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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에 관한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의 뻔뻔한 거짓말에 속지 맙시다.
게시물ID : history_299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K
추천 : 0
조회수 : 8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07 18:01:59
아래의 글을 적으면서 기초정보를 취합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는 각각 예로부터 자행하던 쇄국정책을 취하면서 중앙의 엘리트중심의 정보통제를 가하면서 한국과 중국인들이 조금만 통교한다면 알게 될 뻔한 사실을 가지고 그냥 기만이나 일삼는 것입니다.

야율이 압록강을 뜻하는 얄루와 비슷한 예뤼로 중국말로 읽힌다는 사실은 그 뜻을 알게 되면 그냥 코미디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즉, 애초에 야율이라는 것 자체가 압록강인을 의미하는 속지적인 속성을 가진 언어이지 여진족이라고 그간 한국인들이 믿고 있던 속인적인 부족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국인들도 잘 못 알고 있고,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부식 이런 구체제꼰대가 적은 것들은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예뤼들이 건국주축세력으로 참가한 명백한 정주국가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북한과 마찬가지로 남한으로부터 쌀을 수입하지 않으면 만성적인 식량부족이 일어나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엘리트들의 거짓 해석을 경계하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미이 이 것들에 대한 언질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 것은 본디는 퉁구스카집단으로써 근세에 행해진 소수민족 연구에서는 아무르 퉁구스카로 지역에 따라서 분류되었던 것입니다.

https://namu.wiki/w/%ED%89%81%EA%B5%AC%EC%8A%A4

요정도가 그나마 업데이트 된 정보입니다. 아무르 퉁구스는 퉁구스들을 사는 지역에 따라서 분류하였을 때의 분류중에 하나이고, 언어적으로는 북퉁구스어와 남퉁구스어가 나뉩니다.
그런데, 북퉁구스어는 난립해 있는 반면에 남퉁구스어는 만주어로 거의 귀결되었습니다. 그 것은 남퉁구스들 사이에서 일어난 국가화와 그로 인한 통합이 반영된 것입니다.

오늘날에 행해진 퉁구스들에 대한 연구들은 사실상 21세기에는 소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르 퉁구스의 존재를 상정한 연구성과들조차도 실상 10호도 안 되는 잔존 기성세대 퉁구스들로부터 겨우 모아진 증거이기 때문이고, 오늘날에는 모조리 그들 할배들이 죽고나면 북퉁구스계 소수민족들은 더욱 흔적조차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것으로부터 러시아인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충된 증언따위가 나올 수 있는 오늘날로부터 그마나 퉁구스들이 존재하던 시기에 취합된 정보들을 신뢰해야 하고 오늘날 퉁구스카는 그닥 연구할 가치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마치 오늘날 미국인에 동화된 원주민들에게서 과거의 유산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듯이 말입니다.

되려 한국사를 고려했을 때에 아무르퉁구스는 세력이 대단히 위축된 것이었고, 본래는 동해안의 거의 전부에 거주했던 동해안 퉁구스가 북쪽으로 소수화되면서 밀려난 것이 아무르퉁구스였다고 보여집니다.

사서상으로는 오늘날의 강원도 일대의 퉁구스들의 신라로의 귀속만 기록되었지만 동해안의 지리를 고려하면 실상은 삼척이나 울진까지도 퉁구스들이 살았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포항의 영일만일대까지도 남하했었을 수 있습니다. 포항일대는 동해안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인해서 은근히 쌀농사가 많이 지어지는 지역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퉁구스는 결코 유목민이 아니며 특히 중국역사상 한나라대에는 명백하게 함흥평야에서 세를 이루어서 정주하고 있었습니다.

퉁구스의 유목민이라는 개소리자체가 애초에 한민족이 소중화로 자랑한다고 하던 시절에 북방민족들을 깔보던 백호주의에서 비롯하는 비하일 뿐입니다.


그러한 동해안 퉁구스의 방계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이 예뤼 혹은 야율이라고 하는 얄루강 퉁구스 혹은 압록강 퉁구스입니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이들로부터 기인했던 것으로 보이며, 야율이 야유리가순미가 되었던 것으로 보건데, 유리왕이라는 존재조차도 예뤼의 왕이었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동명성왕이라는 것은 후일에 조선조 따위가 역대의 시조들을 따로 모아서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창작된 허구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왕가를 엉터리로 지어난 후한서나 삼국지들은 모조리 중국의 지배계급이 한나라인들에게서 선비족으로 넘어갈 때에 적혀진 엉터리의 것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측천무후같은 이미 스스로 자처한 주작의 달인들인 것들의 하수인들에게서 주작된 것들입니다.

고구려역사는 왕권이 그나마 리더쉽을 가지던 때와 부족세력이 난립하던 때가 마구 뒤섞였는데, 그나마 정권이 성립했음이 확인되는 때가 소수림왕에서 안장왕까지입니다.
즉 애초에 그 것은 항구적으로 잘 표출되지 않던 나라입니다. 예뤼들의 한가지 유력한 직계들은 연태조라고 부리는 놈으로부터 기인하였고, 연개소문은 그들의 집단의 다이아몬드 수저 중의 하나입니다.

애초에 황학에 의해서 중국식으로 모든 시기에 왕이 다스려야 하고, 왕이 없는 시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중화식 전제주의에 의해서 28대의 고구려왕들은 모두다 창작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즉 애초에 광개토대왕이라는 존재로부터 그의 선대의 밝혀진 몇 세대들인 고국양왕이나 소수림왕의 존재했음이 기록되었듯이, 연개소문이 존재했기 때문에 연태조도 기록된 것이 중국사내에서는 유교 이념에 따라서 몇 개의 엉터리 외삽들과 함께 기록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계나 나왔기 때문에 6룡이 나르샤 이따구로 그의 4대 윗대까지도 기록될 수 있듯이, 광개토가 나와서 고국양왕과 소수림왕은 기록된 것일 뿐 그 것들은 실상은 역사에 등장할 가치도 없는 일개 부족장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후대가 너무 잘 해서 존재가치마저 후대인들에게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몇 대위의 집안어른이었다는 연태조도 그러한 것으로 보이며, 실상은 광개토나 연개소문은 단지 예뤼들 사이에서 나타난 강력한 개인일 뿐었을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나 연개소문 또한 이성계나 니탕개나 누르하치와 마찬가지로 단지 당대에 빛을 발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차지하고 나면 애초에 신라화된 동해안 퉁구스카들로부터 고구려와 신라는 모두 우리 민족의 나라라는 관념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것이 백두대간입니다.

그러나 정작 한민족의 언어는 고시베리아어로써 퉁구스카들과는 조금 상이한 집단이고, 신라지배성분 또한 경상도의 형산강과 태화강 일대에서 관개농법을 통해서 인구팽창한 별개의 종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무제와 한사군을 통해서 당시에 실크로드를 통해서 교역하던 한나라인들이 그들의 교역네트워크를 고구려지역이나 심지어 신라까지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함경도 일대에서 동해안 퉁구스카들과 경상인들이 교역하는 depot들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비정하는 것입니다.

매우 후일에 중국인이 된 서던 퉁구스들은 청조로 명을 멸망시키는 희대의 승리 이후에 되려 급속하게 중국화되었습니다. 반면에 한국인이 된 서던 퉁구스들은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것이 바로 고구려와 신라를 결부시키는 구체제 사가들의 관점에 대한 변명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라와 고구려는 각기 다른 민족이 다스리는 별개의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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