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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그 치욕을 더듬어 오늘을 산다 [포토 뉴스]
게시물ID : history_298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ema(가입:2019-04-13 방문:103)
추천 : 2
조회수 : 7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28 19:01:16
109년 전(1910년 8월 29일)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했다. ‘한일합방(韓日合邦)’, ‘한일합병(韓日合倂)’이라는 무덤덤한 용어는 집어치우시라. 우리 민족에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국권피탈(國權被奪)’의 날인 것이다.

국권피탈의 현장을 알고 있는가? 혹시 수치스러운 역사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역사의 망각을 우려하는 듯, 국권을 빼앗긴 현장에 조성된 공원 ‘기억의 터’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글귀가 검은 석상 위에 새겨져 있다.

남산의 북쪽 기슭, 서울 중구 퇴계로26가길 6번지가 주소이다.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공원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다.

그렇다. 이 거대한 노목은 우리 치욕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1910년 8월22일 일제 데라우치의 통감 관저인 이곳에서 대한제국의 주권을 이양한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됐다.

일본 군경에 포위된 창덕궁 흥복헌에서 마지막 어전 회의를 마친 총리대신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과 함께 조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일주일 후, 조약은 공포됐다.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편입된 것이다.

치욕의 현장에는 표지석 하나 없었다. 무려 한 세기기 자닌 2010년 8월 29일에야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직사각형의 화강암 표지석을 세웠다.

“통감관저터 -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합병’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손 글씨였다.

고 신영복 선생의 손글씨가 새겨진 통감관저터 표지석(오른쪽)과 거꾸로 세운 동상(온쪽). / 김창길 기자

통감관저터는 지난 2016년 ‘기억의 터’로 거듭났다. 1만 9,755명의 국민이 참여한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
범국민모금운동을 통해 조성된 공원이다.

서울유스호스텔로 연결되는 비탈길 디딤돌은 공원 초입에 설치된 사람 눈 모양의 ‘대지의 눈’ 표지석으로 연결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과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그리고 사연이 새겨져 있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사람들이 차를 타라고 했다. … 일본은 패전했지만 이미 임신이 됐고 귀국길은 막막했다….”

대지의 눈을 나와 몇 걸음 올라가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다.

일제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떠받치고 있던 3개의 비석을 거꾸로 세웠다.

곤스케는 고정 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을시늑약을 강요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흩어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워 욕스러움을 기린 것이다.

디딤돌은 자연석으로 조성된 원형 모양의 쉼터 ‘세계의 배꼽’으로 이어진다.

앉아서 쉬라는 의자를 대신한 자연석 중앙의 원형 석상에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보며 교훈을 되새기는 일제 역사 ‘다크투어’는 이곳 ‘남산 국치의 길’에서 시작된다.


출처 https://m.khan.co.kr/amp/view.html?art_id=201908281738011&sec_id=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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