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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2
게시물ID : history_288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4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4 07:57:50

2. 뜀뛰기

 

맨날 일본 검사 놈이 불러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건 좀 잘만하면 시도 때도 없이 깨우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맞지?

 

-다 불라니까!

-다 불었잖아!

 

매일 이걸 무한반복하는거야.

뻑하면 별것도 아닌 걸 물어보면서 고래고래 소래를 지르는데 이건 뭐 고장난 레코드도 아니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해.

짜증나게 하는 것도 수사기법인가?

 

하여튼 잠도 다 깼고 하니까 지난 이야기나 더 하지 뭐.

 

나 어렸을 적에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돼서 집안이 무너지고 뭐 여기까진 알테고...

 

당장에 먹고 살아야하니 별 수 있나? 열댓 살에 취직을 해야만 했어.

부잣집 도련님에서 하루아침에 생활전선으로 쫒겨난거지.

그나마 4년제 보통학교라도 나온 게 다행이야.

요새는 보통학교를 초등학교로 부른다지?

 

여하튼 그때는 사람들이 학교는커녕 아침에 일어나면 먹을 끼니도 제대로 없었거든. 밥 대신에 집 우물가에서 삼시새끼 냉수나 마시던 시절이야.

거의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다가 쫄딱 망했다고 해서 그리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뭐 내 탓도 아니고.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뭐든 하긴 해야 했어.

 

내 첫 직장이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과자집 심부름꾼인데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을 꽤 잘 했었나봐. 하긴 내가 좀 붙임성이 있긴 해. 그닥 사람 낯을 가리지도 않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내 고향 서울 용산은 일본사람들이 모여 있는 본부 같은 곳이라 철도역이고 우체국이고 할 것 없이 서울에서 큼지막한 시설은 죄다 용산에 몰려있었어.

심지어 군대도 있었는데 항상 일본 군인들로 북적북적했다고.

 

예전에 아버지가 일본인들과 뭔가 사업하는 것도 많이 봤고.

어렸을 적부터 일본은 그냥 말만 다른 옆 동네정도로 생각했어.

그만큼 그 때 용산에는 워낙에 일본 사람들이 많았어. 그러니 일본말을 힘들여서 배울 것도 없었지. 여기저기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듣는 게 죄다 일본말이였거든.

보통학교를 나올 때쯤 되니까 어지간한 말은 다 알아듣겠더라고.

 

뭐 요새 말로 하면 외국 한번 가지 않고 공짜로 어학 연수한 셈이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날로 먹은 게 있다면 바로 일본말일거야.

 

과자집에서 심부름을 하다보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조금씩 보이더라고.

과자집에서 일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약국집 심부름이 훨씬 낫다는 걸 알았어. 급여가 과자집보다 나았거든.

 

과자집 주인한테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렇다고 야밤에 도망을 나온 건 아니야.

정식으로 나간다고 인사하고 얼마 있다 다시 약국집에 취직을 했어.

그렇게 약국집 심부름꾼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좀 후회했지.

벌이는 좀 더 나았는데 약국집 일은 과자집보다 더 힘들었거든.

배달이 이래저래 많아서 생각보다 꽤 성가시더라고. 배달이야 어떻게 하면 되기는 하는데 대충 손님 기분이나 맞춰주고 단골집 아이얼굴만 잘 기억하면 얼추 팔리는 과자집하고는 분위기도 달라.

 

약국집이라 그런지 듣도 보도 못한 약 이름이 엄청나게 많더라고.

약국심부름을 하려면 일단 약에 대해서 좀 많이 알아야했거든.

 

좌우지간에 과자집하고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어

대충 얼러서 뭔가 팔아먹는 건 아예 없다시피 했다고.

그래도 일본인 주인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과자집 보다는 수익이 짭짤해서 그럭저럭 지낼만은 했어.

 

요새는 죽어라 대학까지 나와 봐야 취직도 안돼서 난리라면서?

난 열 댓살에 약국집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본봉에 판매수당까지 챙겨 먹을 수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어지간히 배운 사람보다도 훨씬 나은 셈이었지.

 

전직의 달인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직장 뜀뛰기는 나름 재주가 있었던 것 같아.

 

아참. 내가 한참 약국집 일을 하고 있을 그 무렵에 3.1운동이라는 게 일어났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

 

사람들이 죄다 거리로 뛰어 나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그걸 또 일본경찰과 군대가 잡으러 다닌답시고 소란이란 소란은 다 떨고.

하루 종일 동네 시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어.

 

근데 말이야. 그 때 난 솔직히 이게 다 무슨 지랄인가 싶었어.

아니, 그렇잖아!

당장에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약국집 배달 나갈 때마다 길이 막혀 있더라고.

조선사람, 일본사람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치고받으면서 생난리들을 치는데 이거야말로 민폐 아냐? 남의 일에 방해만 되고.

 

그때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나름 사람 괜찮았던 약국집 주인조차 조선인 심부름꾼인 내 눈치를 보면서 끼니때마다 물어보더라고.

 

-조선 사람들이 다 이렇게 독립을 원하냐? 그런 거야?

-전 잘 모르겠네요. 여하튼 배달 가는데 길 막혀서 귀찮아 죽겠어요.

근데 오늘 반찬 참 맛있네요. 사모님. 여기 국 한 그릇만 더 주세요.

 

뭐 솔직히 대답을 했더니 약국집 주인이 피식 웃고 말더라고.

자기도 안심이 되긴 했나보지.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까 말야. 나 같은 조선인 하인이 일본인 주인을 물을까봐 약국집 주인이 내심 걱정이 됐었나?, 싶기도 해.

 

여하튼 과자집이나 약국집 주인이나 죄다 일본인이었지만 어디 크게 모가 난 이상한 사람들도 아니었어. 그냥 조선팔도 어디에나 있는 일본인 과자집 주인, 약국집 주인이지 뭐. 거기다가 왜놈이 어쩌고 같다 붙이는 것도 좀 웃기지 않아?

 

근데 취조를 받는데 검사가 유독 민족의식이 어쩌구 하면서 따지더라고.

 

-이봉창이 너 말야. , 민족의식 투철한 거 맞지? 그거 참 훌륭한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뭔소리? 걍 일본 천황 하는 짓거리가 맘에 안 들어서 그랬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다 너희 조선민족을 위해서 한 거잖아? 그치?

-아닌데? 난 천황 하는 짓이 꼴같잖아서 그런 것 뿐이라니까!

-.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봐. 평소에도 일본이 막 밉고 그래서 잠도 잘 안 왔지?

-일본이 왜 미워. 난 그저 니네 천황이 싫다니까. 잠은 또 왜? 잘만 오더구만.

 

민족의식이라...

검사가 되도 않는 내 칭찬을 하면서 유도심문을 하려나 본데, 많이 배우신 검사님이 물어보시니 난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답해 줬지.

근데 말이야. 좀 유식한 말로는 이런 걸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난 그때 민족이고 뭐고 그런 개념을 가질 시간조차 없었어.

 

새벽같이 가게문 열어야지, 하루 종일 물건팔고 배달까지 다녀오면 말야.

요새 애들 말로 후덜덜해. 아무 생각도 안 난단 말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밥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똥구녕으로 들어가는지 도무지 구분도 안됐거든. 먹고 살기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뭔 놈의 민족의식?

 

여하튼 민족이니 뭐니 하는 골치 아픈 얘기는 딱 질색이야.

 

그 때 내 수준이 딱 그랬어.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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