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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관련 글을 읽고 사견 적어봅니다.
게시물ID : history_279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후와와
추천 : 0
조회수 : 745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7/04/29 23:35:05
역사를 공부중이신 분이 올리신 글을 읽고 씁니다.
저는 "국사" 교과서 읽어본 것이 역사 공부의 대부분이라 혹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설명해 주시길 바랄게요.

저는 7차 교육과정 처음인 2002년에 국사를 배웠는데요. 확실히 당시에는 통일의 의의를 너무 민족의 관점에서 다루었어요.
신라 입장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합공에 나라가 망하냐 하는 상황인데 말이죠.
이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외교력을 발휘해서 오히려 통일로 이어가는 것이 드라마틱하다는 느낌은 있지요.
게다가 한반도에서 가야국 바로 다음의 약체 국가였는데 결국 다른 두 나라를 멸망시켰으니까요.
스포츠에서 대역전극을 보듯이 짜릿함도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신라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도 주변국들에 비해 좁은 국토를 가지게 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컴플렉스가 아닐까 싶네요.
구한말의 만주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도 아직까지 남은 것도 아닐까 싶고요.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는 지나치게 진취적이지 못한 국가이지 않았었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물론 망한 나라들의 내부적 상황에는 동의합니다. 기록을 보면 백제와 고구려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죠.
그런데 귀족중심의 중세 국가 중에서도 신라의 폐쇄성이 유난히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만 봐도 기억에 많이 남는 유명한 시기에는 정말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했잖아요. 
태조, 태종, 세종, 선조, 광해군, 영조, 정조시대 보면 신하들의 활약이 많이 나오죠.
기억력 나쁘다고 독서만 주구장창 하다가 결국 관리가 된 사람. 남의 아내랑 불륜을 저질렀지만 능력 있어서 관리가 된 사람. 서얼이나 노비출신이지만 기술이 있어서 직책을 받은 사람.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지만 왕의 눈에 들어 수군 고위직으로 특진한 사람. 젊은 유생 중 특출나서 왕의 측근이 되는 사람 등등
기본적으로 과거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의 인재를 찾아서 활약할 기회를 주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보여져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상황을 역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신라의 전성기도 역동적이었죠. 김유신같은 가야계 인물들이 활약할 수 있었고 만년 2인자 진골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오를 수도 있었고요. 기회가 돌아오니까 자신의 능력을 더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신라 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이러한 역동성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중세 국가야 귀족이 중심이지만 신라는 뼈에 구체적인 품계까지 정한 인간등급제 사회였죠. 
(있는 그대로 믿을 수야 없겠지만) 온달이나 미천왕, 서동, 을파소, 승려 도림 같은 숨은 인재의 두각이 잘 보이지 않아요.

조선에서도 반정으로 일어나 권력을 독점하려고 했던 인조 때나 세도가의 횡포가 심했던 순조 이후는 나라꼴이 처참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안동김문은 능력과 인품으로 정조의 신뢰를 받았지만 권력을 확고하게 잡자 나라 전체를 말아먹을 기세로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노력했죠. 조선 후기는 이러한 관직의 독점으로 발전 동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고 생각해요. 

신라는 국가의 성격 자체가 조선 후기처럼 권력 혹은 관직의 독점을 유지하려 하는 폐쇄적인 나라라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의 적을 정리하자 마자 국가의 부가 귀족계층의 사치에만 집중되고 다른 계층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적어집니다.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한 자리 하게 될 걸 알고 있는 자들은 더욱 사치에만 집중하고 발전을 게을리 하고
당에서 선진문물을 공부한 인재들은 신라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되죠.

신라사회가 본래 가지고 있던 폐쇄성이 세력을 뻗어 나간 후에 넓어진 국토와 다양해진 국가 구성원들을 포용하고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천년을 유지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도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신라 땅은 외부의 침입을 받기에는 매력이 떨어지고 내부의 변혁을 잘 억누르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중국의 통일 왕조 중 찬란한 업적을 남겼더라도 500년을 유지한 나라가 없죠. 이는 중국 땅이 성장동력을 잃고 무능하고 나태해져가는 정권은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생산력이 높은 곳이어서 그렇지 그 곳의 모든 국가가 한반도의 국가들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9세시 태국이 자주국을 유지했던 것은 당시 정부의 대응이 어마어마하게 훌륭했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요. 국가 위치가 절묘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햇습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18년이나 지속된 것은 정권이 훌륭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고성장 시대를 잘 맞이하고 국민들을 잘 때려잡은 덕도 큽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위에서 이런저런 말 길게 늘어놓았지만 제가 신라를 싫어하는 감정상의 이유는 배신을 맛깔나게 잘 쳤다는 점입니다.
백제 공격으로 멸망할 뻔한 위기에서 고구려의 도움을 받지만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공격하죠. 또 백제 성왕이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을 절묘한 배신을 칩니다. 비슷한 이유로 삼국지에서도 손권을 가장 싫어합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것 같아 안타깝네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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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1. 신라는 4국중 2번째로 약한 국가였지만 최후의 승자가 된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줌.
2,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폐쇄성이 있지 않았을까.
3. 이 점이 매우 덜 매력적임.
4. 사실 글쓴이는 배신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잘 친 점이 맘에 안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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