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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한의 실체와 위치
게시물ID : history_304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익승리
추천 : 0
조회수 : 16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4/24 22:19:12

1. 후삼한의 실체

조선총독부 소속 역사소설가 (이른 바 강단사학자) 들은 마한은 전라도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였고, 마한 소국의 한 나라인 백제가 마한을 점점 점령하여 4세기 후반에나 한반도 남서부를 차지한 백제가 되었고, 진한 소국의 한 나라인 신라가 경상도 지역을 점령하여 4세기 후반에나 경상도를 차지하여 신라가 되었고, 변한 소국들은 야마토왜의 영향력 아래 연맹체로 있다가 백제와 신라에 분할점령되었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에 신라는 진한의 유민이 여섯 골짜기에서 살다가 박혁거세를 중심으로 신라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진한의 한 나라가 신라가 된 것이 아니라, 진한이라 그들이 자부했던 예맥조선의 유민들이 나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신라이다.

9년에 백제에 점령된 마한도 한 나라이다. 마지막까지 백제에 저항했던 원산성 금현성은 성이지 나라가 아니다. 진서에 마한이 등장한다고 하여 이들은 삼국사기 마한 점령기사를 부인하는데 중국인들이 말갈을 마한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세민이 고구려에 개망신 당한 것을 기술하지 않기 위해 동이열전에서 고구려 백제를 빼기 위해 마한 진한을 넣었고, 조공 기사 외에는 관련 기사가 없어 날조한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 날조가 아니라면 고구려의 속국인 마한(말갈) 중 한 나라가 조공했을 가능성이 있고, 진한은 황하의 이동으로 조위의 영토가 된 황하 서쪽의 한인들을 진한이라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변한은 서기전 39년에 신라와 합쳐졌다. 삼국사기에 명백히 기록되었다. 신라를 변진이라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진한의 유민과 준왕의 후손이 세운 마한에 지배당하게 된 원주민인 변한이 합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 후삼한은 사실상 마한 한 나라이다. 변진은 마한의 속국이었다. 이들 모두 황하 하류 한지역에 있었고 한반도와는 무관하다.

조선총독부 소설에는 전혀 근거가 없다. 이들은 삼한이 70여 소국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인 삼국지와 후한서는 전삼한의 70여 나라를 후삼한과 혼동하였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삼한에는 성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서기전 24세기의 상황이다. 백제에 망한 마한은 성이 있었다. 진수와 범엽은 전삼한과 한지역 마한을 혼동하여 횡설수설하고 있다.

2. 후삼한 남한설의 소설성

문제는 전라도는 후삼한 마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단에 반대한다는 사람들까지 전라도가 마한이고 경상도가 진한 변한이라는 전제에서 논문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조선총독부 직속 소설가들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지 후한서를 무시한다. 이들 사서에 의하면 마한은 예맥조선의 유민들이 오자 나라 한쪽 구석에 살게 하였고, 변진이 되어서도 마한에 꼼짝 못하는데, 전라도가 마한이고 경주가 신라라면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낙랑 동부도위가 바로 신라 북쪽에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백제 북쪽에 말갈이 있고 백제 동쪽에 낙랑이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후삼한 즉 마한을 전라도에 위치시키기 위해 조선총독부 소설가들은 춘천에 맥국이 있었고, 이들이 낙랑을 참칭해서 온조왕이 백제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하며,

신라를 침략하는 신라 북쪽의 낙랑(실제는 낙랑 동부도위이나, 그들은 낙랑군 동부도위는 함경도에 위치시킨다)에 대해선 날조기사설(그들은 설명이 불가능하면 날조라고 한다. 세상에 침략당한 것을 날조하는 나라도 있는 것이다), 상인집단설, 북진한설, 시기 혼동설, 낙랑 참칭 옥저설(옥저가 경주 북쪽까지 가는 기동력을 발휘한다), 최리 낙랑국설, 편찬자 실수설 등을 주장한다.

백제 북쪽의 말갈에 대해선 동예설, 고구려 내 말갈설, 영서예설, 마한의 소국인 신분고국설 등 그들의 탄탄한 문학적 소양을 뽐낸다. 그들은 동예나 영서예가 백제 북쪽으로 출장을 와서 백제가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고 한다.

이런 소설도 될 수 없는 주장은 낙랑은 평양, 후삼한은 남한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지록위마일 뿐이다.

이러한 지록위마에 역사광복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편승하고 있다. 후삼한 남한설은 평양 낙랑군설 이상의 날조이다.

3. 사서 기록에 따른 후삼한의 위치 낙랑군의 위치

마한, 백제, 신라(변진), 낙랑군, 낙랑군 동부도위, 왜, 말갈이 좁은 지역에서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은 황하 하류지역 밖에 없다. 우리 민족의 강역에서 보면 매우 협소한 지역이지만, 이 지역에서 백제와 신라가 기원하였고, 바로 북쪽에서 고구려가 건국되었고, 중국과의 국경 부근이기 때문에, 사서에 이 지역에 관한 사실들이 주로 쓰여졌다.

사서에 전혀 근거가 없는 낙랑군 난하설을 주장하면서 후삼한을 남한에 위치시키는 것은 강단의 소설과 다른 또 하나의 소설일 뿐이다. 강단은 낙랑군과 후삼한을 연결시키기 위해 참칭설 등 무시무시한 소설까지 쓰고 있는데, 재야 소설가들은 사서의 후삼한과 낙랑군을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역사광복을 주장하고 삼국사기를 무시한다. 그래서 강단에게서조차 무시당한다.

마한 전라도설(삼한 남한설)은 낙랑 평양군설보다 더 나쁜 유사사학이다. 마한 전라도설은 조선총독부의 간첩이고 삼국사기 불신론이다.

[한 상고사 참조]

출처 https://blog.naver.com/bbondd0/22308332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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