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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제라면(1912), 2제국 선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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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역둔토
추천 : 0
조회수 : 5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6 15:38:46

내가 황제라면(1912)


1. 독일의 국경은 유대인의 추가 이주를 막기 위해 폐쇄되어야 한다.

2. 독일 국적을 갖지 않은 독일 내 유대인 거주자는 즉각적으로 가차없이

   추방되어야 한다.

3. 개종한 유대인과 비유대인의과의 결혼으로 태어난 자손 등, 독일 국적을

   가진 유대인은 독일 국민이 아닌외국인으로 취급받아야 한다.

4. 유대인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5. 유대인에게는 육군이나 해군 복무를 허가해서는 안된다.

6. 유대인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

7. 유대인은 사법분야, 교육분야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극장 관리인 등

   선전, 엔터테이먼트 분야에서 물러나야 한다.

8. 유대인 언론인은 유대계로 명시된 언론사에서만 일해야 한다.

9. 유대인의 은행 경영을 금지한다.

10. 유대인이 농토를 소유하거나 저당권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11. 유대인은 '인종적 외부인'으로서 독일제국의 울타리 안에서

    누리는 보호의 대가로 보통 독일인의 납부하는 세금의 2배를 내야한다.



1912년 독일의 클라스가 익명으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증오 혹은 편견이 비교적 관대했던

독일 제 2제국 시대에도 꽤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일 2제국 시대 유대인은 독일 관세동맹의 체결로 말미암은 독일 전체의 경제부흥과 통일에서 비롯된

경제 성장의 과실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유대인들은 이시기 단순한 기업경영 분야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유대인의 비율은 1%미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10% 정도, 변호사는 15%정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언론인, 학자, 교수 등 지식 분야에서 활약을 했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성공은

독일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유대인의 성공 이외에도 독일인을,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독일에 살고 있는 유대인까지도,

위기감에 빠트리던 점은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동부 국경에서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1910년대 즈음에는 독일 내 유대인의 25~30%가 동유럽 출신일 정도였다.


독일인이 다수는 아니지만, 정치 권력을 쥐고 있고 독일의 중요한 형제국가인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유대인들은

독일 2제국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구성하는 많은 민족들이

독일인에 비해 교육을 덜 받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배층은 유대인들을 그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낙후된 지역,

예를 들면 갈리치아-로도메리아 같은 곳의 하급 관리인으로 써먹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과 비슷한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민족이 뒤섞여 살던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유대인들은 독일 2제국에 비해서 훨씬 잘 적응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자체를 증오한

독일의 반유대주의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반유대주의는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자찬하며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만이 유대인이다."

"유능한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 2제국에서 반유대주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반 유대주의에 비해 매우 강고한 입장이었는데,

이는 이중제국에 비해 독일이 훨씬 더 균일한 민족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반유대주의는 1879년에 이미 "유대인은 그 자체로도 독일의 불행이다"라고 할 정도로 극단적이었으며

사회 계층 전반에 만연했다. 민족주의와 극단주의에 경도되기 쉽다고 여겨지는 블루칼라 계층 뿐 아니라

유대인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말자는 자영업자부터 시작하여 중소기업의

경영자, 사무직노동자회에서 유대인을 배척한 화이트칼라 계층, 대학생을 포함했다.


재밌있는 점은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배타주의의 성장배경이라는 경제적 어려움이

독일 2제국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 전간기와 2차 대전기 루마니아의 유대인 박해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반 유대주의 확산 등은 경제적 궁핍으로 말미암은 희생양 찾기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 제 2제국 시기는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궁핍이 비교적 사라졌으에도 불구하고 반 유대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는 것에서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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