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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이후 고려
게시물ID : history_284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Pain
추천 : 13
조회수 : 1743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7/06/23 09: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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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거란)이 3차 침입이 있었습니다.


서희의 립서비스에 혹해서 넘겨준 강동6주를 자신들의 가져가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서희 왈 : 형님... 그게 아니라 형님 우리가 형님과 교류를 하지 않는건 씨**부럴것... 여진이 떡하니 가로 막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형님... 우리랑 싸우면 뒷통수 간질간질 하지 않아요... 좢밥이라도 송나라가 형님 쳐다보고 있는데... 이제 형님 마음 알겠으니 그만 가쇼...)



그리고 그걸 빌미삼아 거란이 침입하는데... 고려는 절묘하게 디펜스하고 귀주에서 대회전으로 거란의 3차침입을 막고 고려가 급부상합니다.


요나라와 화친을 하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고려가 얻은 것은 요나라가 강동6주를 더 이상 달라고 하지 않겠다... 그리고 더 이상 고려에 침입하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받으면서 실질적인 이득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송나라가 고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왜냐... 3차침입때... 고려가 믿었던 송나라에


"거란이 쳐들어 오는데 군사 지원 좀..." 이라고 했다가


송나라가


"죄송해요... 님아... 저희도 요나라와 싸우지 않겠다라고 해서... .... 미안한데... 알아서 막으세요" 라고 쌩을 깝니다.


요나라의 눈치를 본겁니다.


'요나라가 고려 그냥 바르겠지... 그럼... 요나라가 하라는 데로 해야겠네...ㅋㅋㅋ'


그런데... 그런데...


고려가 요나라의 침입을 막은것 뿐만이 아니라 기병 정예군을 개박살 내면서 송나라 조정이 흔들거리고 대접이 달라집니다.



고려 사신의 어깨뽕이 올라다가 못해 넘쳐 흘러서...


소동파도 고려를 까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



우리가 잘 아는 판관 포청천의 고려태자 에피소드를 봐도 고려 사신이 상당히 거만하게 등장합니다.



이로서 송나라 요나라 고려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평화가 지속됩니다.



왜냐...


요나라가 송나라 손봐줄려고 해도 뒤에 있는 고려 때문에 뒷통수가 근질근질하고...


송나라의 경우도 고려를 막대하면 혹여나 고려가 요나라와 더 가깝게 될까봐 그게 겁이 났었던겁니다.



이 사이.. 고려는 요나라와 송나라를 형님 대접하면서 상당히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됩니다.


여기서 어느정도 알 수 있는 것이...


줄타기를 하려고 해도 본인의 힘이 어느정도가 되야지 슈퍼을로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 힘은 벼룩 간만큼도 없으면서 줄타기를 하면 그건 줄타기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평화롭게 지속되다가...



요나라가 점점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고려뽕에 취한 분들은 귀주대첩 이후에 요나라가 맛탱이가 가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요나라 황제와 기득권이 사치를 일삼으면서 시작이 됩니다. 혹자들은 불교에 심취하면서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절을 짓거나 불교에 관련된 물건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뭐... 조선처럼 정확한 것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고...



이렇게 되가 보니까... 요나라 밑에서 숨 죽이고 있던 여진족이 슬그머니 일어납니다.



송나라 - 요나라 - 고려가 밸런스를 맞췄을 때는 여진족이 고려 국경을 넘보는 일이 적었는데...


요나라가 흔들리면서 여진이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송나라 - 요나라 - 여진 - 고려 이렇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요나라 사이에 여진이 세력을 만들게 되고 이는... 고려와 직접적으로 경쟁 하겠다라는 말도 될겁니다.


111.jpg


이런식으로 여진이 낑기게 된겁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여진을 개무시 하는데...



여진정벌을 한다고 올라가다가 고려가 개박살이 납니다.


그리고.. 만들어진게  윤관의 별무반입니다.



윤관은


"폐하... 저기 여진은 기마병인데 우리는 주력이 보병이네요... 이거 완전 극상성... 오케이...???"


"그러니까... 우리가 여진만큼 기마병을 만들수도 없고 만들어봤자 경험치에서 상대가 안됨... 때문에 카운터 상성으로 군을 꾸려야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번 만들어볼께..."


그래서 만들어진게 별무반인데...



여진의 카운터 상성으로 만들어진 별무반은 어떻게 조직이 되어있는지 kbs그날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1. 도탕군이 화살받이 역활을 한다.


도탕군은 별 무기도 없이 전쟁 시작과 함께... 적진을 뛰어다니며 적을 교란합니다. 그런데... 별 무기가 없으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의 대부분 죽습니다.


대신... 적을 교란하는 역활만을 하는데...



도탕군이 죄다 죽을때쯤에...




2. 강노군과 경궁군이 나타나게 됩니다.


적진이 혼란해지고 재정비 하기 전에 노와 화살로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적을 공격합니다.


3. 노와 화살을 맞고 돌진하는 기병이 근접해온다... 그 때 나타나는게 근거리 공격을 하는... 돌을 던지는 석투군이 등장하면서 최대한 기병의 접근을 늦춥니다.


4. 이렇게 최대한 접근을 줄이고 기병의 속도를 줄인 이후에 고려의 기병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신기군으로서...


이들은 기병전을 벌이기 보다 고려보다 기마술이 뛰어난 여진의 기마병의 말을 노립니다.


사람을 노리는게 아니라 말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대각군이 나오면서 여진족과 백병전을 하면서 개싸움으로 몰아가 기병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게 됩니다.




윤관이 이렇게 해서 동북9성을 획득을 하나...



문제는... 이걸 지킬 능력이 없는 겁니다.


신불해님 글에서 제 부랄을 탁치며 느낀게



동북9성을 얻고 그 뒤에 고려가 여진에게 패배했기에 내줄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고려는 동북9성을 돌려주고 여진이 조공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습니다.



결과는 여진이 고려에게 고개를 숙인것으로 마무리게 되는데...



이때가 1109년 7월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 여진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고...



1125년... 고작... 16년만에 금나라고 이름을 바꾸게 되는 여진은... 고려에게 사대의 예를 요구합니다.



고작 16년만에... 여진은...


1115년 금나라를 건국하고 송나라와 합쳐서(말이 합친거지... 2차세계대전의 독일과 이탈리아 생각하면 될겁니다.)


요나라를 밀어냅니다. 그리고 그 요나라의 잔존세력 중 일부는 몽골에 흡수됩니다.




16년만에 고려와 금나라의 위치는 정반대가 되는데...



이떄... 고려의 왕은 인종이었는데... 실질적인 no.1 이자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자겸의 시대였고 나라는 개판으로 흘러갑니다.


거기에... 이자겸은 왕과 상의도 없이 금나라에 꼬리를 말고 사대 요구를 수용합니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고 이자겸도 결국은 끌려내오게 되는데...




문제는... 이자겸이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 고려는 일이 터집니다.





이자겸이 사라지고 권력이 왕으로 가야 하는데... 그 권력이 김부식과  그 측근들에게 가게 됩니다.


삼국사기의 그 김부식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묘청이 등장하는데...



이 묘청과 주변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고려가 왜?? 금나라에게 고개 숙여야 하나... 금나라 아웃... 고려 짱짱맨...


그런데... 개경에서는 안됩니다. 서경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수도 건설해야 합니다.



이 말에  김부식 일파는 기겁을 하게 됩니다.



"저 색**히.. 미친거 아냐? 어디 지방에서 올라온 색**히가 감히... 뭐.. 어쩌고 저째..."



김부식 일파는 문벌 귀족 출신입니다.



반대로, 묘청 일파는 신진관료 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묘청 일파의 목적은...



금나라 아웃!!!!도 될 수 있겠지만... 그 보다 더 컸던것은... 문벌귀족의 타파였을 거라는 주장이 더 많은거 같습니다.



김부식 등 개경 문벌 귀족들이 권력을 꽉쥐고 흔들면서 전횡을 일삼으니 서경천도를 주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묘청의 난은...


개경파 : 기득권 층이었던 문벌귀족과...


서경파 : 신진 관료 세력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경파는 돈과 병사가 많았습니다. 사병제도가 있던 고려의 경우는 결국... 돈과 사병으로 싸움이 결정나기 쉬운데...


돈싸움에서 밀리는 서경파가 이기기는 처음부터 힘들었을 겁니다.



묘청의 난이 진압되고...



고려는 완전히 내리막을 타게 됩니다. 완전히 수직으로 레알...



무슨 말이냐...



자신들을 견제하던 마지막 세력까지 사라졌으니...



결국은... 개경 문벌귀족이 모든걸 차지 하게 되고...


그들의 오만은 하늘을 뚫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건... 무신정변으로 가게 되는 신호탄이 됩니다.



1136년 묘청의 난이 끝나고...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24년간 문벌귀족은 나라를 쥐고 흔들게 됩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을 드렸지만 고려시대의 문관과 무관은 조선시대의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조선 태종에 이르러 사병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군은 왕이 관리하게 되는 조선과 달리...


고려시대는 귀족들이 사병을 모두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말은... 무엇이냐... 사병을 거느리려면 무엇이 많아야 할까요???


바로... 돈입니다.



그런데.. 저 돈이 누가 제일 많았을까요?? 바로... 문벌 귀족들입니다.



무관들은 저들이 쥐고 있는 돈 덕분에 꼴랑 할 수 있는 일들이... 문관들 뒷닦아주는 일 정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려시대 문관들은 조선시대 선비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고... 우리가 잘아는 고려시대 장수들 대부분이 문관출신입니다.(강감찬, 윤관 등등...)


때문에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의 사령관은 대부분이 문관출신들이고 무관은 그 문관 휘하의 장수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문관들이 무관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부릴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는 다음에 정리해보겠습니다. 업무 시작이네요...


모두들 수고 하십쇼...

출처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706220005334484&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gjzHl-Ai3aRKfX@hca9Sf-Ahh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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