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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조와 정약용의 일화
게시물ID : history_93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포의피
추천 : 11
조회수 : 192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21 19:07:29

<한자내기에서 이긴 정약용> 어느날, 정조는 정약용에게 3개자가 1개자로 합성한 한자 쓰기 내기를 하 자고 합니다. (晶(밝을 정), 姦(간사 할 간), 森(나무 빽빽할 삼), 磊(돌 무 더기 뢰) 등을 쓰는 내기였죠) 다 쓴 다음 정약용은 전하께서 한 자만은 신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 말하자, 자신있게 정조는 자전에 있는 모든자 를 다 암기 하는데 한 자가 미치지 못 할 것이란 말이 왠말이냐고 웃으십니 다. 정약용은 그래도 한자만은 미치 지 못할 것이라 하며 각자 쓴것을 교 환 했더니 과연 정조가 한 자 부족했 다고 합니다. 너무나 쉬웠던 三(석삼 )자를 빼놓은 것이었죠. 군신은 서로 무릎을 치면서 웃었다고 전합니다.

<술자리가 두려웠던 정약용> 영조와 함께 검소한 삶으로도 유명한 정조. 평소 술을 즐기진 않았지만 대 신 엄청 잘 드셨다고 전합니다. 이미 유생시절부터 정조가 상으로 술을 내 릴 때마다 정약용은 술을 못하니 헤 아려달라 청했지만 상이니 반드시 받 아야 한다고 기어이 술을 내리십니다 . 정약용은 평소 자신을 잘 다스려 절 대 몸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는데 아마도 정조는 술도 못하는 정약용이 술을 받아마시고 멀쩡한 척 노력하는 모습이 재밌으셨나 봅니다;; 정약용 의 일기에 보면 '看酒戶催鯨飮' (주 량대로 다 마셔라 재촉이 내리었다) 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이니 괴롭긴 무지 괴로웠나 봅니다. 또한 유배지 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보 면 '세번 일등한 덕택으로 소주들 가 득 따라 하사하시기에 나는 오늘 죽 었구나 생각했는데...'라는 부분도 있 답니다.

<넘어져 상처난 정약용> 어느 추운 겨울날 규장각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신하들에게 정조가 음식과 술을(야식?) 보내주셨다기에 다른 곳 에 있다 규장각 내각으로 오던 정약 용은 어둠 속에서 그만 광대뼈 부분 이 긁혀 상처가 생기게 되었답니다. 다음날 정조를 알현하는 중 정조는 정약용의 얼굴에 상처가 난 것을 보 시고는 "어찌하여 납지(상처)가 생겼 는가. 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해 취하 여 넘어진 게 아닌가" 하고 묻자, 술 때문이 아니라 어둠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정조는 “옛날에 도 취학사(醉學士)와 전학사(顚學 士)가 있다는데 취하지 않았다면 넘 어진 학사로군” 이라며 놀리셨다고 합니다.

<오해받은 정약용> 어느 날 정조는 정약용에게 초시(과 거시험)의 1소 감독관으로 임명합니 다. 그런데 감독관으로 임명된 뒤 정 약용이 초시에 남인을 대거 합격(53 명)시켰다는 소문이 돌게 되죠. (알 다시피 정약용은 남인이었지만, 당시 남인들은 노론에 밀려 거의 힘을 쓰 지 못해 합격률이 저조했습니다) 이 런 소문이 파다하다 돌자 당연히 정 조의 귀에도 들어갔고, 정조는 정약 용에 대한 배신감에 다시는 감독관도 시키지 않을 것이며 관직도 주지 않 겠다고 큰 화를 내며 하옥을 시킵니 다. (물론 이것은 오해였고 정약용은 자신이 왜 하옥되는지도 모르고 하옥 됩니다.) 며칠 뒤 사실을 알아본 정조 는 정약용이 감독관으로 있었던 제 1 소에 합격한 남인은 3명뿐 나머지 5 0명은 정약용과 관계없는 일임을 알 게 되어 바로 풀려나 다시 감독관이 됩니다. (다시는 안 시킨다고 하시고 서는 금방)

그리고는 정약용에게 미안하셨던 정 조는 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궁안 에만 있는 도서관을 구경시켜 주시고 며칠 뒤에는 연회에도 데리고 가십니 다. 그런데 이 연회에서 마저 술을 권 하신 정조 때문에 괴로웠던 정약용은 이날은 많이 취하여 아마 필름이 끊 겼던 모양입니다. 학문을 함께 주고 받는 친한 형이었던 이익운이 임금에 게 올렸던 시를 자기에게도 적어 보 내달라고 하자 이런 서찰을 보냅니다 . <....어제 부용정(芙蓉亭)에서 임금 님 명령에 응하여 지은 시는 취중에 써 올렸기 때문에 어떤 구어(句語)를 사용하였고 어떤 모형의 글씨를 썼는 지 생각이 나지 않으며, 하룻밤을 자 고 나니 벌써 까마득하게 잊어 기억 나지 않으므로 적어서 보여드릴 길이 없습니다....>

<사족 - 유배간 신하들> 이건 메이의 가시에도 나왔던 부용정 (창덕궁의 후원 안에 있는 정자- 맞 은편에 규장각이 있음)에 관련된 일 화입니다. 늘 신하들을 긴장시키늘 걸 즐기신 우리 정조임금님 (기별도 없이 갑자기 규장각에 나타나 시험을 보고 직접 채점까지 하셨었다고 하죠 ) 아무튼 시 짓는 걸 좋아하는 정조는 신하들에게 운을 띄우고 정해진 시간 에 시를 못 지으면 배에 태워다가 부 용지(부용정 옆에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다 유배를 보냈다가 잠시 후 풀어주곤 하셨다 합니다.

<벼슬길에서 도망가려 했던 정약용> 정약용은 정조에게 더이상 상으로 하 사받을 책이 없을 정도로 좋은 성적 을 낸 유생이었는데 하사받은 책 중 마지막으로 받은 책이 <병학통>이었 다고 합니다. 무신들이 봐야할 책을 ( 군사들을 다스리고 지휘하는 훈련서 ) 받아 혼란스러운 정약용에게 정조 는 그대에게 장수의 재주도 있다 생 각되니 언젠가 다방면에서 활약할수 있도록 무예서를 익히라 하십니다. 본인을 얌전한 선비라 생각했던 정약 용은 기겁을 했고, 자신을 무신으로 키우려는 정조 때문에 고향에 은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하네요. (실제 정조 는 규장각 학자들에게 다방면에 걸친 서적(문신인 그들에게 무예서에 악 론(樂)까지)을 읽고 능통하도록 지시 했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다 본인같 았다고 생각했나봐요~ 못하시는 게 없었던 정조임금님. 신하들에게까지 본인처럼 되라고 무리한 요구를.

<괴로웠던 정약용 - 무신은 싫어요> 정조는 정약용에게 무신의 재능을 발 굴해 내려고 애쓰셨지만 안타깝게도 정약용에게 무신의 재능은 별로 없었 습니다. 규장각 학자들에게도 활을 주시며 연습을 시키시는데 하루에 2 0순(100개)을 쏘아 매 순(5개)마다 한발씩은 맞힌 뒤에야 풀어주겠다 명 하십니다. 뭐. "문장은 아름답게 꾸밀 줄 알면서 활을 쏠 줄을 모르는 것은 문무(文武)를 갖춘 재목이 아니다" 는 말씀과 함께 정약용은 활솜씨가 무지 서툴러 맨날 남아서 또 20순을 연습해야만 했다죠 (나머지 공부) 그 의 일기에 "나는 규장각에 소속이 되 어 내원에서 활쏘기를 시험할 때마다 늘 맞추지 못하여 벌을 받았다"는 구 절이 나오는데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 (말도 잘 못타서 사람들이 모두 웃 었다고 하네요.)


소울메이트같다 걍 군신관계를 넘어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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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시인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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