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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어쩌면 이슬람 세계를 구원했을지도 모를 인물
게시물ID : history_286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넥스트
추천 : 20
조회수 : 2378회
댓글수 : 61개
등록시간 : 2017/08/06 05:06:01
1.jpg



아흐마드 샤 마수드 (1953~2001)

판지시르의 사자, 20세기의 살라딘, 최후의 지하디스트, 아프칸의 체게바라로 불린 남자

마수드는 본래 카불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으나
이슬람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 정부의 탄압을 받고 파키스탄으로 탈출 
후에 무자헤딘과 아프칸 군사정권의 내전 그후 소련의 아프칸 침공이 이어지자
무자헤딘의 한 분파를 이끌며 게릴라 전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 둘 건 무자헤딘은 하나의 통일된 단체가 아니라 아프칸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수많은 무장단체를
일컫는 말로 아프칸의 수많은 부족들이 저마다의 조직을 무자헤딘이라는 이름 하에 활동하고 있었던 거죠.
이들 대부분은 적은 병력 열악한 장비들로 산적질 수준의 게릴라 전을 벌이는 정도가 전부였으나 아프칸 전쟁의 배후에 암약하고 있던
미국이 사우디나 파키스탄 정보부를 통해 이들에게 장비와 군사훈련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조직화 되기 시작합니다.
이시기에 급성장한 인물과 단체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입니다.


소련의 침공이 시작되자 아프카니스탄으로 돌아온 마수드
그러나 그 역시 모든것이 열악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천명의 훈련받지도 못한 병력 그리고 병력의 숫자 보다도 적은 700여정의 구식 소총이
그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말이 좋아 병력이지 이들은 조국이 침략 받자 앞뒤 안가리고 뛰어 들어온 학생들이나 소련과 정부군의 공격에 갈곳을 잃은 난민들에
불과했죠. 그러나.............마수드의 탁월한 지도력과 군사적인 재능에 힘입어 4년뒤 이들은 악명 높은 소련의 스페츠나츠들도 공포에 떨게 하는
5천의 강병으로 성장해 있었고 89년 종전 시기에는 1만3천명으로 급성장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무자헤딘에게 각종 물자와 병기 군사훈련을 지원하며 산적집단과 같던 무자헤딘도 점점 군사조직의 모습을
띄게 됩니다.

그러나 마수드는 미국으로 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통해 미국은 아프칸에 친미정권을 수립 하는것이 목표 였습니다.
하지만 마수드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아프칸이 친소국가가 되는것도 친미국가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오직 아프칸은 아프칸을 위한 나라. 독립과 자주성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런 마수드는 오히려 미국에게 거추장 스러운 짐에 불과 했습니다. 거기에 미국과 아프칸 사이의 중계역활을 한 파키스탄 정보부 역시
아프칸에 수립될 새로운 정부를 친 파키스탄 성향의 정부로 만들고 싶어했고, 이들은 그나마 지원 가능했던 소수의 물자들 조차 중간에서
빼돌리며 마수드는 어떠한 지원도 받을수 없었던거죠.

그러나 마수드는 이러한 일조차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미국에 예속되는 것이고 아프카니스탄의 독립국가가 아닌 친미정권의 꼭두각시 국가가 되는 길이라
생각했기에 오히려 그런 지원은 그에게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대신 미국과 파키스탄이 선택한 것은..........탈레반이었죠.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조차 마수드를 막을수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무자헤딘 특히 탈레반 같은 집단이 소련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며 뒤에서 밍기적거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딴 궁리나 하는동안
마수드는 정면으로 소련군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마수드가 근거지로 삼은 판지시를 지역은 소련군의 보급로가 직통으로 지나가는 곳이었고 소련군 역시 이 보급로를 지키며 게릴라전을 벌이는 마수드를 잡기위해 수차례의 대공세를 펼쳤지만 그때마다 되려 큰피해를 입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몇번의 대공세 동안 아프칸 정부군 소속의 병사들이 대거 마수드에게 투항해 그의 휘하에 들어갔고 많은 물자를 노획한 마수드는 이것으로
자기 휘하의 무자헤딘을 철저히 무장시킬수 있었습니다.
마수드는 판지시르 협곡을 근거지로 삼으며 이프칸 전통의 산악전술과 모택동식 게릴라 전술을 혼용해서 사용했는데
판지시르를 방어하는 지역군, 그리고 지역군의 정예를 뽑아 판지시르로 통하는 주요 거점을 방위하는 충격군, 그리고 판지시르 외곽에서 활동하며
적을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는 이동군의 세 부대로 나누어 운용했습니다.

이렇게 마수드에게 여러 차례 당한 소련군은 1983년에 그에게 일시적인 휴전을 제의합니다.
세계를 좌우하던 패권국가인 소련이 일개 게릴라 지도자에게 휴전을 제의 한것 부터가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일단 아무 소득없는 마수드와의
전투를 멈추고 그사이 다른 무자헤딘을 쳐 판지시르를 포위하겠다는 것이 소련의 생각이었죠. 마수드 역시 이제안에 응합니다.

하지만 그러던 사이 빠르게 움직인것은 오히려 마수드였습니다.
마수드는 북아프카니스탄 7개주에서 활동하던 무자헤딘의 지도자 130명을 만나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은 군사 협의체인 감독 기구를 설립했고 이것은 훗날 탈레반에 맞서는 북부동맹의 모체가 됩니다.

결국 소련의 계획을 자신의 세를 불리는 기회로 삼는데 성공한 마수드............결국 그의 근거지 판지시르는 병력과 민간인을 포함해
2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하나의 도시 아니 하나의 국가로서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판지시르에는 학교가 있었고 병원이 있었으며 경찰이 있었고 법원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남여 누구를 막론하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수 있었고,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를 받았고, 경찰은 치안을 유지했고, 설령 범죄자라도 법원을 통해 정식적인 재판을
통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마수드는 단순히 뛰어난 전략가나 게릴라의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을 뒷받침할 사상과 철학이 존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말뿐인 이슬람 원리주의나 지하드를 떠드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무슨 지하드인가?"
"조국을 재건하려면 당연히 여자도 배워야 하는것 아닌가?"

그에게 있어 지하드란 조국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민족도 성별도 나이도 종교도 무관했습니다.

이슬람에는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의 두 파가 존재합니다.
시아파는 수니파를 수니파는 시아파를 증오하고 혐오합니다. 그리고 수피즘이라 불리는 소수의 신비주의 종파는 시아파 수니파 모두에게
탄압을 받습니다. 심지어 이들에 대한 빈번한 살인 학살을 하는 것도 같은 이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프칸에서도 소수인 타지크족 출신의 수니파 무슬림이었던 마수드는 시아파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수피즘의 교리가 담긴 책을 소지하고 다녔는데 탄압받는 소수인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신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독교도 심지어 유대교 조차 혐오하거나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수드와 서신으로 교류하던 사람 중에는 유대교의 종교학자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프칸의 독립성을 지키려고 했던 그였지만 반대로 미국도 소련도 서방세계도 그의 적은 아니었습니다.
마수드는 많은 서방세계의 언론과 학자들 인권단체들과 교류하였고 그들의 인도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하며
수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군사적인 지원은 아프칸을 예속 시킬수도 있다고 믿었지만 반대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열려 있었고 아프칸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협력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소련은 이런 마수드를 처치하기 위해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한 수차례의 대공습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수드는 귀신 같인 한발 앞서 판지시르에서 철수했고 소련의 대공세는 빈집을 두들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수드가 이미 소련군과 아프칸 정부군 사이에 자신의 협력자들 정보책들을 심어두었고 이들을 통해 사전에 정보를
얻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989년 소련군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이제 구국의 영웅이 된 마수드에게는 아프칸의 재건을 위해 헌신할
일만 남은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외세가 물러나자 이번에는 내부의 권력 다툼이 시작됩니다.
수년간 전쟁을 벌였던 수많은 무자헤딘의 지도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패권을 잡겠다며 서로 싸움을 시작한겁니다.
그중에서도 한때는 마수드의 동지였으나 이때는 탈레반과 손을 잡은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아프칸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위해 끝없는 시도를 했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세를 키운 탈레반과 헤크마티야르는 카불까지 접수 하기에 이릅니다.
마수드와 북부동맹은 곧 반격에 나섰고 아무리 미국을 지원을 받았다고 한들 애당초 마수드와는 재능도 그릇도 차원이 달랐던
이들은 곧 카불을 내어줄 상황에 이릅니다.

그런대

이 상황에서 탈레반은 카불을 볼모로 잡고 마수드와 북부동맹이 물러나지 않으면 카불을 불바다로 만들고 민간인을 학살하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설마했던 일이었지만.....................정말로 이들은 실행에 옮깁니다.
카불 시내는 불바다가 되었고 민간인 1만명이 죽는 대참사 벌어집니다. 카불에 들어온 마수드는 망연자실 하고 맙니다.

"그가 우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크리스토프 드 퐁피이 (프랑스인 작가로 마수드의 친구이자 그의 전기를 씀)-

결국 이같은 참상에 마수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판지시르로 돌아가려 했지만 막 출범한 신정부의 입장에서 그가 떠난 다는 것은
유일한 수호자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적극적으로 만류했고 결국 그는 신설된 아프칸군의 지도자로 카불에 남게 됩니다.
그러나 탈레반과 헤크마티야르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미국은 지독하게도 마수드와 신정부를 괴롭힙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최신 장비로 무장한 탈레반군은 지속적으로 카불을 공격했고 수차례 이들의 공세를 물리친 마수드지만
늘어나는 민간인들의 피해에 버티지 못한 마수드는 카불에서 철수, 근거지인 판지시르로 돌아와 북부동맹을 지휘하며 이들에게
반격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쉽게 북부동맹을 물리칠줄 알았던 탈레반 군...........하지만 산적질이나 해대던 놈들과
소련을 상대로 장장 9년을 싸우고 그들을 패퇴시킨 마수드는 애초에 싹이 달랐습니다.
아무리 최신 장비와 지원을 받아봐야 어린애 손에 칼을 쥐어준 것이나 다름 없었고 백전연마의 마수드와 그의 부하들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었죠.
미국의 아프칸 전쟁 이후에 북부 동맹의 존재를 처음 안 분들은 기껏해야 미국의 지휘나 받는 허접한 집단인줄 아셨겠지만
이들이야 말로 소련과의 9년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진짜 군대였던 겁니다.
결국 마수드의 군은 탈레반을 밀어내며 카불 탈환을 목전에 두게 됩니다.
이러던 와중에도 미국은 계속 마수드에게 아프칸의 평화를 위해서라며 탈레반에게 항복하라는 개소리를 지껄여 댑니다.
이런 미국의 개소리에 마수드는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이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목전에 두고 있다"

라는 경고를 합니다.

물론 미국은 이런 마수드의 경고를 들을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탈레반 같은 산적 집단은 자신들의 지원과 콘트롤을 받는 자들에 불과했고 마수드만 사라져주면 곧 아프카니스탄에
자신들의 조종을 받는 친미정권이 들어설거라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이건 탈레반을 지원하던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수드는 그가 자주 하던 일 중 하나...........서방 세계의 기자들을 만나 아프칸의 상황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 회견을 엽니다. 그러던 와중에 일어난 폭발
기자로 신분을 위장한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가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위대한 판지시르의 사자는 그렇게 숨을 거둡니다.

그날은 바로 2001년 9월9일...................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에 마수드의 경고 대로 뉴욕의 무역센터에 자살비행테러가 감행됩니다.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죠.

미국이 어째서 그렇게 신속하게 테러의 주범이 알카에다라는걸 알 수 있었는지 이제 이해가 가시죠?
미국의 그 잘난 첩보망이 졸라게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마수드가 수없이 경고해 왔던 일이었고, 알카에다의 마수드에 대한 자살테러는
결국 9.11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자기들 손아귀에 있다고 믿은 탈레반은 실은 전혀 미국의 통제를 받을 생각도 없었고, 탈레반의 가장 큰 적 탈레반이 가장 두려워하던
마수드의 제거는 알카에다가 미국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고 난 뒤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담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수드가 살아있었다면 마수드가 아프카니스탄을 통일 할수 있었다면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더 나아가 이슬람권 전체가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수도 있었슬겁니다.
마수드는 위대한 군인이었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광신적이고 야만적인 말뿐인 이슬람 원리주의가 아닌
진정한 지하드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마수드가 성공 했다면 그의 영향은 수많은 이슬람권 국가에 퍼져 나갈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탈레반, 알카에다 아니 그보다 더 그뒤에서 추잡한 음모를 꾸미던 미국 때문에
이 위대한 군인이자 사상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고 그후의 아프카니스탄 더 나아가 이슬람 전체가 어떤 비극을 되풀이 하고 있는지는
현재의 모습만 봐도 너무나 잘 알수 있죠.

그후의 이슬람 세계에 남은건 탈레반 알카에다 is 수많은 내전과 학살 테러 뿐입니다.
미국이 그렇게나 열심히 지원했던 헤크마티야르는 지금 is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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