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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14
게시물ID : history_290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3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08 16:53:02

14. 새로운 탈출구.

 

오늘은 소설가라는 놈이 대놓고 내 얘기에 개입을 하네.

새로운 탈출구라고, 거창한 소제목까지 붙였어.

. 완전히 틀린 제목도 아니지만...

원래 하던 거니까 걍 봐 줄까?

 

비누가게에 있을 때 얘기를 좀 더 하려고.

조선인 여자아이 일도 있고 해서, 속이 많이 상해 있었어.

근데 그 다음에도 계속 조선인들이 오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조선인들이 올 때마다 어떻게든 쫒아냈는데, 그때마다 예전하곤 다르게 마음이 되게 안 좋더라고.

조선인을 쫒아낼 때마다 내 표정이 씨무룩하니까 눈치 빠른 주인도 내가 조선인인걸 알아챈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영 사는 맛이 안나.

막연하게나마 난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어.

이렇게 막연하다고 말하는 건 쉬운데, 뭐가 막연한지 생각하면 정말 막막해.

 

여튼 그렇게 지내다가 내 생애 처음으로 도둑질이란 걸 해봤지.

뭐 깊은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배달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되는 일도 하나 없는데 걍 동경이나 가볼까?

 

동경에 간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왠지 주욱 오사카에만 있으면 평생 이러다가 끝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확 오더라고. 이렇게 세월아 내월아 하다가 삽십을 훌쩍 넘겨봐야 계속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랄까?

 

내친김에 뭐한다고 가게로 오자마자 짐가방부터 챙기고는 주인이 가게에 없을 때, 그날 수금매상 좀 집어가지고 냅다 동경으로 튀었어.

뭐 큰돈은 아닌데 나쁜 짓은 맞지. 지금도 비누가게 주인한테는 인간적으로 미안하긴 해. 걍 월급 받은 다음에 정식으로 그만 둘걸.

 

여하튼 동경에서 새출발 한다고 생각하고 이름도 바꿨어.

뭐 대단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쓸데없는 일본인들의 차별도 피하고, 그러려고 지은 이름이니까.

이번에는 마쓰다 가즈오. 오사카 시절에 ᄊᅠᆻ던 일본이름 기노시타 쇼조는 일단 버리고 동경에서는 마쓰다 가즈오로 다시 태어나볼까 싶었지.

 

막상 동경에 오기는 했는데, 그 다음이 아주 파란만장해.

아무런 밑천도 없이 동경에 굴러 들어갔으니 생활이야 뻔하지.

그때 경기? 아아, 무척 안 좋아도 아니고 완전 밑바닥이야.

그땐 다들 워낙 가난하니까 생활이 더 어려워져도 그런가보다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대공황이었더라고.

그러니 제 아무리 잘나간다는 일본의 수도라고 해도 형편이 나을 리 없었지.

 

. 기억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때 내가 전전하면서 했던 일이 대략 이 정도야.

 

-일단 고구마도매상에서 일 했는데 정식점원이 아니라 그냥 생 노가다 꾼이지.

이거 며칠 하다 관둠.

-돈도 떨어져서 무료숙박시설에서 보름쯤 신세짐.

-신주쿠에서 어디 얹혀 살기를 한달 정도.

-야쿠자 공동기숙사 같은 곳에서 대략 한달 머뭄.

-일본 요리집에서 두달 반 정도 근무.

-해산물 도매상 취직.

 

내가 자주 말하지만 요새로 따져도 어지간한 사람의 전직기록은 저리가라 할 정도지. 뭐 자랑은 아니고 걍 그렇다는거야.

 

근데 야쿠자 조직이란 말에 깜짝 놀랄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몇 마디만 하겠어. 그렇다고 구차한 변명은 아니야. 다 이유가 있다고.

 

요새도 정 곤란해서 갈 데가 없으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데가 종교시설 아닌가?

나 때도 비슷했어. 근데 지금하고 다른 건 그때는 종교시설이 하는 복지활동의 일부를 일본에서는 야쿠자조직이 맡았다는거야. 나라에서 못하는 복지활동도 좀 하고. 깡패들이 나쁜 짓해서 번 돈을 약간 풀어서 위장복지사업하는 거랑 비슷해. 그래야 좋은 일 하는 티도 좀 내고, 나라에서 눈치를 덜 줄 테니까.

 

하여튼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온 사람들 밥도 먹이고 도와도 주고, 그러다가 힘 좀 쓰고 머리 좀 돌아간다 싶으면 뽑아다가 자기네 조직원으로 쓰는 거지. 좀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게 은근히 잘 굴러가는 거야.

 

? 물론 야쿠자가 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어. 그것도 그렇고, 일본 와서 몸도 많이 축났고 해서 영 보기에도 안 좋고, 힘도 못 쓰게 생겼으니 그냥 나가리야.

나 같은 사람은 적당히 밥이나 얻어먹다가 딴 데 갈 놈으로 바로 분류되는 거지.

 

이래저래 굴러다니기를 반복하다가 간신히 들어간 데가 해산물 도매상이야.

근데 그 회사가 백화점에 입점을 해서 식품관 쪽에서 생선류를 팔고 있거든.

난 제조부에서 매일 해산물이나 다듬고 있었지.

일 좀 할 만하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분점으로 발령이 나더라고.

자세히는 말 안 해주는데, 일단 분점으로 빡세게 일 시키러 보냈다가 살아남는 놈만 추려서 다시 본점으로 올리는 그런 구조인가 보더라고.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인간 착취는 끝이 없어. 그렇지?

 

물건파는거? 그런 건 자신 있다고 여러 번 얘기 했지?

단골손님 얼굴 모조리 외우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구라도 좀 쳐가면서 죽어라 열심히 했어. 사실 내가 직원 중에 제일 잘 팔았지. 자랑 맞아.

근데 갈수록 일본인 동료의 표정이 굳어지는 거야.

나랑 친하다고 해서 같이 분점으로 발령받은 동료인데, 이 친구는 실적이 항상 제자리였어. 그랬더니 본사압박이 장난이 아닌 눈치야.

 

. 인간적인 갈등이 밀려오더라고. 게다가 그 친구는 부양할 가족까지 있었거든.

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걍 내가 관두는 걸로 마무리를 했어.

. 그 일본 동료야 내심 좋아라 하지.

근데 말야. 난 별로 잘 난 것도 없으면서 남들 앞에서 실적 하나가지고 우쭐거리는 것도 도통 성미에 맞지 않아서 말야. 그런 재수 없는 놈들 흔해 빠졌잖아?

내가 보기에만 뺀질하지 사실 그런 짓 잘 못해. 그래서 은근히 손해도 많이 봤지.

처음에 조선에서 오사카로 넘어왔을 때도 밑바닥이었지만, 동경에서는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는 것 같아.

 

-새로운 탈출구는 개뿔!

 

처음에는 내 얘기를 좀이라도 잘 써줄까 싶어서 소설가 선생이라고 부를까 하다가, 이젠 소설가 놈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아. 이런 것도 좀 미화해서 그럴 듯하게 써 주면 좋잖아? 근데 워낙에 그때 내 생활이 말야. 대놓고 개차반이라 멋지게 쓰면 그게 또 거짓말이라 좀 그렇긴 해.

 

하여간 별 의욕도 없이 막연한 기대만 하고 온 동경생활도 아주 막장이야.

몇 달 백화점 일하면서 모은 돈은 도박 좀 하고 여자들 하고 노느라 다 써 버렸어.

그러다보니까 빌붙어 살던 주인집에서 좀 사람답게 살라며 잔소리를 하더라고.

 

근데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왜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도박하고 여자는 습관이 됐지. 한 직장에는 도무지 오래 다니지를 못하겠지.

인정 좀 받는다 싶으면 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그냥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때우면서 사는 못 된 버릇이 붙은 거 같아.

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막 살지는 않았는데, 싶으면서도 언뜻 정신을 차려보면 매번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거야.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그땐 별 가망이 없어 보이긴 했어.

그렇게 좀 방황하다가 금세 때려치고, 이번에는 구세군에서 알선하는 직업소개를 통해서 가방가게에 외판원으로 취직했지.

대개 외판원이 다 그렇듯이, 교통비 정도만 주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나머지는 판매실적으로 부족한 월급을 메꾸는 거잖아?

 

-니 능력만큼 알아서 파세요.

 

뭐 이런 거지.

근데 워낙에 불경기다보니까, 가방 같은 건 잘 팔리지도 않았어. 백화점 때처럼 여하튼 먹어야만 하는 식품류도 아니었으니까. 어지간히 잘 산다 싶은 사람들마저 지갑을 꽁꽁 닫고 말았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달 내내 돌아다녀봐야 실적은 없지, 그러니 당연히 판매수당도 없어. 기본급여로는 교통비, 밥값 하기도 빠듯하지.

 

. 여기까지 오면 그냥 절망이야.

그 와중에도 수금한 돈이 좀 있었는데, 그 돈으로 술 좀 먹고 여자들하고 술상이나 두드리고 그랬어. 비누가게 이래로 두 번째 절도지.

 

내가 그 때 그렇게 막 살았어.

제발, 독자 여러분들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민족의 영웅이라고 생각해서 잔뜩 기대하고 봤는데 알고 보니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 손가락질을 해도 할 말이 없어. 이 점은 독자 여러분한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 정말, 일본경찰에서 취조를 받으면서도 이 부분은 창피해서 아예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더 수사에 혼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넌 먹고 살려고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구직자였는데, 여기저기 직장을 전전하다가, 가끔 일하던 가게돈도 훔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천황폐하게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 정말 그런 거야? 이게 말이 돼!

그랬다니까! 그 죗값까지 포함해서 받으면 되는 거 아냐! 절도죄를 추가하라니까!

 

정말 이상한 일이지?

난 모든 걸, 하나도 빠짐없이 솔직하게 자백하는데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 나중에는 나한테 질리다 못한 검사가 이런 말까지 해.

 

-아이씨.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 진짜 이럴 때는 오로지 독립운동 하나만 보고 달린 독립지사, 열사, 의사, 투사님들한테 미안한 생각뿐이야. 어디 구멍이라도 있으면 함 찾아가 보려고.

그때, 내 나이가 스물 대,여섯 정도였으니까, 지금 감각으로는 한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의 어른스러움은 당연한 거였거든. 뭔가 묵직한 그런 거 말야.

근데 난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 할 말 없는 거지.

 

그러니 누가 날 보고 독립운동 망신은 이봉창이 다 시켰다고 해도 굳이 변명은 안 하려고.

그렇다고 해서 있지도 않는 아름다운 얘기랍시고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을 생각도 전혀 없거든.

 

사람이 말야. 다들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잖아?

난 요새말로 프리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어디 얽매이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

걍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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