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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연구 결과물이 신뢰를 못 받는 이유.
게시물ID : history_28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7
조회수 : 117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7/18 16:23:18
 
북한의 역사 연구물을 대하는 남한 학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북한에서 나온 역사 연구 결과물은 모두 도대체 어떤부분이 사실을 기술한 것인지 조차 확인하게 너무 어렵다는 것임  
 
그 이유는 단 하나 북한의 역사학이란게 정치적 목적에 따라 그때 그때 "창작"되기 때문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에 대한 연구
 
 
그동안 북한에서 김일성에 대한 연구물과 논문은 수도 없이 쏟아졌지만 정작 그 내용은 시기에 따라 전부 다름
 
북한 정권 초기에는 김일성과 함께 생활하고 실체를 아는 사람이 많았음으로
 
그나마 과장이 덜 한 연구물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미화와 과장의 정도가 늘어나
 
매년 없던 사실이 추가되고 새로운 내용이 창작되어가며 추가되기를 반복해
 
이런 짓거리를 수십년을 하다 보니
 
김일성 관련 역사적 사건은 공식적인 저작물 조차 똑같은 내용과 설명을 다룬 서적이 없을 정도
 
 
 
예를 들어 리나영이란 역사학자의 이야기
 
급진 좌익혁명가이자 김일성에 일평생을 충성한 역사가로
 
그는 그의 역사연구에서
 
한국의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김일성 가문에서 시작된다고 정리하였으며
 
일제에 대항한 민족해방투쟁을 김일성 일가 중심으로 이론화 시켜 공식화 한
 
북한정권 치하에서 김일성 미화 연구로 공로가 가장 큰 대표적인 김일성 미화 역사가임
 
 
그가 편집 책임을 맡아 북한 과학원 역사연구소가 1961년에도 출판한
 
"조선근대혁명운동사"는 196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정통 역사관으로 입지를 가졌음
 
바로 이 책에서 그는 1926년에 김일성이 화석의숙(중학교)에 입학했다고 기술함
 
근데 이 사건은 사실 이 책이 출판 된 1961년 이전에는 북한 어떤 저작물에도 나온바 없고
 
비슷한 증언을 남긴 인물도 없는 새로 창작된 내용으로 
 
이 책에서 최초로 역사적 사실이라 공식화 한 것임
 
 
근데 문제는 이런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 창작한 "조선근대혁명운동사"가 나온 후
 
7년이 지나 1968년에 이르면 북한 정부가 새롭게 공식적으로 출판한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 이란 저작물에서는 김일성의 화성의숙 입학을
 
1927년이라 기술하게 됨.
 
 
이유는 또 이책에서 새롭게 발견 창작한 또 다른 사실???
 
김일성이 소학교을 막 졸업했던 시절 1926년에 '타도제국주의동맹' '새날소년동맹'이란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었다고 그러니까 초딩 김일성은 초등학교 졸업 뒤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이미 시작했기에
 
중학교 입학은 1년 간 늦춰졌다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 창작하였고
 
그때문에 화성의숙 입학은 물리적으로 1926년 될 수 없기에 1927년이라 기술하게 됨.
 
 
이런 년도 기술의 차이가 별거 아닌가 같지만
 
문제는 북한의 공식적인 저작물에서 1926년 중학교 입학을 1927년 입학으로 수정했다는 것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거...
 
 
북한의 공식 저작물에서 1927년에 김일성이 중학교에 입학했음을 밝혀냈다? 고 하면
 
이전의 어떤 저작물에서 1926년에 중학교에 입학했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 역사 연구자가 김일성 수령님의 삶을 두고 감히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며
 
신중하고 사실에 기초해 역사를 기술해야 하는 역사 연구자가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고 책에 거짓말을 기술하여 당과 인민을 속였단 의미가 되니
 
당연히 이전에 김일성이 1926년에 중학교에 입학했다고 주장한 연구자는 문책을 받아야 함.
 
 
따라서 "조선근대혁명사"를 쓴 리나영은 숙청되어 죽었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여길지 모르지만
 
그 후대에 미화되어 창작한 역사적 내용은
 
그때 그때 필요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반드시 사실이 되어야 하며
 
날조된 창작을 주장하기 위해선 기존의 연구결과물에 대한 부정은 물론
 
학자들을 비판적 시선 또한 제압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과정임.
 
 
 
북한에서 역사연구란 결국 정치적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
 
창작과 날조가 서로 경쟁하고 그 과정에 숙청되기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블랙 코메디의 연속이었고 이 짓거리를 장장 70년 이상을 해옴
 
 
 
 
 
문득 국정교과서 파동을 겪은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 됨.
 
정치가 학문의 영역에 개입하고 학문이 정치를 위해 봉사하게 되는 순간
 
연구저작물의 내용은 비판적 사고를 거친 학문의 결과물이 아니라
 
상대방을 제압하는 도구로 씌여질 거짓선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됨.
 
 
 
북한에서 후대에 날조 창작하고 이전의 저작물을 반동이라 규정해 숙청하던 것과
 
정치적 목적으로 이전에 존재한 역사학계를
 
좌파, 운동권 역사관, 식민사학, 등등으로 정치적으로 규정해 증오에 가까운 비난을 하는것과
 
대체 무엇이 다를까
 
 
역사에 정치권이 개입한 결과의 최종적인 모습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비극적인 북한의 역사학계가 아닌가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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