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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정말 아무도 만세를 안불렀을까?
게시물ID : history_277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가입:2012-09-13 방문:1348)
추천 : 14
조회수 : 56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3/19 18: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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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방송국 일본인 아나운서 다카하시 기요시의 회고담 중 일부
     
    ...전략
     
    이 요청을 받고 편성과 에서는
    예정된 프로그램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본인들은 비장함과 긴박감속에서 내일의 방송을
    대비하고 있는 반면 조선인 아나운서들은 냉정한 태도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와 같은 태도를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일본인들에게는
     전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앞에서 말한
    의견에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아마 정확히 말해서 내일의 중요방송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내용을 말 할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는데
    정보를 제공 해준 인사의 신분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개와 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일본인들의 빗나간 예측을 들으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진상을 고하는 방송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었다.
    정오시보가 울리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소개
    아나운서에 이어  천황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생각한대로 포츠담 선언에 대한 항복의 조칙이었다.
    천황의 방송은 15분이 못 미쳐 끝났다.
     
    악몽 같은 태평양 전쟁은 여기서 끝난 것이다.
    조선 독립운동의 공로자 여운형에게 협력하고 있던
    나의 친구가 극비로 들려준 정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항복 선언을 천황이 직접 발표할 줄은 몰랐던 같다.
    나도 의표를 찔렸다.  설마 그렇게까지 한 줄은 몰랐다. 어쨌든
    전쟁이 끝났다는 현실감은 암흑 속에서 번쩍이는  햇빛 아래로
    뛰쳐나오는 듯 한 환희와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것도 나의 자유의사에 의한 지극히
    솔직한 만세를 절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칙어방송에 이어 계속되던 임시방송이 돌연 중단
    되었다.“ 송전기 고장인가.” 하고 생각하며 2분, 5분, 10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방송은 중단된 채였다. 불안한 예감이
    스쳐갔다. 이와 동시에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 졌다.
     
    시끄러운 군중들의 함성과 기분 나쁜
    징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내가 살고 있는 신당동
    동쪽 20-300m동쪽 조선인 마을에서 군중들이 쏟아져 나와
    함성을 지르며 수많은 군중들이 징을 쳐대고 있었다.
     
    또한 함성을 지를 때 마다 모두가 나무대기 같은
     물건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그 끝은 빛나는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태양빛같이 번쩍이고 있었다. “ 저것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 했지만 모르겠다. 예상대로 조선인들은 오늘의 해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조선인 아나운서들이
    취한 태도에도 분명히 그것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층에서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층 일반대중들까지 이토록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것은 아마 나의 인식부족인지 모른다.  30여 년간 일본의 악정에
     시달려온 그들의 비분과 저주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 중략
     
    언덕을 올라 방송국 현관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그 옆에는
    대한빈국 임시정부 假방송소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서자 조선옷을 입은
     사람들로  각 방에서 붐비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단히
    실어하는  마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검문하거나 제지하지 않고
    못 본체 했다. 바로 내가 소속된 제1방송부에 들어가니
    그곳에서 조신인은 보이지 않고 대신 국장이하 모든 직원들이
     빽빽이 앉아 있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후략
     
    ---------------------------------------------------------------------------------------
     
     
    서대문 형무소가 해방이 된것은
     
    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가 맞습니다.
     
    1945년 8월 15일 12시 일본이 항복하자 여운형이 찾아가
     
    이날 오후 4시에 개방하라고 했지만
     
    일본인들이 정비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며
     
    다음날 오전에 모두 석방한다는 조건을 받아 들여
     
    8월 16일 9시 서대문 형무소가 개방되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jpg
     
     
    이 사진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45년 8월 15일 사진이라 설명하지만
     
    서대문 형무소가 개방된 것이 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이니 이 사진도 8월 16일 사진이라는
     
    증언이 그런 뜻이겠죠
     
     
     
    문제는 여러 인터넷 매체에서 말하는 1945년 8월 15일 당일 조선 민중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역시 왜곡이란 점입니다.
     
     
     
    1945년 8월 15일 12시 일본의 항복 방송이 나오자
     
    경성방송국 일본인 아나운서의 증언을 보듯
     
    신당동 지역에서 민중들이 8월 15일 당일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와 징을 치며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고
     
    방송국 관계자들이 6시간 동안 방송을 중단하고
     
    불안에 떨다 녹음된 내용을 7시와 9시 반복에서 방송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 종사자의 증언으로는 8월 16일 다음 날 아침
     
    일본인 방송국 관계자의 증언으로는 8월 15일 당일 방송 직후
     
    이미 경성 방송국에는
     
    조선인들이 들어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방송국이라 현수막을 걸고
     
    경성 방송국을 장악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인 경성방송국 관계자들은
     
    조선인들이 이토록 빠르게 대응하는 것에 놀라서
     
    8월 15일에 이미 일본이 패망할 것을 예상하고
     
    사전에 준비하고 있던게 아니냐 의아해 했을 정도죠
     
     
     
    물론 전국적으로 보자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 소식이 알려지는게
     
    시일이 걸렸을 것이 분명하긴 합니다
     
    라디오 청취자가 20만 내외 밖에 안되던 시절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일본의 통치가 지속되기 했을 것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이 사실을 안 일본인들이 도주하며
     
    바로 광복의 사실을 인지했을 수도 있죠
     
     
    본격적으로 8월 16일 아침 조간 신문에 일제히
     
    일본의 패방 소식이 신문으로 기재되고
     
    경성 방송국을 장악한 조선인들이
     
    "조선 해방 만세" 를 반복적으로 방송하는 상황에서
     
    서대문 형무소가 오전 9시에 개방되고
     
    조선인 정치범이 석방되어 나왔을 때
     
    광복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정보의 확산이라는 것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치 1945년 8월 15일 당일 조선의 민중들이
     
    겁먹고 비겁한 심성으로 쥐죽은 듯 눈치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일부의 사례를 과장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경성 방송이 치안을 우려해 잠시 중단 될 정도로
     
    일부 지역에서는 민중들이 나와 만세를 불렀고
     
    여운형 같은 민족 지도자들은 총독부를 찾아가
     
    정치범의 즉각적인 석방과 해방 이후의 민정 이전 상황에 대해
     
    일본에 요구를 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1945년 8월 15일 만세 소리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떠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증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수 없는
     
    1919년 3.1운 이래 감추었던 태극기가
     
    마지 준비라도 한듯 민중들이 한손에 하나식 들고
     
    그때 거리로 나왔다고 하죠
     
     
     
    그게 한국 민중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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