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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미지의 빛 앞에선 주교, 혁명에 대한 변호
게시물ID : history_28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1
조회수 : 5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03 00:25:36



레미제라블 1권,동서문화사


시기 : 부르봉 왕정복고

p70~


(중략)디뉴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이 사나이는 전 국민의회 의원 G였다. (중략)

그들은 사람들이 서로 '동무'라고 부르던 시대, 무슈 대신 시토아앵(시민)이라고 부르던 시대에 살았다.

이 사나이는 괴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중략)

그는 루이 16세를 죽인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무서운 짓을 해온 사나이였다.

왕권이 부활한 뒤에 어찌하여 그를 처벌하지 않았던가? (중략)


<G는 혁명기의 국민의회 의원>


(간략하게)

G는 외딴 곳에 혼자 살고 있었다. 주교는 국민의회 의원이었던 그에게 증오와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으나

선량했던 그는 새끼양(G)가 더러운 피부병(국민의회 의원)이었다고해서 목자가 뒷걸음질 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있었다. 주교가 그런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G가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진다.

소식을 들은 주교는 새끼양을 위해 G가 사는 짐승의 굴을 향해 길을 나선다.


초라하지만 잘 정돈된 움막에 도착한 주교는 늙은 남자가 낡은 의자에 앉아 노을을 받으며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G : 당신은 누구시오?

주교 : 비앵브뉘 미리엘이라는 사람이오

G : 사람들이 비앵브뉘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이 당신이군요?


(중략)


(간략히) 주교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G의 이야기를 듣는다.

G는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한다. 주교는 자신을 존칭으로 불러주지 않는 것에는 조금 언짢았지만

G가 공손하고 성실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음과 국민의회 의원에 대한 호기심이 앞선다.

주교가 관찰한 G는 임종이 임박한 인물이지만 당당한 풍채의 노인이었다. 주교는 국민의회 의원이라는 것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히 가졌지만 죽어가는 이를 위해 그와 대화를 시작한다.


주교 : 적어도 당신은 임금님(루이 16세)의 사형에는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으니까요. < G는 처형 반대파였다>

G : 나는 폭군의 종말에는 찬성했었소.


주교 : 그게 무슨 뜻이지요?


G : 내 이야기는 인간은 하나의 폭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오. 즉 무지이지요.

   나는 그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던 것이오. 그 폭군은 왕권을 낳았소. 왕권은 허위 속에서 얻은 권력이오.

   그와 반대로 학문은 진실 속에서 얻어진 권력이지요. 인간은 오직 학문으로만 지배되어 할 것입니다.


주교 : 그것과 양심에 의해서


G : 그 두가지는 같은 것이오. 양심이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천성적인 학문의 양에 불과한 것이오.

    루이 16세에 대해서는, 나는 사형에 반대했소. 나는 한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나는 악을 근절시킬 의무가 내게 있다고 느끼고 있었소. 나는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었소.

    곧 여성에게는 매춘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의 종말, 어린아이에게는 어둠의 종말이오.

    공화제에 찬성함으로써 나는 그 일들에 찬성했던 것이오. 나는 우애와 화합과 여명에 찬성했던 것이오.

    나는 편견과 오류의 붕괴를 도왔소. 편견과 오류의 붕괴는 광명을 가져오고

    우리들은 낡은 세계를 쓰러뜨렸소. 비참함의 그릇이었던 낡은 세계는 인류 위에 전복됨으로써

    환희의 황아리가 된 것이오.


주교 : 혼란한 환희의


G :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오늘날, 1814년이라고 일컫는 저 비통한 과거가 복귀된 뒤

   그 기쁨은 사라져 버렸소. 아, 저지른 일이 불완전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옛 제도를

    타파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완전히 뿌리를 뽑지 못했던 것이오. 악습을 타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오.

    풍조를 바꿔 놓아야만 하지요. 풍차는 이제 없어졌지만 바람은 그대로 남아 있는 꼴이지요.


주교 : 당신네들은 파괴했습니다. 파괴는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분노가 얽힌 파괴는 신용하지 않습니다.


G :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주교님. 그리고 올바른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입니다.

   그야 어떻든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프랑스 대혁명은 그리스도 탄생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한 걸음

   이었소. 불완전할지는 모르지요. 그러나 숭고한 것이었소. 대혁명은 사회의 비천한 사람들을 해방시켰소.

   사람들의 정신을 부드럽게 하고, 안정과 위안과 빛을 주었소. 지상에 문명의 물결이 넘실거리게 했소. 

   훌륭한 일이었지요. 프랑스 대혁명은 실로 인류를 신성화에 주었던 것이오.


주교 : 뭐라고? 저 93년이!(1793년)


G : 마침내 그 말이 나왔군요! 당신 입에서! 93년! 나는 기다렸소, 그 말을. 먹구름은 1500년 동안 끼어 있었소.

    15세기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터졌던 것이오. 당신은 뇌성벽력을 나무라고 있는 것 같군요.


주교 : 재판관은 정의의 이름 아래 말하고, 사제는 연민의 이름 아래 말합니다.

      그리고 연민은 한결 높은 정의 바로 그것이오.  뇌성벽력의 일격에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예컨대 루이 17세는?


<루이 17세는 혁명에 휘말려 비참하게 죽음>


G : 루이 17세! 아. 기다려 주시오. 당신은 무엇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까?

   죄없는 어린아이를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좋소. 나도 당신과 함께 눈물을 흘리지요.

   아니면 왕자였다는 데서입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좀 해주셔야겠소.

   까르뚜슈(프랑스의 유명한 도적 수괴)의 아우는 오직 까르뚜슈의 아우라는 죄만으로 그레브 광장에서

   양쪽 겨드랑이를 매달려 죽었소. 루이 15세의 손자였다는 죄만으로 땅쁠 성의 탑 속에서 죽음의 고통을

   받은 죄 없는 손자와 마찬가지로 애처롭게 말이오.


주교 : 그 두 이름을 같은 비중으로 말하는 건 좋지 못합니다.


G : 까르뚜슈를 위해서? 아니면 루이 15세를 위해서? 둘중 어느 쪽을 위해서 항의하는 겁니까?

   아. 주교님, 당신은 진실을 좋아하시지 않는군요. 그리스도는 그것을 좋아하셨어요. 그리스도는 매를 들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악덕상인들을 쫓아냈소. 빛에 가득한 그의 회초리야말로 진리의 엄한 알림이었소.

   그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태, 19-14)라고 외쳤을 때, 그는 어른과

   어린아이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소. 그는 바라바의 아들과 헤롯의 아들을 대등하게 부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소. 죄없는 마음이 그대로 왕관이 되는 법이오. 왕가 출신일 필요는 없소.

    죄없는 마음은 누더기를 걸쳐도 백합꽃으로 장식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훌륭한 것이오.


주교 : 그건 그렇소.


G : 지금 당신은 루이 17세를 언급했소. 이 점에 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싶소. 우리들은 죄없는 모든 이들,

    모든 순교자들, 어린아이들, 상류사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류계급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자는 겁니까? 그건 나도 동감이오.그렇다면, 먼저 말한 바와 같이 93년보다도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것이오. 우리들의 눈물이 시작되는 것은 루이 17세 이전이야 하오.

    나도 당신과 더불어 어린 왕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겠소.

    당신이 나와 더불어 민중의 어린 자식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신다면.

 

주교 : 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G : 평등하게 말이오! 만약에 한 쪽으로 기울어야만 한다면, 반드시 민중 편이어야 할 것이오.

    민중 쪽이 훨씬 오래 전부터 고통을 받아왔으니.

(중략)

G : 무엇이라고 하셨지요? 93년은 가혹했다는 그런 말씀이었지요?


주교 : 가혹, 그렇습니다. 단두대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마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라 : 프랑스 혁명 지도자>


G : 루이 14세의 신교 박해 정책에 찬가를 바친 보쒸에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혁명은 대체로 보아 하나의 광대한 인류적 긍정이지만, 그와 같은 대혁명에서 빠져 나온 93년은

    애석하게도 하나의 항변이었소. 당신은 93년을 가혹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모든 왕정 시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까리에(국민의회 의원, 낭트에서 반혁명파를 익사형에 처함)는 과연 극악인이라 하더라도

     몽르벨(혁명 이전, 랑크도크에서 신교도를 박해한 귀족)은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푸끼에 땡빌르(혁명재판소 검사)는 무뢰한이라 하더라도, 라므와뇽 바빌르(혁명 이전, 랑크도크에서 35년간

   신교도 박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이야를(혁명기 국사범 학살 주도)는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쏘 따반느(가톨릭 동맹원)는 어떻습니까?

   삐르 뒤셴느 지(혁명신문, 공포정치 주도)는 흉포하다 할지라도, 빼르 르뗄리에(포르 르와이야 수도원 파괴)는

   어떤 말로 형용하겠습니까? 주르당 꾸쁘 떼뜨(공포정치기 정치가)는 짐승이라 할지라도

    루브와 후작(루이 14세 때, 잔인하게 신교도 박해)보다는 못했소.


   주교님 나는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를 가엾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박해받은 위그노 여인 또한

   가엾게 여깁니다. 그 여인은 1685년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가 잡혀, 허리까지 발가벗겨져 말뚝에

   묶였으며 아기는 떼어놓아졌소. 유방은 젖으로 부풀었고, 가슴은 슬픔으로 부풀어 있었소. 배고파 핼쑥해진

   아기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보면서 몸부림치면서 울부짖을 때, 사형 집행인은 어머니인 그 여인에게

   개종하라고 말하면서, 아기의 죽음과 양심의 죽음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소. 한 어머니에게 적용된

   탄탈로스의 형을 당신은 어떻게 보십니까? 아시겠소, 프랑스 혁명은 그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오.

   미래에 그 분노는 용서될 것입니다.


   그것의 결과는 더 나은 세계입니다.  그 가장 무서운 타격에서 인류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오.

   간단히 말하겠소. 내가 유리하니까 그만두겠소. 게다가 나는 이제 곧 죽습니다.


   그렇소 진보의 포학행위를 혁명이라고 부르오. 그것이 끝나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지요.

   인류는 곤욕을 겪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갔다.


(중략)

죽음을 앞둔 G


G : 주교님, 나는 일생을 명상과 관조와 연구속에서 살았소.

  조국이 나를 불러 나랏일에 관여토록 명령했을 때, 내 나이 예순이엇소.  나는 그 명령에 따랐소.

  많은 악폐가 있었소. 나는 그것과 싸웠소. 가지가지 학정이 있었소. 나는 그것을 없앴소. 훌륭한 주의와 정의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찬양하고 표방했소. 국토는 침범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막아내었소.

  프랑스는 위협을 받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이 가슴을 바쳤소. 나는 부자가 아니었소. 나는 가난뱅이요.

  나는 국가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소. 국고는 순금으로 가득 찼으며 금화와 은화의 무게로 무너져가는

  벽을 기둥으로 떠받쳐야만 했소.

 

 그러나 나는 라르브르 세끄 거리에서 22수짜리 식사를 하고 있었소.  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로했소. 내가 제단의 막을 잡아찢은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것은 조국의 상처를

 감아 주기 위해서였소. 나는 늘 광명을 향하여 인류가 전진하는 것을  도왔고,

 때로는 무자비한 진보에 저항하기도 했소.


 경우에 따라서는 내 자신의 적, 즉 당신네들을 감싸기도 했소.  메로빙거 왕조의 여름 궁전이 있던 플랑드르의

 성 클라라회 수녀회의 수도원이 있는데, 1793년에 나는 그것을 지켰소. 나는 내 힘에 따라

 내 의무를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선을 행했소. 그런 뒤 나는 몰려나고 쫓기고 추적당하며

 박해와 중상과 조소와 모욕과 저주와 배척을 받았소. 이미 오래 전부터 나는 이 백발과 더불어 느끼고 있었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멸시할 권리를 갖고 있는 듯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무지몽매한 가련한 군중들에게 나는 천벌 받은 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아무도 원망하는 일 없이,

 사람들에게 증오를 받는 자의 고독을 감수했소. 이제 나는 86살, 바야흐로 죽어가고 있소.

 당신은 내게 무엇을 원하오?


주교 : 당신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직후 G는 숨을 거두었다.


주교는 어떤 알 수 없는 감동에 깊이 잠기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밤을 기도로 지새웠다.

이때부터 그는 어린아이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늘어났다.

(중략)

주교의 방문은 지방의 좁은 사교계에서 자연히 쑥덕공론거리가 되었다.


"그같은 사나이의 임종에 주교님이 가셔야만 했을까? 참회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인데.

혁명가들은 모두 이교도들이야. 그런데 무었 때문에 거기에 가셨단 말인가? 무얼바라며 주교님은 거기에

가셨을까? 아마도 악마가 영혼을 끌어가는 것을 보고 싶으셨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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