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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재앙, 수보타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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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5
조회수 : 340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0/30 16:57:45
밑에 100대 명장 순위에서 수보타이(혹은 수부테이)가 1등을 한것을 보고 퍼왔습니다. 출처는 http://blog.daum.net/uesgi2003/4 입니다.

1.중국 화가가 묘사한 수보타이의 모습.

2. 러시아 원정중인 몽골 경기병을 묘사한 그림.

3.몽골 중장기병.

4.사조 전투 상황도.

5.튜튼기사단.

징기스 칸의 오른팔, 수보타이

1241년 유럽을 휩쓴 수보타이의 전술, 2차대전 러시아군에게 이어지다.

1221년, 징기스칸의 가장 유능한 장수 수보타이가 이끄는 약 2만명의 몽골기병이 서쪽을 건드려보기 시작한다. 그들은 코카서스 산맥을 통과해 2번에 걸친 큰 전투에서 그루지아군을 섬멸하고, 1223년에 크리미아에 이르러 칼카(Kalka) 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이긴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는 4만 명의 군사, 6명의 공과 70명의 귀족이 죽는다. 몽골에서 러시아까지 7,000km 이상, 역사상 가장 광활한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 수보타이는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훨씬 많은 수의 적과 대결했다. 몽골 군이 매우 효율적이기는 했어도 전면적인 정복전을 펼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었다. 1236년 드디어 서쪽을 향할 때에도 몽골 군의 수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였다.

원정을 이끈 사람은 수보타이 바가투르(Subotai Bagatur 1175-1248, 일명 Subotai the Valiant)로 전술적인 면에서는 한니발(Hannibal)과 스키피오(Scipio)에, 전략적인 면에서는 알렉산더와 시저에 견줄 수 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다. 그는 작전 범위나 강도 면에서 그 이전의 어떤 전쟁영웅보다 훨씬 크게 강력했다. 그의 지휘에 따라, 몽골 군은 가장 먼 거리를 가장 빠르게 누볐고, 수보타이가 없었다면 몽골은 고려, 중국, 페르시아와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말 앞에 헝가리가 무너지면서 몽골에서 서유럽에 이르는 모든 길이 무저항 상태로 열렸다. 최근에야 수보타이가 전략과 전술에서 얼마나 뛰어난 천재였는지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그와 몽골 군의 전략전술은 속도전, 기동전, 기습전, 포위전, 침투전, 초토화전과 같은 현대 군사학의 토대가 되었다.

1236년 몽골이 국경을 넘기 전 러시아는 내전과 외침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매우 낙후된 봉건국가였다. 각각의 영주를 매우 신속하게 공격해서 이들이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러시아 정복의 관건이었다. 수보타이는 먼저 북부 러시아 귀족들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군대를 북서로 향하고, 모스크바 남동부에 있는 리아잔(Ryazan) 지역을 기습한다. 별 저항도 못하고 무너진 이 도시는 단어 그대로 도살장으로 변하고 만다. 몽골 군은 콜롬나(Kolomna)와 수즈달(Suzdal)에서도 대학살을 자행한 후에 모스크바로 이동한다. 

모스크바를 불태운 몽골 군은 꽁꽁 얼어붙은 개울과 강을 건너 170km를 이동해 블라디미르(Vladimir)로 이동한다. 1238년 2월 7일, 이 도시 역시 잿더미로 변한다. 태공(Gran Prince) 유리2세 (Yuri)가 시타 강에 군대를 집결시켜 몽골 군을 기다리지만 폭설로 인해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처지가 된다. 몽골 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2월 말 정찰대를 보냈을 때에는 몽골 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 거꾸로 200,000명의 대군에게 자신들이 포위된 상태였다. 3월 4일, 러시아군의 피가 하얀 눈을 물들였고 태공의 목이 베어진다

(우에스기 왈: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겨울에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눈과 추위로 보급도 여의치 않고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치열한 전투 중에도 겨울이 다가오면 서로 숙영지로 돌아가 겨울을 나곤 했다. 반면에 기병중심의 몽골 군은 겨울에 주로 원정을 하는데, 땅과 강이 얼어붙어 작전범위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작전지역을 약탈해서 보급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4월까지 러시아의 북부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한다. 겨우 2개월 만에 12개의 요새도시를 무너뜨린 몽골기병은 러시아의 가장 부유한 도시인 노프고로드(Novgorod)에 며칠 거리까지 접근한다. 그러나 봄 홍수와 진흙탕(러시아의 진흙장군은 동장군만큼이나 유명하다)을 염려한 수보타이는 퇴각을 명령하고, 돈 강 유역의 스텝초원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유럽원정을 준비한다. 

1240년 말에 몽골 군의 러시아 원정이 다시 시작되는데, 이번에는 남부지역을 노린다. 11월이 되자 몽골 군은 그리스정교의 중심인 키에프(Kiev) 외곽에 모습을 나타낸다. 키에프는 성벽으로 둘러쌓인 요새도시였지만 몽골 군의 맹렬한 공성무기와 중기병 공격 앞에 함락되고 만다. 몽골 군의 학살과 약탈이 얼마나 심했던지, 6년이 지난 후에도 몇 백 채의 통나무집만 서있을 뿐이었고 “수많은 두개골과 뼈들이 거리 곳곳에 그대로 있었다”고 여행자들이 기록할 정도였다. 몽골 군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원정을 계속해 3주 만에 러시아 반대편 국경에 도달한다. 더 이상 약탈할 곳이 없었던 수보타이는 말머리를 서쪽으로 돌린다.

1240년 12월 수보타이는 유럽원정의 첫 번째 목표로 헝가리의 쌍둥이 수도인 다뉴브 강의 부다(Buda)와 페스트(Pest)를 택한다. 수보타이는 몽골에서 중부유럽에 이르는 진로에서 가장 큰 적인 헝가리왕 벨라4세(Bela)부터 제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를 4개 대열로 나누어 각자 눈 덮인 카파치안(Carpathian) 산맥을 넘게 한다. 바투 칸(Batu Khan)은 갈리시아(Galicia)를 통해, 쿠육(Kuyuk)은 몰다비아와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를 관통해, 수보타이 자신은 메헤디아(Mehedia)를 통해 가장 남쪽으로 이동한다.

북쪽 방향에서의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대비해 오게다이 칸(Ogedai Khan, 징기스 칸의 셋째 아들)의 손자 카이두(Kaidu)에게 30,000명의 병력을 줘서 폴란드, 보헤미아, 실레시아(Silesia)를 공격하게 한다. 1241년 3월, 카이두의 군대는 폴란드왕 볼레슬라프5세(Boleslav)의 군대를 와해시키고 크라코우(Cracow)로 입성하지만 이미 모든 시민이 피난을 갔기 때문에 불태워버린다. 카이두는 오데르 강(Oder)을 건너 한 부대는 브레슬라우(Breslau)로, 다른 한 부대는 리투아니아(Lithuania)를 관통해 서쪽으로 진군하게 한다. 그들의 진격로에 있는 동프러시아와 발트해안 도시들은 예외 없이 모두 불타고 약탈당한다. 카이두의 군대는 브레슬라우의 성벽을 우회해 실레시아로 바로 진격해 들어간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저항다운 저항을 만나게 된다.

실레시아의 헨리2세(Henry the Pious) 공작은 리그니츠(Liegnitz)에 군대를 집결시켰고 보헤미아의 벤케슬라스(Wenceslas)왕은 약 5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헨리와 합류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한다. 두 군대를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카이두는 리그니츠로 재빨리 이동해서 헨리의 군대부터 공격하기 시작한다. 헨리는 지원군의 위치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시 안에 꼼짝없이 포위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1241년 4월 9일(정확한 날짜는 아님), 두 군대가 평야에서 야전을 벌이게 된다. 

헨리는 자신의 군대를 4개의 전투부대로 나누는데, 몽골 군과는 정반대로 각 부대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지도 못했고 지휘관을 능력보다는 출신과 서열에 따라 배치시켰다. 첫 번째 전투부대는 헨리가 직접 선택한 폴란드와 실레시아 기사 그리고 약간의 용병으로 구성되었다. 

유명한 튜톤 기사가 두 번째 전투부대였고 포포 폰 오스테르나(Poppo von Osterna)의 지휘를 맡았다. 이 기사단은 가슴에는 검은 십자가를 그려 넣고 얼굴을 완전히 덮는 투구를 쓴 유럽 최정예군이었다. 세 번째 부대는 지위가 낮은 귀족에서 선발된 폴란드 기사들이었고, 네 번째 부대는 실레시아에서 금을 파던 광부들로 이루어진 보병부대였다. 평야 맞은 편에서 유럽 혼성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카이두 칸의 몽골기병들이었다.

군대의 배치나 이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전투의 큰그림만 재구성이 가능하다. 전투가 벌어지자 헨리의 기병 부대 하나가 항상 그랬듯이 몽골 군의 중앙을 공격해 1대1 마상전투를 벌이지만 몽골 경기병들이 그들을 둘러싸며 귀신 같은 화살세례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 유럽기병들은 다른 부대들이 도우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포위망을 뚫고 퇴각한다. 그 때 헨리가 자신 휘하에 있는 전체 기병에게 몽골 군 중앙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잠시 맞서 싸우던 몽골 군이 등을 돌려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하자, 카이두의 중앙이 무너진 것이라고 착각한 헨리와 전투부대는 대열을 무너뜨리고 추격에 나서 몽골 군의 장기인 유인함정에 빠지고 만다. 강력한 밀집 대형을 한 적의 대열을 분산시키고 기병과 보병을 따로 떼어놓기 위한 몽골 군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이 바로 유인함정이다. 
(글의 길이가 길어 둘로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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