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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탈출 후기 - 2(스압)
게시물ID : humorbest_11004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또랑이아빠
추천 : 71
조회수 : 18749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7/27 16:45: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7/24 19:50:44
이어서...
 
퇴원후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3년 동안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무기력상태... 자살생각은 거의 안들었지만 딱히 살아야할 이유도 찾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잘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제가 조금씩이라도 다시 자리를 잡기 원했고, 저는 아들로써 그 기대에 부응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결국 미뤘던 대학을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복학하고 남은 학점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처럼 15~18학점을 모두 듣는게 무리라고 생각해서 한학기에 9학점씩 나누어서 추가학기까지 다녔습니다. 저희 학교는 졸업하기위해 3품이라고 외국어시험, 컴퓨터 자격증, 봉사활동을 해야했습니다. 추가로 전공 졸업시험도 봐야했지요. 학교도 다시 다니고 컴퓨터 자격증도 따고 봉사활동도 조금씩 하고 겉으로는 많이 나아진것 같았지만, 사실 달라진건 없었습니다. 단지 부모님께 죄송해서 억지로 다니기는 했지만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공부안해도 MOS 취득하는데 무리 없었습니다. 학점은 거의 학고였구요 다만 1,2학년 성적이 좋아 졸업평점 3.3은 겨우 만들었습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구요 졸업시험도 공부를 했다기 보다 그냥 옛날 실력으로 넘겼습니다. 커트라인 약간 아래였지만 사정을 아는 학과장님이 눈감아 주셨습니다.
 
의욕 없는 건 여전하고 정말 힘들고 하기 싫고 우울해도 가족들에게 더이상 못난 모습 보이기 싫었습니다. 물론 전보다 조금은 치료가 되었기에 그렇게라도 할수 있었겠죠. 운전면허도 따고 아버지께서 정년퇴임후 운영하시던 편의점일도 도왔습니다. 밝은 모습 보이려고 오토바이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병원에서도 좋은 발전이라고 칭찬받았습니다. 가족들도 물론 좋아했죠. 그런데 저는 솔직히 나아진 걸 못느꼈습니다. 그냥 하기는 하는데 참 재미없고 하기싫고 힘들다...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명목상의 할일이 점점 줄었습니다. 졸업요건도 어느 정도 갖추었고 남은건 토익이었는데 이건 정말 꾸준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편의점일은 계속했지만 여행도 굳이 반복해서 가고 싶지 않았고, 할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정말 무언가 직업을 선택해서 준비할 때가 된거죠. 하지만 제 머릿속을 지배하는 무력감은 여전했고 해도 안될것이고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당시의 일상은 그냥 아침에 한 10쯤에 일어나서 알아서 아침먹고 tv보다가 다시 자고 4시되면 편의점으로 가서 밤 11시까지 일하고 집에오면 판타지 소설 같은거 읽고 다시자고 이정도였습니다. 1주일에 한번씩 병원가서 짧게 상담받고 약타오고...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해서 110kg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편의점 단골손님이신 할아버지하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여대 교수였던 분인데 말투도 인자하고 지식도 깊고 아버지하고도 친하셔서 신뢰가 가는 분이었습니다. 제 사정을 잘알고 계신 분이었는데. 제가 약물때문에 그렇게 무기력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다 나은 건데 조울증 약물의 특성상 우울감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사람이 조울증 환자 약을 먹으면 우울증 걸린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희대의 개소리를 믿어버렸습니다...그럴싸했습니다. 저도 사실 예전처럼 발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일도 하는데 의욕이 없는 게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사실 병이 아니라 내가 게으른 것아닌가. 병이 있긴 했나? 내가 쇼한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뭔가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년 반만에 약물치료를 자의로 중단했습니다...
 
약물을 끊었는데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감정기복이 심해진 것도 아니고 사고도 안쳤습니다. 심지어 공황발작도 없었습니다. 무기력증이 나아진 것도 아니지만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달정도 약을 안먹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습니다. 편의점에 일하러갔는데 아버지께서 청소상태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 언제까지 계속 아무것도 안할래? 한마디 하셨습니다. 원래 자주 하시던 핀잔이었습니다. 그냥 듣고 넘기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울컥하는 감정이 주체가 안되었습니다. 아버지께 큰소리로 화를 내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마포대교로 갔습니다. 뛰어내리려는데 태워주신 택시기사분이 잡아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택시를 타고 다니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엄청 혼나고 도로 입원했습니다. 한 2주? 길지는 않았습니다만 병원을 서울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새로 배정된 담당선생님께 엄청혼나고 치료받았습니다. 했던 검사 또하고 약물도 다시 투약했습니다. 저도 이제는 약은 끊지 말아야지 깨달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100%FM대로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선생님의 권유로 일하는 시간을 아침으로 옮겼습니다.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일하던 것을 오전 5시부터 오전10시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제대로 시작했습니다. 물론 전에도 병원 권유로 했었지만 이번에는 제 의지로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지시했던 것들을 억지로 양만 채우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식단 관리를 철저히하고 술은 완전히 끊었습니다. 물론 병원 다니기 시작했던 2011년부터 일주일에 한두병 먹는 수준으로 줄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끊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극복수기나 조울증 환자들의 자서전 읽는 것도 중단했습니다. 음악을 항상 들었고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하루 일과는 5시에 일어나서 10시까지 일하고 11시부터 1시까지 운동했습니다. 2시쯤에 점심을 먹고 강아지 산책을 1시간 정도 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꼭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했고 남는시간은 그냥 놀았습니다. 판타지소설을 보거나 영화를 봤습니다. 두시탈출컬투쇼와 볼륨을 높여요 꼬박꼬박 들었고 예능도 빠지지 않고 챙겨봤습니다. 7시쯤 어머니가 퇴근하고 들어오시면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취침시간은 항상 10시였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흘렀습니다. 뭐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달라졌습니다. 살이 빠져서 원래 몸무게가 되었고 편의점일도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헬스장에서 만나는 분들과도 친해졌고 오토바이 여행도 보여주기가 아니라 가고 싶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2종소형 면허를 따고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요즘 어떠냐는 말과 함께 슬쩍 다시 나이가 있는데 뭐라도 해볼 생각 없니? 하고 물어오셨습니다. 전의 사건이 있다보니 정말 조심스럽게 묻는 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딱히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고 싶은 직업은 없고 그녀와 헤어진후 결혼 생각도 없고 혼자살기 좋고 만만하면서 나이 구애받지 않는 직업... 남들 다하는 공무원 나라고 못할 이유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한 공부...감상은 뭐 이리 쉬워? 입니다. 건방진게 아니라 진짜 그동안 겁먹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재밌습니다. 토익도 며칠전 800점을 넘겼고 성적도 잘 오르고 있습니다. 헬스장 사람들, 2종소형 딸때 학원동기들 그리고 옛날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SNS도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살만합니다. 조증과도 다르고 우울증과도 다릅니다. 짜증도 나고 힘들 떄도 있고 하지만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조울증 논문이나 여러 전문가들이 조울증의 원인을 많이 이야기 합니다. 정신분석치료나 심리학 만화에서도 원인을 해결하면 마법처럼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병원에서 원인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번 물어봤지만 의사선생님은 원인은 복합적이고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 치료의 초점이 다르다고 합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원인에 대해 강조해서 저는 못미더웠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원인을 이것저것 따져봤습니다.
 
유전? 일수도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조울증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트라우마? 일수도 있겠죠. 군대를 서울 4기동대에서 복무했는데 가혹행위 참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에는 여자친구 중절수술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었고 충격컸습니다. 게임중독? 일수도 있습니다. 던파를 했었는데 하루에 한 4~5시간 했던 것 같습니다. 알콜중독? 유력합니다. 대학때 하루에 1병씩 마시고 살았습니다. 술에 쩔어있었죠...아버지께서는 항상 타이레놀 과다복용도 이야기하셨습니다. 제가 숙취해소용으로 타이레놀을 항상 먹었기 때문에 그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취업스트레스? 도 유력하죠...대학생이 이거 안달고 사는 사람 어디있습니까?완벽주의적인 성격탓일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자꾸 캐묻는 저의 질문에 의사선생님이 그럴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원래 강박지수가 높다고 하셨습니다. 뭐 그럴수도 있죠.
 
원인이 뭘까요? 이중에 하나일수도 있고 아니고 다른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알면 어쩝니까? 뭐 달라집니까? 원인 제거할 수 있습니까? 지난일인데... 저는 아직도 왜 제게 조울증이 생긴건지 모릅니다. 24살의 저는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과톱이었고, 국제통상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토익900점에 서울시 해치문학상 금상, 당진군 정책논문대회 은상 수상했습니다.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가 있었고 교우관계도 원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죽을만큼 힘들었습니다.
 
31살인 지금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백수고 올해 겨우 외국어점수 제출해서 대학 졸업할 겁니다. 공시생이고 편의점 알바생입니다. 친구도 적고 연락하는 사람은 헬스장 아저씨들과 오토바이 친구들 그리고 몇몇 옛날 친구들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하고 살만합니다.
 
치료과정에서도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무기로 모든 일을 지레 포기했습니다. 졸업시험도 그 핑계로 통과했고 수업도 결석많았지만 병핑계로 패스했습니다. 취업도 당연히 안될것이라고 포기했고 부모님이나 주변인들의 한심하다는 시선도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방패로 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병인가? 내가 원래 이런사람인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어차피 나는 능력도 없고 목표도 없는 쓰레기라는 생각을 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저는 병이 맞습니다. 모든 일련의 생각도 우울감에 기초한다고 여겨집니다. 지금도 약을 먹습니다. 앞으로도 먹을 겁니다. 완치? 나아도 다시 생길수 있습니다. 전 의사선생님이 먹으라면 죽을 떄까지도 먹을 겁니다. 뭐 어떻습니까? 약먹어도 잘만 살면되지. 좋아진 이유도 모릅니다. 운동을 해서? 강아지를 키워서? 아침으로 시간을 옮겨서? 약을 먹어서? 가족들의 배려덕에? 공부가 잘되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TV를 켜면 항상 대단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무일푼에서 대기업을 이룩한 사업가, 장애를 달고도 하루 20시간씩 일하면서 사는 철인 이런거아니면 막막한 현실이야기입니다. 취업안되고 자살하고 경쟁이 100:1에다 엄청난 부채 해도 안되는 사람들 암울한 현실...
 
 조울증 극복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노력으로 이겨내고 엄청 체계적인 시스템하에서 치료를 받고 아니면 무슨 종교적인 단체를 만나서 기적처럼 변한다던가, 몇년씩 고생하며 인생다 망가지고 무너진 상태에서 은근과 끈기로 이겨냅니다...글쎄요 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잘 쉬고 규칙적으로 살았습니다. 시간은 정말 많이 걸렸지만 결국 좋아졌습니다. 다른 병들처럼 조울증도 그냥 병입니다. 약잘먹고 휴식이 필요하죠. 
 
진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별거 없습니다. 평범한 삶은 그냥 평범합니다. 힘든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살만합니다. 그러니까 살죠... 저는 공무원시험 떨어져도 살겁니다. 뭐 어때요 그냥 오토바이 면허 살려서 택배일 하던지 아니면 편의점 계속하죠 뭐 그래도 행복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습니다.
 
출처 마저 해야겠어요 똥싸고 뒤안닦은 느낌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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