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끄적거려본 글을 옮겨봅니다.
날아다니는 분들에 비하면 기술적인 면이나 감각적인 면이나 한없이 부족하지만, 혹시나 도움되실 분들이 있으면 좋겠네요.
1. 후지필름 F10 (수동 없는 디지털 똑딱이) - 약 3개월 사용
첫 디카였죠.
이거 이전에 필름 SLR카메라를 사용해 보고 그 느낌과 개인적인 이유로 사진을 시작하게 되면서,
당장 돈은 없는데 카메라는 쓰고 싶고 폰카는 쓰기 싫어서 사게 된 카메라입니다.
일단 사진이라는 것 자체에 도전해 보고, 나중에 으리으리한(!) 카메라를 사면 서브로 써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요즘 똑딱이와는 달리 수동 기능도 딱히 없는 진짜 순수한 똑딱인데, 모임같은 행사 등 일상스냅용으로 썼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으로 일부러 어떤 장소에 가본 경험을 제공해 주었어요. 사용 기간은 짧아 기억에는 조금 덜 남았지만, 이걸로 찍은 사진 중에 진짜 소중한 추억이 있어서 기기에 대한 기억보다는 결과물에 대한 기억이 더 크게 남는 카메라입니다.
하지만 금방 처분했어요. 왠지 치킨이 먹고싶은데 배달 말고 편의점 냉동 산 기분이었나봐요.
2. 미놀타 x700 (수동 필름 카메라) - 약 1년 사용
사진 수업용으로 샀어요. 친구들이 이걸 추천해 주길래 그냥 숭례문 가서 샀어요. FM2가 유명하다길래 그걸 사고 싶었으나, 가격이 비쌌던지라...
파인더가 참 좋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더 나중에 나왔던 아래 카메라들은 파인더로 피사체를 보는 느낌 만으로는 이 카메라만 못하더라고요.
셔터막 고장 때문에 처음으로 카메라 병원도 가봤죠. 을지로 보고사... 현상소 좋은 곳을 찾겠다며 충무로도 돌아다녀 보고요.
렌즈를 바꿔낄 수 있으니 2개 이상의 렌즈를 처음으로 가져봤어요. 무작정 망원줌과 광각렌즈 썼어요. 하지만 자연스레 50mm만 쓰게 되더라고요.
마침 디카도 같이 갖고 있던지라 근 1년 간 바디를 2개 써봤어요. 여행도 가고, 과제도 하고, 모델도 찍으러 가봤죠.
군대 때문에 팔았어요.
-사용해본 렌즈
ㄴSamsung MD 50mm F1.4
ㄴSamsung MD 70-210mm F4
ㄴMinolta MD ROKKOR 28mm F2.8
3. 니콘 D1H (1.5배 크롭 DSLR) - 약 4년 사용
첫 DSLR입니다.
방학 때 알바를 뛰고 나서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카메라 중에 가장 높은 급의 카메라를 샀어요. 화질 말고 기계적으로 가장 높은 급으로... -_-
위에 필카랑 이걸로 사진 수업도 들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열심히 찍었어요. 기기적인 완성도나 편의성 만으로는 여지껏 써본 바디 중 가장 좋았어요. 지금 카메라는 와이파이도 되고, 액정도 휘고, 라이브뷰도 되고 너무 편한데, 왠지 모르게 살 때부터 손에 착 붙는 느낌이 드는 건 이것과 A700뿐이네요. 비록 학생 때라 돈이 없어서 이 카메라와 함께 한 나날의 99%는 쩜팔로 보냈고, 나머지는 반사나 2870이나 탐론 망원줌같은 렌즈들을 써봤어요. 지금 들어보면 내 운동부족을 반성하게 되는 무게네요(...).
이 카메라는 제가 쓸 때도 그닥 화질이 좋진 않았어요. 후보정 좀 할라치면 어찌나 무너지던지... 과제로 8인치 인화까진 해봤는데 괜찮았어요.
지금 모니터로는 원본도 한 화면에 꽉 안차네요. 프로세싱 같은 면은 폰카랑 비교해도 떨어지지만 그래도 깡패는 판형이네요.
가끔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면 부족한 점도 보이고 추억도 생각나곤 해요.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외국에 나가봤고, 이 카메라를 쓰면서 사진을 좀 진지하게 해보고 싶었어요.
-사용해본 렌즈
ㄴAF NIKKOR 50mm F1.8 D
ㄴ기타 빌리거나 한 번 마운트 해보고 팔았던, 써봤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렌즈들
4. 소니 A700 (1.5배 크롭 DSLR) - 약 2년 사용
취직했어요. 지갑 두꺼워졌어요. D1H 아는 동생 줬어요.
근데 시간이 없어요. 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 샀어요. 이전 카메라가 카메라다 보니, 세로그립 없으면 불안해서 안되겠어요. 조작성과 신뢰도는 D1H급이어야 하고, 화질도 좋아야 했는데 아직 그 정도 여윳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알아보다가 이걸 샀어요.
기계적인 조작은 이전 바디보단 못했지만 화면은 이전보다 많이 발전했고, 무엇보다 예전 바디에 비해 동일 판형에 화소 수가 무려 6배나 뻥튀기되었네요. 이미지가 확 커지고 후보정을 할 때도 더욱 관대한 면을 보여줘서 꽤 마음에 들었어요. 플래시도 샀어요. 삼각대도 샀어요. 친구 결혼식도 찍어줬어요 이걸로. 근데 노이즈는 예전이랑 큰 발전이 없더라고요 어째.
시간이 지나 렌즈를 더 구할 여유가 됨에도 이상하게 칼번들만 끼고 다녔어요. 24-120 화각인데 정말 좋더라고요. 줌렌즈가 비록 최소/최대화각 위주로 쓴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렌즈 살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중간에 사고가 나서 찍은 사진의 반을 날려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D1H 말기부터 시작됐던 권태기가 이때도 완전히 나아지진 않은 것 같았어요.
-사용해본 렌즈
ㄴZeiss Vario-Sonnar T* DT 16-80mm F3.5-4.5
5. 캐논 EOS M (1.6배 크롭 미러리스) - 3개월 사용
아래 카메라를 먼저 샀고, 이건 그 유명한 대란 때 샀어요. 막 엄지그립 핸드그립 아마존에서 사고, 22mm에 필터 씌우고 후드 씌우고 엄청 택틱컬하게 다녔어요. 그리고 500컷 찍고 팔았어요.
전 세컨이 안맞나봐요. 한우물만 파야 하나 봐요. 하지만 22mm는 계속 생각나요.
-사용해본 렌즈
ㄴCanon EF-M 22mm F2 STM
6. 소니 A7 (풀프레임 미러리스) - 현재 보유 중, 약 1년 반째 사용 중
또 사진 생활이 뜸해졌어요. 이제 사진이란 취미를 접어볼까도 했었어요.
인센티브 받았어요. 그리고 우연찮게 미러리스가 풀프레임으로 나온다네요. 세로그립도 있대요. 바로 샀어요.
X700의 디지털버전 쓰는 기분이에요. 신뢰도는 그것보단 낮았지만. 막 폰으로 카메라 만지고 카메라에 앱 깔아쓰고 신세계에요. 액정이 틸트되니까 이제 언더로 찍는다고 막 엎드려 절하지 않아도 되요. 좋아요.
USB 꼽아서 사진 빼내려 하면 폴더가 날짜별로 분리되어 있어요. 보조밥통으로 카메라 충전도 되네요.
급여계좌 거덜낼 기세로 렌즈 많이 사고 팔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한 카메라로 10000컷 이상 처음 넘겨봤어요. D1H는 몇 년을 써도 파일 세어보니 10000까진 안되네요. 아쉬워요.
이걸 사면서 내 화각, 내 색감 같은 내 스타일에 대해 좀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사용해본 렌즈들
ㄴZeiss Sonnar T* FE 55mm F1.8
ㄴZeiss Vario-Tessar T* FE 24-70mm F4 OSS
ㄴZeiss Loxia Planar 2/50 T*
ㄴSigma APO 70-200mm F2.8 EX DG OS HSM
ㄴSony 100mm F2.8 macro
ㄴSony FE 28-70mm F3.5-5.6 OSS
ㄴMinolta M-ROKKOR 40mm F2
ㄴSamyang Polar 14mm F2.8 ED AS IF UMC
ㄴSamyang Polar 85mm F1.4 AS IF UMC
음... 이런 카메라랑 렌즈들 써봤어요.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렌즈도 샀다팔고 카메라도 샀다팔고 하면서 감가상각때문에 돈도 많이 깨졌네요. 다 수업료라 생각해요.
막 카메라랑 렌즈 샀다팔고, exif 다 뜯어서 내가 어떤 화각 썼는지 뜯어보다 보니 카메라를 살 땐 이런 것들 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카메라에 돈을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를 사세요. 가장 덜 실망할 거고, 수틀려서 중고판매 하더라도 유리할거에요.
- 일단 내가 카메라를 사서 찍고 싶은 종류의 사진들을 검색해서 보세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같은 SNS들 둘러보세요.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 보는 것도 어떤 카메라를 살지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 원하는 성능을 충족하는 카메라가 둘 이상이라면, 가장 작은 카메라를 사세요. 자주 나가서 많이 찍어야 하니까요.
- 크기나 무게가 중요하시다면, 기종을 정하고 사시기 전에, 마트나 전시장 같은 데서 직접 만져 보세요.
- 어두운 곳에서 많이 찍을수록, 손떨방 같은 특정 사양을 보든가 큰 센서를 가진 카메라를 사세요.
- 일단 아무거나 사서 검지손가락 굳은살 배기도록 찍어보고, 그 다음바디는 내가 주로 찍었던 사진을 찍기 최적화된 성능을 가진 카메라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중고거래에 개의치 않으시면 일단 손에 집히는 거 사보세요.
- 색감에 대한 얘기는 후보정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시거나 배우실거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돈없다고 내수/병행 제품 사지 마세요. 정신건강에 그닥 별로였습니다.
- 그리고 항상 메모리, 필터, 가방 등등 악세사리 값이 상상외로 많이 든다는, 경우에 따라 악세사리 값이 카메라 만큼, 혹은 카메라 값보다 더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예산을 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