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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청나라와 대한제국 군대의 무력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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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킬라칸
추천 : 5
조회수 : 240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9/10 1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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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로는 대한제국은 청을 무시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국경지대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대한제국이 개시한 것과 관련이 있죠.

사실 1901년 10월 5일, 경무관 등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은 간도 일대의 거주하는 한인들을 관리하도록 하려고 노력했고 이와 같은 시도는 청이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청의 반발을 무시한 채 대한제국은 회령 일대에 변계경무서를 설치하여 간도 일대에 대해 경찰권을 행사했고 이러한 문제는 대한제국과 청의 무력 충돌의 원인으로 발전했죠.

청 공사는 1902년 1월 13일, 외무대신 박제순에게 이와 같은 불법 행위를 중단하라며 항의했고, 동시에 한국인과 청국인 사이의 갈등을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대한제국은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계속해서 대한제국 순검들이 간도에 드나들며 경찰권을 행사하는 거로 모자라 징세와 향약을 실시하자 1903년 6월 6일 한청통상조약 제12조에 의거하여 상호 침범하지 말자고 청이 다시 한 번 항의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대한제국의 도발적인 답변이었습니다.

내무대신 김규홍은 간도는 엄연한 대한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대한제국이 경찰권은 물론, 징세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파견해버렸죠.

그러면서 오히려 청 관리들이 한국인들을 학대한 것에 대해서 역으로 항의를 하며 이 때문에 대한제국 측이 간도관리사를 파견하는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이렇게 양 국 간의 골이 깊어질 즈음, 청군이 간도로 들어와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청 패잔병이나 의화단을 격파해본 경험이 있는 북방 지역 대한제국군은 7~800명 규모의 1개 대대를 내보내 간도로 향했고 결국 대치 끝에 양 국 간의 교전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격전 끝에 대한제국군은 청군을 격파하고 간도 바깥으로 축출했으며, 청은 이러한 군사 행동에 대해 외교 루트를 통하여 항의하지만 대한제국의 답변은 변경의 수비대를 증원하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이후로도 비적 떼를 토벌하기 위해 두만강 일대를 도강하여 적극적인 토벌 작전을 구사하기도 했으며 이에 대한 청의 대응은 여러 사료를 찾아봐도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군사적 대응보다는 외교적 대응이 좀 있기는 했는데 깡그리 무시한 것 같기도 하고요.

1899년에 양 국이 대등한 조약을 맺으면서 얻은 자신감과, 북방 지역을 스스로 지켜낸 것에 대한 자신감이 이러한 무력 충돌로 이어졌으며 간도를 아국 땅이라 하면서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보면, 일종의 '제국주의' 적인 모습을 보인게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현광호 고려대 교수, 외세에 대응한 대한제국의 강병론
출처 http://cafe.daum.net/Europa/3L0P/6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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