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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준동의 역사와 고대사
게시물ID : history_300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K
추천 : 0
조회수 : 6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17 02:13:45
북쪽 친구들이 남쪽 정권에 대해서 쌀 좀 주세요 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게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중에 하나는 고려 예종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적대적 모드로 가다가 윤관이 6성을 쌓자 으허 쌀 좀 주세요를 쌀과 그들이 가진 말이나 피륙따위의 교환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를 통해서 구걸모드로 태세전환했었습니다.

고구려라는 것이 재평가 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주장도 이러한 것입니다. 경상도인으로써 본인이 보기에 경제라는 중차한 요소가 기성 사관에서 빠져있었습니다.
경제력을 고려하면 광개토가 주도적으로 신라를 이끌었을리는 거의 만무하기 때문에 그 것들을 재평가 될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신라와의 제휴를 통해서 신라 매금의 친구로 인정받은 뒤에 광개토대왕이라는 놈과 장수왕이라는 놈은 안정적인 식량안보를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시키고, 모용씨와 같은 침략자들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일 것입니다.

그러한 안보와 제휴라인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광개토는 신라매금의 토내당주세력들 중에서 왜색이 강한 이미 3세기에 신라를 상대로 대전쟁을 벌였던 왜계의 서경상계 영주들을 매금을 대리해서 진압하는 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즉, 광개토가 왜 세력과 전쟁을 한 것은 맞지만 명분론과는 다르게 정작 광개토가 신라를 위해서 뛰어준다는 실질적으로 용병짓에 가깝다는 것이 참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컨데, 광개토 대에 일어난 왜와 백제의 준동이 포상팔국의 전쟁의 2차전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것은 너무 노골적으로 신라가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실제로는 마치 2차 세계대전 때에 영국이 미국을 끌어들이듯이 광개토대에도 일어난 2차 경상전쟁에 고구려를 끌어들인 것 자체가 신라외교의 빛나는 승리로써 광개토라는 놈들은 신라외교라인들에게 첨부터 낚시를당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고구려는 자신들의 입장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였고, 왕의 치적으로 일을 간주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처칠이 루즈벨트를 낚은 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포상팔국의 난 때에는 그나마 동경상과 서경상의 패권다툼의 성격만 띄었지만 그러한 전쟁이 신라의 서경상 지역 너머의 지역에 대한 지리적, 안보적 관심을 초래하여서 섬진강 너머의 마한이나 무주의 나제관문 너머의 백제까지 신라의 관심지역이 되면서 광개토 대에 일어난 가칭 2차 경상전쟁 때에는 백제와 왜까지 참전한 국제전의 성격을 띄었던 것이다.

즉 1차 경상전쟁인 포상팔국의 난 때나 2차 경상전쟁인 광개토전쟁 때에나 양자간의 지정학적인 베이스는 거의 유사한채 전쟁의 규모는 국제적으로 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북쪽의 오랑캐 정권을 끌어들여서 급한 불을 끈 것은 신라가 주도적이며, 신라외교의 승리이지 않냐고 해야 한다.

뭐 하여간 북한은 쌀 달라고 지랄지랄 카는것이지만 한국은 미국의 제제까지 피해서 쌀을 줄 의리는 없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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