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한사군 존재,위치두고 시시비비 하기 보다,.. 한사군 축출의 역사가 중요
게시물ID : history_282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6
조회수 : 5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7 09:45:06
한사군 존재,위치를 두고 시시비비 하는 것보다
한사군 축출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제 
"너네 원래 400년간 중국 지배 받던 놈들이잖아,
원래 너희는 지배받아야해, 조선식민지 신세 당연해"
 
중국
"남한은 한반도 남부 삼한에서 비롯되었다. 북조선은 별개이다.
북조선의 고조선,고구려,발해는 중국의 역사이다. 
한사군 400년간 우리가 지배한 연고가 있다.
북조선은 우리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하고 유사시 우리가 개입한다"
 
저 말 듣고 그냥 아 씨.. 하고 끝날 일이 아니고
반박해야 합니다.
 
그런데 증명도 안 되는 한사군은 없었다,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이런 반박은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애초에 한사군을 두고
만주-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이 어불성성이고,
그 말에 주눅들 이유가 없습니다. 
 
조선,옥저,임둔,진번,진국,삼한,예맥,발,부여 등
현대기준에서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만주-한반도라는 지역을 공유하고
서로 가까운 혈통이었고, 서로 방언 정도의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시대적으로 교류의 제약이 있고, 유입되는 새로운 집단이 있어서 방언 차이의 정도는 심했겠지만)
그리고 외부(중국이나 유목집단)와의 항쟁을 거치며
한민족으로 수렴되어 고려-조선시대 1000년 이상을 이어져 왔죠.
 
한국사라는 큰 틀에서 볼 때, 
한사군은
<공간적>으로는 만주 한반도 중에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 일부를 잃었다가 다시 중국의 군현을 몰아낸 것입니다.
영토는 잃었다가 넓혔다가 해온 것인데 그걸 가지고 상대가 운운하거나 자신이 위축되는 것은 얼토당토 않죠.
(임둔군,진번군 진작에 독립했고, 현도군 3~4차례에 걸쳐 요동으로 축출, 낙랑대방 고구려가 되찾음)
 
<시간적>으로는 한사군 중 반절 이상이 30년을 못 가서 폐지되고
현도군은 계속 고구려에 쫓겨났고 낙랑군도 거의 자립상태로 한족이 토착세력에 동화되고, 토착세력은 중국문물을 수입했습니다.
(창해군 설치시도했으나 길도 다 못 닦고 2년 못 채우고 철회, 
임둔군 26년, 진번군 26년, 제1현도군 32년, 제2현도군(흥경) 31년, 제3현도군(무순) 209년, 낙랑군 421년)     
 
<구성원>들을 들여다보면 토착세력들이 매우 건재했고 오히려 중국과의 교류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백제,신라,가야와 한사군의 교류와
한사군 축출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우리가 외세를 극복하고 
자존을 지켜내고 형성해온 역사를 반증하는 것이죠.
 
일제36년 독립운동과 해방처럼요. 
부정선거 독재자를 몰아내고,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국정농단을 몰아낸 민주화운동처럼요.
 
우리의 유구한 저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