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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숭배주의와 보수주의
게시물ID : history_29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K
추천 : 0
조회수 : 6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12 16:23:29
본인이 고려를 오랑캐라고 까는 이유는 물론 역사적 팩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강제한 지배이념이 현한국사회의 권위주의이자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인종차별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물론 고려족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의 존재가 918년경에 있었다고 해봤자 지금은 교잡이 일어나서 분리를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조 성립이후에 500년이 지난 뒤에 그들 집단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만든 경국대전에 여전히 자자손손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고, 그 법은 무려 불과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유효했다고.
본인의 할배가 1930년대생이었던가 증조부는 확실히 구한말인간이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 것은 마치 미국의 노예해방이전과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존재했던 관습에 근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조선의 정권은 중종반정이후로는 사림이라고 하는 고려조의 두 사조를 스승으로 하는 집단들이 통치하고 있었음.
그러한 지점에 의해서 오늘날 경북인들의 강남세습친일파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등장하는 것임.
바로 정몽주와 길재의 본관이 바로 오늘날 포항과 구미로써 다시 여기서 또 수많은 경북가문들이 사림이랍시고 행사했던 신분이 자자손손 대물림되던 시대에 특권계급들이 조선왕조의 신료집단을 관통했던 명백한 팩트라고.

그리고, 환빠 이런 놈들은 뭣도 모르고 고구려 빠돌이 요 지랄이나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고구려 우월론의 근거랄 것은 정작 실질적으로 그들이 고구려와 역사적으로 결부된 집단이라서 그러는 것도 전혀 아니고, 되려 조선조 신분제 사회내에서 고려조의 두 현자의 떨거지임을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 한국에서 빵구 좀 뀌는 종자로 간주하던 것으로부터 나온 숭배주의라고 보여진다.

물론, 실제의 다수의 한국인들은 거의 백제계 아니면 신라계이다. 정작 서울 한복판에 백제의 풍납토성이 있고, 풍납토성으로부터 불과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암사동 유적이 있기 때문에 바보도 알 수 있게 암사동의 신석기인들이 곧 백제문명을 이루었다는 지점을 완벽하게 시사하고 있고, 나아가서 춘천이나 여주 따위의 신석기 유적들은 그 것들이 한강을 통해서 원시백제와 교역했던 흔적조차 역력한 편이다.
특히 춘천의 신석기 유적은 그 것은 애초에 나무를 캐서 뗏목으로 보내서 하류의 후일에 백제문명이 된 원시백제문명과 교역하던 흔적조차 발굴되었다.

뭐 알랑가 모르겠는데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강원도의 나무를 캐서 한강으로 뗏목을 만들어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음. 무려 90년대까지도 일부는 존재해서 방송까지 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임.

뭐 그렇게해서 나무를 보내면 하류의 거주지 근처에서 나무를 건져서는 땔감으로 팔던지 목재로 팔았던 것임. 그게 무려 신석기까지 올라가고 무려 그때에 그 활동을 하던 취락이 바로 춘천에 있어서 이미 춘천과 서울간의 교역이 그때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러한 부분들이 후일에 한성백제의 요소가 되었다는 것임.


따라서 조선왕조를 객관적으로 보면 그 것은 암사동이나 춘천의 신석기 유적의 후손들이 태반이 인구구조내에서 굳이 지덜만 고려인인 정몽주와 길재의 후학이라고 유달떠는 종자들이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었다고. 그리고, 그들에 호응해서 바로 경북놈들이 우리도 그들의 자손입죠 요지랄하던 그들의 선민사상이 또한 혈연이라고 묘사되는 특권층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점으로 비추어 볼 때에 지금 그들이 말하는 보수주의나 권위주의라는 것은 역사비판을 하자면 단지 그 것은 고려로부터 기인하는 특권계급들의 선민사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들은 특별히 특이점이 있는 정치이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앙시앵레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 선민적 혈연집단의 결집에 근간한 정치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그들은 고려-조선계의 앙시앵레짐이고, 특징적으로 경북지역에 본관을 둔 가문들로부터 특히 사림의 후학들이었다는 학자이자 정치가들을 원시조나 혹은 중시조로 둔 자들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정작 근거 없는 고구려빠가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정작 고구려사는 여진족 역사가 거의 확실해지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5부제가 후일에 팔기제로 이행된 것으로 보이며, 계루부가 거란족이라거나 하는 부분들이 결코 그 것이 한민족의 역사가 아님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고구려가 왜 한국 역사가 되어야 하냐는 지점은 정작 고구려인들이 남하해서 한국계에 섞인 집단이라고 할 것이 특정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성, 서울 정치권 내에서 고려조의 두 성인을 배향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아왔고, 그러한 고려조는 고구려의 후예를 참칭했다는 그 것 하나가지고 그냥 엉터리로 엮은 것이다.


애초에 전설의 고려조로 가더라도 정작 왕씨들과 고구려간의 정렬은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정작 왕씨라는 존재는 선비족계의 수나라사서에서는 제법 등장한다. 그리고, 그 왕씨들은 역사조작을 통해서 무려 삼국지라고 하던 시대에까지 그들이 존재했던 것처럼 그들의 대를 높여놨다.
실지로는 선비족정권이 들어서고 난 북주나 북제의 인간들이 후한이나 삼국시대까지 그들의 아바타를 만들어서 외삽한 것은 일반적으로 중국 통사에서 지적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안 쓰는 놈들은 그냥 구라도 답습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확인되는 인물들을 고려했을 때에 후한말이나 삼국지때부터 존재했다는 중국의 명문들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끽해야 5대10국시대에나 존재했다고도 하는게 현실임에도 말이다.

한가지 중요한 지점은 기원전 390년에 로마가 켈트족에게 한 번 털리고나서 전대의 역사들은 모조리 신화화되었듯이, 카이펑과 정저우 일대도 947년에 바로 고구려계인 요나라에게 털려서 대약탈과 살육을 당하였다.

아마도 요나라놈들 역시도 역병이 돌 정도로 시체처리나 도시의 상하수 관리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한데, 그러한 뒤에 켈트족들이 로마를 버리고 다시 북쪽으로 돌아간 것처럼 요나라놈들도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에 잿더미위에서 다시 소생한 것이 바로 송나라이고, 송나라는 일종의 중국의 폴아웃이나 매드 맥스 이후에 피닉스처럼 부활한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사서란 것은 바로 그러한 송대와 원대에 reconstruct 된 것이고, 대체로 그냥 엉터리이다. 그 것은 원대와 명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출판가들이 찍어내자 그냥 소설이 역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주나라 기원설이라고 하는 것도 실제로는 선비족의 살아남은 후예들인 송나라인들이 간신히 기억해낸 것이지만 그 것은 실제로는 북제와 북주일 가능성이 더 크고, 고대의 주나라라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작 공자의 춘추에서 본래 공자가 역사가로써 전하려고 했던 것은 초나라계의 이민집단이 중국남부에서 국가를 형성하면서 그들로부터 매우 강력한 이민집단에 의한 왕조들이 탄생하였다는 것이 픽빅쳐였다고 보여진다.
초나라로부터 오와 월이 분리해나갔고, 아마도 스촨성을 공통분모로 하는 진나라도 동일한 이민집단이 성립했다는 빅빅처의 스트럭처가 공자의 서술에서 아마도 후대의 외삽들에도 불구하고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초나라와 오, 월의 패러다임이 바로 그들과 산둥반도와 장수성일대에서 교역할 수 있었던 이질적 집단에게 영향을 주었다. 마치 미국이 한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초래했던 1950년대나 60년대마냥 말이다. 그 일대를 바로 노나라라고 하였으며, 공자는 바로 그 지역 출신이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왕씨는 확실히 중국의 판타지화된 중국의 삼국위진남북조 역사내에서 등장하고 있는 성씨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어째서 고려조의 두 위인을 숭배하는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세습권력집단이 중국에 그들의 ethnic supremacy, 혹은 선민사상을 결부지어서 emphasize 해왔는지에 대해서 동기를 찾자면 단지 그 것은 한국인들 내부에서 그들만이 좀 더 우월하다는 선민주의에 다름아니고, 다르게 말하면 그 것은 차별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특히 백제와 신라, 혹은 삼한이 바로 그 차별주의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신라인들과 거의 정렬되는 경상인들도 몇몇 대구의 명문정가출신을 제외하면 그 축에 못 드는 자가 태반인데, 그들과 전라도인이 이이제이의 이간의 대상이 되면서 그들을 차별하는 차별주의가 또한 갸들 보수세력들에게는 결속을 강화하는 차별자들의 공통분모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서원이라는 인간은 학창시절에 공부는 아주 지질히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반에서는 일진을 자처하는 아주 악질적인 인싸였다고 한다. 그러한 부분들에서 한국 보수들이 어떠한 우월주의를 가지고 또한 그 우월주의가 수반된 갑질이나 폭력성에 근간해서 그들 체제의 내부를 단속하고, 그들의 아웃사이더로 규정되는 신분상으로는 솔거노비나 솔거노비에 준하는 임대를 받는 상민들의 다수층들에게 노동자나 지방인들, 변방놈들 따위의 타이틀을 붙이고는 악질적인 방법으로 부려먹으면서 또한 그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도록 지역감정이나 퍼뜨리면서 제어해왔는지 그 모든 동기를 고려시조로부터 기인하는 선민사상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한 지점들에서 통합당이 말하려고 하는 보수주의라는 것은 얼마나 엉터리이고, 정치적 benefit를 창출할 수 없는 단지 그들만의 리그의 선민적 결집논리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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