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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불안에 시달리던 광해군, 그의 어버이자아 (1편)
게시물ID : history_301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라후악바
추천 : 0
조회수 : 9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02 17:03:47

https://cafe.naver.com/carelaw/2725

15대 왕 광해군은 후궁 소생의 둘째 아들로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죠.

2살 때 생모를 잃어 그의 옆에는 안정적 애착을 형성시켜 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어린 시절 서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만성불안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그는 성인자아(Adult ego)가 높은 사람으로 추측됩니다.

임진왜란과 전후 복구, 실리외교, 인조반정 후 망명지에서의 태도로 미루어보면요.

성인자아가 높으면 합리적이고, 사실평가적이며 현실지향적입니다.

문제해결에 능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결단하고 행동하지요.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감정이 건드려지고 분노 표출로 이어져 불같이 화를 내기보다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할 줄 알고요.

상대방 의견이 더 합리적이면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타협의 과정을 거쳐요.

감정기복이 심해 다른 사람의 언행에 따라 자존심이 출렁여 쏘아붙이기보다는 필요한 경우에는 침묵할 줄도 알아요.

아버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서둘러 17세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난을 수습하도록 분조(分朝;임시 조정)를 이끌게 했지요.

오늘날로 치면 고등학생 나이에 광해군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남쪽 지역으로 내려가 백성들을 직접 만나며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모으며 전장을 누볐어요.

북쪽으로, 나중에는 요동으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웠던 아버지와는 달리 말이죠.

왕가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던 백성들 사이에서 광해군의 이러한 헌신은 민심을 돌리는데 일조했어요.

훗날 역사가들에게 이러한 활약은 조선 왕조에서 많지 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실천된 사례로써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선조가 늘그막에 얻은 영창대군을 끼고 돌며 광해군을 핍박하고 세자 자리를 놓고 위협해도 신하들은 그가 33세에 즉위할 때까지 끝까지 신뢰하며 협력했어요.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 안위를 살피는 대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현실적이고 문제해결적인.. 어른스럽고 성인자아가 높은 광해군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광해군이 즉위하고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 모습에서는 더욱 과감하고 결단성 있는 성인자아가 높은 사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요.

그는 전란을 대비해 미리 국방 경비를 정비하고 무기 제조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원수지간인 일본과 외교를 재개하고, 그의 가장 큰 치적인 대동법을 실시했어요.

지역의 특산물을 내는 공납이 관리들에 의해 변질되어, 떠안은 빚 때문에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떠돌게 되고 나라의 수입도 줄어드는 걸 보고 그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역 특산품 대신 모든 공물을 옷감, 쌀로 대신 내도록 해서 백성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고 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뜨거웠지요.

이는 수많은 규칙들에 지나치게 얽매여 유연성이 부족하거나 자기 신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강압적인 ‘비판적인 어버이자아’ 대신에..

전체를 보며 통합적 사고를 지향하는 ‘성인자아’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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