요.
   일제가 끝나고 반민특위때 거르고 걸러서 만든 반민족행위자가 7천명입니다.
   그거에 반이 약간 넘는 숫자인데요.  그렇다고 봤을 때 꼭 저 기준에 다다르는 친일행위만이 친일행위는 아닌거죠.
   이런 기준에서 몇명 남기고 변절했다느니 대부분은 변절했다느니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여튼 어느 정도 친일행위를 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3명만 보더라도요.

   하지만 제가 문제(?)를 제기할 부분은 그런 그들에게 민족대표라는, 굉장히 위대하고 숭고해보이는 수식어인데요.
   3.1운동 당시에는 물론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었음에 틀림없지만 
   변절했던 일부까지도 이런 수식어를 받기 때문에 사람들의 실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전우용님의 글을 봤는데 순결주의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도덕적 잣대를 대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요. 모범이 되어야 할 이들에겐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는 게 도덕성일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공무원에게 일반 회사원에 비해 더욱 강력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거 아닐까요?
   또한, 소위 공인이라고 하는 분들에게도 그렇지요. 
   그런 면에서 봤을때 민족대표 33인이라는 말은 당시에는 합당했을지 몰라도 
   후일 일부가 보였던 행적에 비해 너무 순수한 의미를 가지지 않나 싶네요.
   종교계인사 33인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하면 굉장히 욕먹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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