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7
게시물ID : history_288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21 01:14:59

7. 그래도 취직

 

다들 안녕하시고?

오늘은 좀 살만하네.

갖은 고문을 해도 내가 똑같은 말만 하니까 약간 실망했나?

요새는 어째 말로만 하기로 방법을 바꿨나봐.

내가 말하는 대로 고개까지 끄덕거리며 조용조용 물어봐.

 

그러게, 처음부터 그러면 얼마나 좋아.

지금까지 내가 한 진술에는 하나도 거짓이 없다니까!

맨날 하던 습관대로 사람이나 때리고 억지진술이나 받으니까, 이젠 진실을 말해도 못 믿는 버릇이 생긴 거지. 그 시절 검사나 경찰은 다 그랬어. 뭐 요새는 안 그렇겠지? 믿음은 잘 안가지만.

 

근데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 가스회사 때려친거?

 

뭐 하도 많이 때려쳐서 이만하면 독자들도 짜증이 솟구치겠지만 나같이 밥벌이 끊어진 외국인 노동자가 뭘 하겠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또 일자리 알아보는 거지.

 

어쩌다보니까 이번에 잡은 직장은 부두 잡역부야.

새벽에 일 나가서 해 떨어진 다음에야 끝나는 일이지.

석탄 나르는 잡역부인데 하루 밖에 일을 안했는데 온몸이 다 쑤시더라고.

그거 참 빡세더만. 그래도 급여가 나름 괜찮으니까 꾹 참는 거지.

하루에 3엔에서 350전까지 일당을 주는데 나름 짭짤하더라고.

 

근데 이번에도 좀 그래.

영업조금, 배달조금 이런 식으로 일을 해 와서 그런지, 갑작스런 육체노동에 몸이 놀랬나봐. 하루만에 몸이 축났어. 이번에는 일하고 싶은 의욕은 넘쳐나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거야. 얼마 전에 각기병 걸렸던 생각도 나고 또 일 못 하게 될까봐 겁은 덜컥나지, 어ᄍᅠᆯ 수 없이 며칠 누워 지냈어.

 

그러다가 사나흘 뒤에 다시 일을 나갔는데 좀 쉬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럭저럭 할 만 하더라고.

힘은 들지만 기본적으로 단순한 일이라 며칠 쉰다고 요령을 까먹거나 하진 않았거든. 그나마 다행이지 뭐.

 

근데 일 끝나고 일당을 받는데 1엔이나 적게 주는 거야.

무려 1엔이라고! 전에 받던 일당의 3분의 1이나 적은거지.

 

이게 믿어져?

부두 잡역부가 사나흘 아파서 일 좀 빠졌다고 3분의 1이나 적게 주다니!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바로 따지러갔어.

 

내가 원래 이런저런 일은 대충 유드리 있게 잘 처리해도 말이야.

내 잘못도 없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도저히 못 참겠거든.

처음 일본 와서 구직할 때 뺑뺑이 돈 걸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치밀어.

 

-대체 뭣 때문에 급여가 확 줄은 거요!

-너 조선인이란 거 왜 말 안했어. 기노시타 쇼조라며.

난 니가 일본사람인 줄만 알고 일본인 기준으로 지급한 거야.

-그러니까 조선인이면 일당도 적게 주는 거다?!

-이 바닥이 원래 그래. 따질 거면 딴데나 알아보라고!

이 새끼들 안되겠네! 내가 시청에 가서 급여 덜 줬다고 다 꼬발를거야! 두고 봐!

뭐야, 이 새꺄. 너 제대로 돌았구나? 여긴 일본이라고! 일본!

너 하나쯤 여기서 뒈진다고 아무도 신경안써! 아가리 닥치지 못해!

 

. 분위기 살벌했지.

가만히 말다툼을 듣고 있던 노동자들은 일본인이고 조선인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걍 모른 체하더라고. 일본인들은 자기네 일당은 제대로 나오니까 신경도 안 썼고, 조선인들은 내가 일본인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조선인이라 아니꼬운거고.

. 기분이 두 배로 더러워.

 

여하튼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자기 일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거지.

이건 뭐 조선인도 안 되고 일본인도 안 되고, 이봉창이라고 해도 안 되고 기노시타 쇼조라고 해도 안 되네?

 

-젠장.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

 

이런 신세한탄 할 시간도 없어.

어차피 일용직 노동자니까 하루 밥벌이를 못하면 다음날은 꼼짝없이 굶어야해.

 

그래도 내가 누구야. 이래봬도 구직의 달인 이봉창, 일본이름 기노시타 쇼조아냐.

여기서 엎어져서 아무 일도 안하고 신세한탄이나 하기에는 난 너무 젊잖아?

한동안 미친 듯이 일자리 알아보다가 재취직에 성공했어.

이번에는 나름 번듯한 직장이야.

 

스미토모라는 일본재벌이 있는데, 오사카에서 가까운 곳에서 재련공장을 하고 있어서 좀 알아봤더니 바로 일하러 오라는 거야.

 

뭐 자랑은 아니지만 거기에서도 신임 좀 받았지. 자랑 맞네...

공장이 늘 그렇듯이 여기도 조장이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까칠하게 굴더니 내가 일 하는 모습을 며칠 지켜보더니 애들 대 여섯 부리는 조장보조 같은 일을 바로 맡기더라고. 철도국에서 사람 부리던 기술 좀 발휘했지 뭐.

 

어쨌건 일본생활 하고나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뢰랄까. 인간적인 믿음이랄까. 위에서 나를 좋게 바라보는 게 느껴지더라고. 뿌듯하지 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 오더라고.

 

그래도 임시직은 임시직이라 여전히 급여니 복지가 형편없어.

전에는 조선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비정규직이라고 차별을 해. 일하는 내용은 정규직하고 하나도 차이가 없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조선인, 일본인 할 것 없이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 일했으니까...

그럼 이건 평등한 건가?

 

사는 게 뭐 이런가 싶어. 너무 슬퍼서 웃음이 절로 나와.

요새는 이런 내 마음을 웃프다고 한다나 뭐라나.

하여튼 급여만 또박또박 나오면 뭐해. 같은 일을 해도 급여가 턱없이 적은데.

 

. 또 불만이 슬슬 쌓이더라고.

그래도 예전에 철도국 일도 있고 해서 억지로 참으면서 꾸역꾸역 일만 하고 있는데 덜컥 비정규직 중에 정규직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가 나왔더라고.

 

바로 이거다!,싶어서 그길로 지원을 하려고 뛰어갔어.

내가 워낙에 왕발이라 서무쪽까지 두루두루 친하거든.

공장에서 임시직원 리~상 하면 모르는 사람 없었지.

재직 중인 사람은 신원보증인만 있으면 응모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바로 조장한테 달려갔지.

 

이번에 정규직 공고가 나왔는데 신원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요.

. 미안한데, 내가 신원보증 때문에 엄청 고생한 적이 있어서...

다 될 줄만 알고 믿고 찾아갔는데 안 되더라고.

그렇다고 조장이 밉지는 않았어. 뭔가 개인적인 일로 핑계를 대는 눈치가 있긴 하지만, 그 사람도 뻔한 월급쟁이일 뿐인데 갑자기 보증을 부탁한 내가 좀 성급했나 싶기도 했어.

그래도 워낙에 사람이 괜찮아서 믿고 따랐는데 뭔가 엄청 아쉽더라고. 인간적으로 좀 서운했지.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조장은 내가 조선인이라고 해서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하대하지는 않았어. 나도 조장에 대한 신뢰는 변치 않았지만 정규직 승급건은 사실 포기했지.

근데 말야. 이게 더 씁쓸하더라고. 대놓고 조선인 차별하는 것도 아닌 분위기는 맞는데... 결국 조선인은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은근히 못 박는 것 같더라고.

이러면 뭐 철도국 시절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잖아?

 

-그냥 너희들은 아가리 닥치고 죽어라 일만 하면 된다.

그럼 일거리도 더 줄 거고 급여도 약간은 올려 줄 거다.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로 못 올라간다.

알겠냐? 조선인과 일본인 비정규직들아!

 

교활한 건지 못된 건지. 교활하면서 못된 건가?

맘에 안 들긴 마찬가지야.

 

가만 생각해보니까 어ᄍᅠᆫ지 당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따지기도 애매한... 인간적이면서도 훈훈한 공장 분위기랄까.

이거 안 겪어 보면 잘 모르지.

 

그래도 꾹 참고 버티니까 그나마 생활이 좀 안정됐어.

가끔씩 맛있는 것도 사먹고 놀러 다니고 하니까 그럭저럭 분이 풀리더라고.

그러다보니 얼마 전에 공업학교를 얼떨결에 그만두게 된 일이 생각나데.

 

-, 공부나 다시 할까?

 

마침 같은 하숙집에 고학하면서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수험서니 참고서도 빌려 보면서 진학에 대한 꿈도 다시 키웠어.

 

근데 공부하고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한 게 하나 있어.

먹고 살기도 바빠서 보통학교도 간신히 나온 건 맞는데, 조선에 있을 때나 일본에 있을 때나 어디 가서 못 배웠다거나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진 않았거든?

심지어 대학 나왔냐고 묻는 사람도 꽤 있었지.

. 걍 그렇다고.

아마 영화도 꽤 많이 보고 노래나 소설도 워낙에 좋아해서 그럴 거야.

이것저것 일하면서 세상물정에 일찍 눈을 뜬 것도 약간은 도움이 됐을 거고.

왜 그렇게 신문 읽는 게 재밌는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어. 여하튼 하얀 종이에 글자만 써 있으면 내용은 상관없이 밤새도록 읽는 것도 꽤 좋아해.

하여튼 무식하다는 소리 안 듣는 것만 해도 성공한 거 아냐?

 

돌이켜보면 부족한 학력에 대한 갈증이 아예 없던 건 아냐.

. 대단한 건 아냐. 뻔한 거지.

더 많이 배우면 더 번듯한 직업을 구할 수 있으니까.

남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거.

그렇다고 무조건 출세만 바라는 것과도 좀 달라.

난 걍 열심히 일하면서 말야. 그저 사람답게 먹고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여하튼 이번에도 승진길이 막혀서 불만은 쌓였지만, 철도국 때처럼 확 때려치지 않고 조용히 다니기로 했어. 그렇게 때려치면 이번에는 아예 이국만리 하와이까지 노동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건 좀 많이 싫었거든.

 

그 덕에 잠깐이나마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나라고 별 뾰쪽한 수 있을까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