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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6
게시물ID : history_288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4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7 22:14:30

6. 제자리

 

헉! 오늘은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간지럽히기까지 해.

홀딱 벌거벗겨놓고 이상한 새털 같은 걸로 여기저기 간지럽히는데 아주 미쳐버릴 것 같아.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거야. 이건 정말 최종형벌인 것 같아.

솔직히 말이야. 조금만 더 간지럽히면 본 적도 없는 독립군 명단까지 술술 불어버릴 것 같아.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수작인지.

 

그건 그렇고, 마냥 실직상태로 놀 수만은 없었어.

미친 듯이 알아보다가 겨우 들어간 곳이 오사카에 있는 가스회사야.

거기서 가스공사를 보조하는 인부를 했어.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판다지? 이번에는 정말 옛날에 일했던 철도국 이상으로 뼈 빠지게 했어.

 

저번 취직활동 때 말야. 내 조선 이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거 기억나지?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이름으로 바꿨어.

 

사실 반강제적인 것도 있었다고.

봉창이라는 이름이 일본말로는 부르기 불편하다나 뭐래나?

그래서 적당히 일본이름을 만들어 오면 그걸로 등록해 준다고 해서 걍 그러라고 했어. 뭐 조선이름 하나 때문에 개고생 한 것도 은근 짜증이 났기도 했고.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웃겨.

조선에 있을 때는 조선인이 왜 일본이름을 쓰냐며 지랄들을 하더니, 막상 일본에 오니까 부르기 불편하다며 아예 일본이름으로 바꿔 쓰래.

무슨 원칙도 없고 뒤죽박죽.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어.

말끝마다 대일본제국이라며?

그냥 일본도 아니고 대짜에 제국까지 붙였으면, 뭔가 색다른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할게 아냐!

 

일본에 와서 이것저것 실망한 건 그렇다고 쳐.

여기도 조선만큼 막장에 개판이야. 가끔 신문을 보더라도 그래.

정책에 무슨 일관성이 있어야지. 지들 꼴리는 대로 이랬다저랬다.

자국민들한테도 그 모양이니 조선인들한테는 오죽하겠냐고.

 

그때 난 이런 생각도 해봤어.

그럼 내가 일본인 이름으로 살다가 뭔가 죄를 저질렀을 때도 일본 이름 그대로 신문에 나가나? 아마도, 이건 내 생각인데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조선인 이봉창이 했다!

 

뭐 안봐도 뻔한 수작이지.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끝이 없을 테니 이정도로 하고.

 

가스회사일은 나름대로 할만 했어.

약간 기술도 필요했는데 내가 평소에 눈썰미가 좀 있잖아?

철도국 시절에 기계도 꽤 만져봤고.

 

눈치를 보건데 내가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평사원으로 몇 년 정도는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렇게 회사를 착실히 다니다 보니까, 여지껏 별 생각도 없던 공부생각이 나.

 

-, 공부하고 싶다!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야. 나한테 학구열이라니?

 

슬슬 나이도 스물 중반을 훌쩍 넘겼는데 여태 뭐했나 싶더라고.

더 늦기 전에 공부하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이런 게 나이 먹고 철든건가?

여하튼 뭔가 떠오르면 바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그길로 간사이 공업학교 야간부에 들어갔어.

 

-오! 근데 공부란 게 이렇게 재밌었나? 공부의 맛이 진짜...

 

이건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데 보통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학교 다니기가 싫더니 말야. 이제는 교복입고 앉아서 수업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와.

게다가 야간부가 원래 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 학생치고는 나이 많은 사람도 흔해서 그런지 친구들끼리 말도 잘 통하고 꽤 다닐만 해.

 

근데 말야. 사실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도 어떻게든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겠다며 공부에 덤벼든 건 아냐.

 

왜냐고? 내겐 나만의 삶이 있으니까!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서 내 인생을 희생할 생각은 그때도 거의 하지 않았어.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은근히 난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아.

 

공부를 하겠다는 것도 그래, 무슨 대단한 출세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야.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미치도록 공부가 해 보고 싶더라고.

결국 인생이란 게 자기만족 아니겠어?

 

그렇게 한동안 꽤 잘 굴러가나 싶더니 덜컥 큰 일이 생긴 거야.

 

어느 날, 평소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면서 눈앞이 캄캄해.

 

얼마 후에 정신을 차렸는데 양호실이더라고.

그 뒤로 계속 온몸이 저린 게... 이런 게 중풍인가보다 싶어서 겁이 덜컥 나더라고. 일단 내 몸은 소중하니까, 잽싸게 병원으로 달려갔지.

각기병이래.

 

-각기...뭐요?

-각기병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쉽게 말해서 영양실조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요. 골고루 잘 먹고 잘 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요.

 

아오! 나야 당연히 제대로 먹고 많이 쉬고 싶지.

근데 말야. 가스회사일 끝나면 바로 학교가야하거든.

뭘 제대로 챙겨먹을 시간도 없고 생활비니 학비니 내고나면 알거지하고 다를 게 없어.

 

돈은 없는데 공부는 계속하고 싶지. 나라고 별 수 있나?

허구헌날 떨이로 나오는 싸구려 일본과자에 맹물한잔으로 한끼 식사를 때우는 날이 많았어. 게다가 내가 학생치고는 나이가 꽤 있잖아?

학생모임이나, 특히 술자리가 있으면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성격이거든.

못 먹고 지내는데다가 안주도 없이 깡술만 들이 부은 것도 원인중의 하나일 것 같아.

뭐 좀 반짝하나 싶었더니만 결국은 이 모양이야.

내가 어지간한 걸로는 기죽지 않는데 그땐 정말 좌절감이 폭풍처럼 밀려오더라고.

 

바로 요양생활 돌입이지 뭐. 다행히 무급이지만 휴직신청이 받아졌거든.

이제 요양할 곳만 찾으면 되는데 이게 또 골치가 아파. 요양도 무슨 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항상 그놈의 돈이 웬수지.

 

마침 예전에 서울에서 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가 오사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어. 체면이고 뭐고 나 좀 살려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바로 오라고 하더라고. 거기서 좀 쉬면서 간간히 가게 일도 도왔지.

그렇게 간신히 몸을 고쳐서 복직을 했어. 중간에 다니다 말았던 학교도 다시 가야겠다 싶더라고.

 

근데 이번에는 친한 조선인 친구한테서 급한 연락이 온 거야.

자기 동생이 갑자기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자기가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야. 며칠만 곁에서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 갈등 때리네...

 

이럴 줄 알았지? 근데 난 안 그랬어.

난 말이야. 남의 딱한 사정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 성격상 못해.

... 치사하잖아?

솔직히 머리로는 손해라는 걸 알아도 막상 행동은 그렇게 안 되더라고.

 

뭐 어쩌겠어.

회사에 다시 사정을 말하고 친구동생 수술 끝나고 회복할 때까지 한 사나흘 돌봐주고는 회사에 복귀했지.

 

근데 그게 또 문제가 된 거야.

회사는 회사대로 몇 달이나 휴직했다가 방금 복직을 한 사람이 다시 몇 일간 몰아서 휴가를 쓴다고 하니까, 당연히 싫어하지.

나도 꽉 막힌 놈은 아니라서 회사 사정도 조금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나대로 일부러 농땡이를 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좀 섭섭하더라고.

어쩌다보니 일이 묘하게 꼬여버리고 말았어.

 

여기도 엄연한 회사라 만근을 해야 매달 월급이 떨어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부르더니 이틀에 한번 꼴로 일을 안 나와도 된다고 그러더라고.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까놓고 말을 하던가, 이게 뭐냐!

-회사 사정이다. 더 이상 묻지마라!

 

에이, 긴 얘기해봐야 나만 칙칙해지잖아. 더 이상 싸우기도 싫더라고.

. 혹시라도 나한테 처자가 딸려 있었다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끈적이처럼 들러붙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그치, 그게 정상이지?

 

근데 예나 지금이나 난 홀가분했거든.

마누라가 있길 하나, 자식이 있길 하나.

무슨 미련이 있겠어. 그길로 관뒀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인생도 참 골 때려.

어디 가서 불성실하다거나, 일 안하고 놀기만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들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야. 철도국 때만 빼놓고...

어쩌다보니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고.

 

이 얘기 말고도 사이사이에 일하다 관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하도 자주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가끔씩은 해.

 

-. 내가 직장하고는 잘 안맞는가보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새도 나 같은 사람들 많지 않나?

 

쥐꼬리만한 월급에도 개미처럼 죽어라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말야.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열매는 다른 놈들이 다 가져가고, 그리 큰 잘못도 없는데 결국에는 회사하고 어긋나고...

그러다가 빈정상해서 스스로 때려치는 케이스.

더 떠들어봐야 이젠 아무 소용도 없는 얘기지만 말야.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어.

또 실업자신세야. 아주 제대로 폭삭 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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