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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가보면 비슷비슷한 탑이 있는데
게시물ID : history_292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타세
추천 : 3
조회수 : 178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12/27 13:54:37
오중탑.jpg

이게 정림사지 5층 석탑이랑 비례가 같다네요. 안재봐서 모르겠는데....

4세기는 일본이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때 근초고왕이 아들 근수구왕에게 일본으로 칠지도를 전달 한 것에서 시작하여, 성왕때는 불교도 전해주고 하여튼 이거저거 엄청 많이 퍼줬는데

대체 백제는 일본이 뭐가 좋아서 이렇게 퍼준걸까요? (칠지도를 바쳤다고 일본 측이 주장한다는데, 당시 기술력은 백제가 넘사벽이고, 일본측에서 보고 배워야 할 입장인데 왜 바칠까 하는 생각.)

4세기에는 백제가 강해서 고구려왕을 죽였다고 하지만, 5세기로 들어서자 전세가 역전되어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털어서 한강 유역에서 쫒아냄
몽촌 토성이 백제 유적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백제의 위례성은 함락되고 개로왕도 처형되었다.

개로왕은 동생 곤지를 (백제왕가는 '부여'라는 성을 씁니다) 일본에 보냄. 461년에 일찌감치....

여기서부터 각 나라의 사료가 맞지않아 갑론을박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같이 보낸 임신한 여자가 개로왕의 처라는 이야기도 있고, 하여튼 여자 한명과 같이 일본으로 같이 보냄. (부여의 형사취수제라고 생각할 수도...)

그래서 곤지는 형 개로왕의 아들(?) 동성왕을 일본에서 데리고 있었다가 왕이 될 시기에 백제로 보냄. 한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 일본에서 살다가 갔다는게 좀 이상함.

그런데 동성왕이 신하에게 피살되어 후임으로 곤지는 무녕왕을 보냄.

무녕왕이 개로왕의 자식이냐 아니면 곤지의 자식이냐....

무녕왕 묘지석에서 무녕왕의 나이를 추정해보자면 무녕왕과 동성왕은 배다른 형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함.  

일본 천왕가가 무녕왕의 모계쪽 친족이라고 하는 것도 곤지때문이라고 함.


4세기~7세기 백제가 망할 때까지 일본이랑은 관계가 엄청 원만했던 걸로 봐선, 백제는 일본이랑 친족관계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맞다면,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고 백제는 고구려 멀티, 그런데 일본까지면

결국 신라 빼고는 부여가 다 먹은 셈이 되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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