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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에 고구려가 없는 이유
게시물ID : history_282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rianjung
추천 : 0
조회수 : 6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7 15: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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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만주족 역사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씌여진 책이고 만주족의 전신인 말갈이 고구려의 속신이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라에 고구려에 편입시켜, 신라의 영토를 과장하고 그 영향력을 과장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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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과 관련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만약 만주족이 옛 고구려인과 발해인의 후손이라는 이론이 사실이라면, 왜 청나라의 군주가 편찬하라고 명령한 역사서(『만주원류고』)에는 고구려사가 독립된 항목으로 안 나오는 거야?”라고 묻는다.
 
실제로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만주원류고』를 쓴 사람들은『구당서』를 인용하면서도 “대조영은 원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라는 구절을 “대조영은 처음에 영주에서 살았다.”로 고쳤고,『삼국지(三國志. 서진의 관리인 진수가 쓴 역사책을 일컫는다)』「읍루전」을 인용하면서도 “그 나라(읍루)는 배를 타고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약탈을 곧잘 하므로, 이웃나라는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동이(東夷)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거의 다 조두(俎豆)를 사용하는데 오직 읍루만은 그렇지를 못했고, 법도와 습속에 가장 기강이 없었다.”는 구절은 쏙 뺐다. 그리고 삼한과 백제와 신라의 역사는 독립된 항목으로 자세하게 다뤘지만,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는 독립된 항목으로 나오지 않고 스쳐 지나가듯이 나온다.

“역사서에 기술된 고구려의 위용이 엄청나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장기간 존재했으니 중국 한족학자(漢族學者)들은 물론 만주족(滿洲族)에게 조차도 고구려 역사는 경외(敬畏)의 대상일 수도 있고 역사 콤플렉스의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건륭황제(이름은 ‘아이신교로 훙리’. ‘애신각라 홍력’은 만주어로는 ‘아이신교로 훙리’라고 읽는다. 아이신교로가 성씨고 훙리가 이름이다 - 옮긴이) 시절 간행된 흠정 만주원류고를 보면 고대국가중 유독 고구려는 빠져 있다. 청나라보다도 더 오래 길고 긴 세월동안 동아시아를 제패한 고구려를 역사의 강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고구려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만주족의 조상인 말갈족이 고구려조(705년), 발해조(228년), 양조(兩朝), 약 933년간에 걸쳐 복속된 경험이 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부여까지 합치면 그 기간은 더욱 늘어난다)."
―『金朝使硏究』, 윤명수(尹明洙), 59쪽.

만주원류고를 직접 번역한 장진근씨 코멘트입니다.
"만주원류고』자체가 “여진(女眞)의 각부의 명왕조에 대한 예속관계에 대하여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특히 명조의 통치하에 있었던 건주삼위(建州三衛)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으며, 고증에 있어서도 착오와 부당한 곳이 있을 수 있다"
출처 http://tadream.tistory.com/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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