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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중 - 9
게시물ID : history_7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이일
추천 : 1
조회수 : 7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2/08 21:23:36

오늘은 고대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동영상 강의 3편을 듣다 보니 중간중간 재밌는 이야기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아 외워야 하는 곳이구나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정리를 해보려고 해도 머릿속으로 맴돌고 글로 적으면 딱딱하게 풀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초기에 적은 것처럼 딱딱한 글이 될 것입니다.


고대의 문화를 완전 이해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알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하며,


정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고대의 문화(불교,유교)


종교에 관련하여 고대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불교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불교는 고구려는 소수림왕떄, 백제는 침류왕때, 신라는 법흥왕때 전파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불교가 이토록 환영받고 전파된 이유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특징떄문입니다.


불교는 유일신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베타성이 적고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부족을 통합하기에 용이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가 전래되었고,


이를 왕실에서 가져다 쓸 때, 다시 한번 변경이 되었는데 이는


왕실불교적 특징입니다. 왕이 곧 부처와 같이 깨달음을 가진자로 권력을 가지고 위에 앉아 있는 것에 당위성을 줍니다.


또 귀족에서는 업설이 선호되었는데, 이 업설은 흔히 카르마라고 하는 것으로 전생에 좋은 카르마를 쌓았기 때문에 현재 내 위치가 있다는 것으로


이 또한 권력에 당위성을 표시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많은 이 시기에 호국불교적 성격을 가지고 나라를 지켜야 하는 점을 당연시 하였습니다. 이 호국불교적 특징을 가진 증거는


세속오계, 황룡사목탑, 문무왕릉이 있습니다.


신라 중대에와서 불교는 민중에게 보급화가 되었습니다.


신라 중대는 불교가 완전히 국교가 되었고, 이 때 많은 불교문화가 발달되었습니다.


이 때, 가장 특징적인 사람은 원효, 의상이 있고, 약간 별개로 혜조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원효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불교를 대중화하는데 많은 역활을 한 사람이고, 아미타 신앙은 전파하였습니다.


또한 십문화쟁론, 원흉회통사상, 일심사상 등 이론과 관련해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미타 신앙을 통해 죽은 후에 정토를 갈 수 있다. 아미타불을 외치면 누구나 정토에 갈 수 있음을 주장하였고,


부처는 마음에 따라 달린 것이라는 일심사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상은 화엄종을 발달시켰고, 이 화엄종은 일즉다, 다즉일이라는 내용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원효와는 다르게 현재 살고있는 세상에서 소원을 비는 관세음 신앙을 퍼트렸습니다.


혜초는 저서인 왕오천축국전이 유명한데 이는 불교 교리가 적힌 책이 아니라 8C경의 인도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일종의 지리지로


상당한 가치가 있는 서적으로 알아두기만 해도 됩니다.


신라하대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이 유행하였고 이는 풍수리리와 결합하여 지방 호족들이 선호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도교의 전파에 대해서 보면


도교는 신선이나 무위자연과 같은 사상을 담고 있는 도인데 삼국시대에 전래되었습니다.


관련 유물로는 고구려(사신도), 백제(향로, 산수문전), 신라(화랑도)가 있습니다.


유교 또한 삼국시대부터 전래되었습니다.


유교에 관련된 기록들은 교육기관 역사서로 나누겠습니다.


고구려는 중앙에 태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소수림왕때 건립하였고, 지방에 경당이라고 유학과 무술을 가르치는 기관이 있었습니다.


백제는 교육기관이 전해지지 않지만, 박사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로 유학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 또한,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교육을 한 증거인 임신서기석이 있습니다.


삼국의 역사서로는 고구려에 유기 - 신집(영양왕), 백제에 서기(근초고왕), 신라에 국사(진흥왕)이 있습니다.


이 이후에 남북국 시대에는 발해에 주자감, 신라에 국학->(태학으로 이름 변경)이 있으며


유학자로 김대문(화랑세기, 한산기, 고승전 -> 자주적의식), 설총(화왕계, 6두품), 최치원(계원필경, 토황소격문, 시무책 건의, 6두품)이라는 유학자가 있습니다.


이제 종교에 관한것은 살펴 보았고, 이제 과학 고분, 건축, 불상, 탑, 음악, 일본에의 영향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과학에 관련하여 고구려는 천문도라는 하늘을 보는 지도가 있었으며 이 천문학은 왕권 및 농업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백제는 천문학에 대한 기술은 없지만, 뛰어난 철제 기술로 칠지도를 제작하여 일본에 근초고왕이 선물해준 유물이 있는데, 이 칠지도에서


금으로 글자를 세길 정도의 기술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는 다 알다시피 경주에 선덕여왕때 건축된 첨성대가 있었으며, 가야지역에 예로부터 발전된 철을 다루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통일신라는 불교가 많이 발달한 것과 같이 선덕왕때 만든 상원사종과 경덕왕때 만은 성덕대왕신종이 있습니다. 또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석가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분은 매우 중요한데, 이 이유는 고분에 같이 묻혀있는 부장품이 그 시대의 생활 문화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초기에는 돌무지무덤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점점 굴식돌방무덤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돌무지 무덤양식으로 지어진 무덤은 장군총이 있으며, 굴식 돌방무덤은 무용총, 강서대묘 등이 있습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입구가 존재하고 내부에 공간이 있어 벽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입구가 있어 도굴을 하기 쉬워, 남아있는 부장품이 거의 없습니다.


초기엔 벽화양식도 생활과 같은 풍속화에서 후에는 사신도등이 그려졌습니다.


백제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초기에 돌무지 무덤(석총동 고분)이 있었으며, 후기에 굴식 돌방무덤으로 발전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무덤(무녕왕릉, 웅진) 형태로 발달 하였습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다르게 초기에 돌무지 덧널 무덤 양식(천마총)으로 이 무덤 양식은 입구가 없고, 내부 공간이 없어서 벽화가 없습니다.


또한 도굴이 어려운 특징이 있습니다.


후에는 굴식돌방 무덤 형태로 발전하였고 이는 김유신묘가 있습니다.


통일신라는 신라의 굴식돌방 무덤은 물론 불교에서 유래된 화장이 유행하였습니다.


박해의 고분은 고구려와 같이 굴식돌방무덤(정혜공주묘) 형식의 묘를 사용하였고, 천장이 모양만 모줄임 천장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건축과 탑


고구려의 군축물은 평양에 있는 안학궁이 있고 이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관련하여 장수왕때 건립이 되었습니다.


백제는 익산에 미륵사지가 있으며, 목탑양식의 미륵사지 석탑과, 정립 사지 석탑이 있습니다.


신라는 진흥왕때 황룡사지, 고려 때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된 황룔사지9층목탑, 분황사탐(모전석탑)이 있었으며,


통일 신라 시기에 불국사, 검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 3층석탑, 다보탑등이 중대에 지어졌습니다.


후대에는 진전사지 3층석탑과 같이 기단과 탑신에 불상을 조각하는 양식이 유행하였으며, 선종의 영향으로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발새는 당의 영향을 받은 상경성이 건축되었으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석등, 돌사자상등이 있습니다.


불상과 공예에는 많은 작품이 있는데,


고구려는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백제는 서산마애삼존분, 신라는 경주 배리석불입상,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 있었으며


삼국 모두 미륵보살이나 반가사유상이 제작되었고, 모두 미소를 띄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기에는 석굴암(본존불, 보살상), 무열왕릉비 바다침돌, 법주사 쌍사자 석등,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 상원사 종등이 있습니다.


우리 고대 문화는 일본에 많이 전파되었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아스카 문화를 통일신라 시대에 하쿠호 문화를 전파하였습니다.


고구려는 회화 관련하여 유명한 담징 호류사 금당벽화 및 종이와 먹을 전파하였고, 수산리 고분벽화와 비슷한 다카마쓰 고분군에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백제는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던 만큼 많은 문화가 전파되었는데, 아직기, 왕인, 노리사치계등이 넘어갔고


유학이나 학자, 가람양식을 전파하였습니다. 유물로는 고류사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호류사의 백제관음상이 있습니다.


신라는 일본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어서 별로 없지만, 축제술과 조선술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는 일본의 화엄종 발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만 내용을 마치겠습니다.


이번 강의는 문화의 흐름을 느끼고, 외우는 것이네요,, 열심히 외우겠습니다.





모두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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