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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총장 앞에서 양머리하고 있었던 ssul
게시물ID : humorbest_11068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대리
추천 : 70
조회수 : 14807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8/12 12:59:57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10 00:48:02
얼마전에 일하다가 너무 더워서 흐르는 땀을 주체할수 없어서 수건으로 양머리를 하고 일을 했었다
 
이게 얼마만에 해보는 양머리 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거의... 9년만인것 같았다
 
 
그래서 풀어보는 나의 썰~
 
 
 
 
 
 
 
때는 2006년 여름
 
모 사단의 모 연대본부 예하 직할 ㅅㅅ중대에 상병으로 있을때의 이야기 이다...
(원래는 보병사단이었는데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뀌었고 중대급 수색은 없어지고 대대급 수색만 남아서 족보없는 군대 나온셈이 되었다...)
 
우리부대는 한참 시끄러웠다
 
대령을 달고 처음 연대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우리 연대장 서모 대령은 육사 수석졸업이후 지금까지 자기가 걸어왔던 엘리트 코스에서 처음으로 급코너길을 만난듯 했다
 
군단급ftx 훈련을 나갔더니 옆 지원중대에서 선임의 폭언 욕설 및 가혹해위, 폭행에 참다못해 화장실을 간다고 나간 이등병 한명...
야산에 대충 만들어놓은 화장실이 마음에 안들어서 문득 집에 있는 화장실을 가고싶어였을까? 
그 이병은 단독군장 차림으로 그대로 무장탈영을 하였고 본 훈련전 cpmx를 하던 우리연대 전체 병력 약 천여명은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그 병사를 찾기위해 인근의 야산을 전부다 헤집고 다녔고
레토나를 타고 확성기를 들고 말하던 연대장의 눈물섞인 "김XX이병아 다 이해한다 일단 돌아오기만 해라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절대로 너 제대하고 문제생기지 않게 육군교도소 안가게 만들어주겠다" 라는 말과 그 이병의 부모님까지 확성기를 들고 아들을 찾은 덕분이었을까
다음날 해가 뜨기전에 김이병을 찾을수 있었고 꿀같은 휴식은 개뿔 해가뜨자마자 cpmx를 나가야했고 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존나 쿨한 우리 연대장은 약속대로 육군교도소를 보내지않고 14박15일짜리 영창을 한 다섯번 보냈다던가????)
 
그러곤 훈련이 끝나고 얼마후 옆 부대에서 휴가나간 이등병이 미복귀... (약 보름후 잡혔고... 이 병사는 우리중대 1소대로 전입오게 된다...)
 
그리고 옆 3대대에서 근무중 이탈 후 소나무에 목을 매달고 가버린 병사 한명...
 
그리고 1대대에서는 한 분대가 포상을 받아서 분대외박을 나갔고 그 소대의 부소대장 중사 한명과 다같이 인근 한탄강에서 고기구워먹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병사 한명이 약간 취한채로 물놀이를 하다가 그대로 떠내려 가버렸다...
 
그렇게 인생에서 잘 닦인 포장도로 직진길을 무탈하게 오던 우리 서모 대령은 3부합동조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끊이지않고 몇건 더 발생하였고... 5부합동조사를 나온다는 소문을 듣게된다...
(5부 합동조사는 지휘관이 옷벗을 확률이 매우 높다...)
 
육사 수석졸업에 나름 엘리트 코스인 우리 연대의 연대장을 맡고있고 앞으로도 계속 잘 되리라 생각했던 그는 열심히 잔머리를 굴린다
 
그때 즈음 해서 강원도 평창은 태풍으로 인하여 매우 많은 피해를 입었었고 우리 연대장은 연대를 모두 들고 뜨는 계획을 한다
 
이름하야~~~~
 
 
KakaoTalk_Photo_20130626_2236_46_437.jpg
 
 
 
 
평창 수해복구 작전!!
 
전역임박자, 신병, 휴가자 예외없이 그렇게 우리 연대인원은 모두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평창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가 내 전역 100일 정도 남았을때였다...
 
버스를 타고 평창으로 가서 마을회관같은곳에 중대별로 숙식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대대별 중대별 소대별 분대별로 다들 흩어져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유실된 다리나 도로 복구작업 및 포크레인이 하는 작업을 돕는일, 하천 다리에 걸린 쓰레기들 치우기, 토사가 유입된 가정집에 가서 흙 치우기 등등
젊은 장정들이 할 일들은 매우 많았다
 
옆 소대 동기는 인근 마을의 가정집에 흙 치우러 갔다가 마을 이장님과 막걸리를 한잔 걸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했고 다른 동기는 어느 동네의 시장같은 곳에서 하루종일 물만 뿌렸느니 했었다
 
11.jpg
(대략 이런모습보다 훨씬 처참... 그리고 작업도구는 빗자루와 삽 두가지뿐.....)
 
 
 
 
 
정작 나는 우리 분대와 소대장까지 달고 포크레인이 하는 작업을 도왔다
 
사실 할일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1톤마대자루를 우리가 잡고 입구를 벌리고 있으면 포크레인 아저씨가 흙을 두번 담았고 그러면 우리가 그걸 포크레인에 있는 고리?같은거에 걸어주면 되는거였다
 
그러면 그 1톤마대자루를 포크레인 아저씨가 하천옆에 유실된 곳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33.jpg
(약간 이런느낌?)
 
 
 
 
 
30년 경력이라는 포크레인 기사님은 정말 베테랑이었다
 
약 5미터 높이의 하천을 60도 경사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자유자재로 오가며 유실된 길을 쌓아갔다
 
사람 100명보다 포크레인 한대가 훨씬 더 많은 일을 빨리 해내는것 같았다
 
이 작업을 3일쯤 했었던것 같다
 
그리고 대략 5일째? 정도 되던 날이었던것 같다
 
우리 분대는 어느 하천아래에 떠내려가다가 걸린 나무가지와 쓰레기 등등을 치우는 작업을 했다
 
난 병장이고 내가 하는일에 태클걸사람도 없었고 날씨도 덥고 하천에서 작업을 해야해서 핑크색 수건을 양머리로 해서 쓰고 작업을 하고있었고... 그날뿐만 아니고 그 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그 핑크색 수건이 보급으로 나온이후 계속 양머리를 하고 일했다
 
물은 여전히 흙탕물이었고 신고있던 전투화는 물론 전투복까지 다 젖어가며 작업을 했고 어느정도 일을 마무리하고 옆에있던 민가 수돗가에서 흙탕물로 젖은 옷을 입은채로 물을 뿌려가며 씻었고 다른곳으로 이동하기위해 잠시 앉아서 쉬고있었다
 
우리 소대장은 이제 임관한지 얼마안된 신임소대장이었고 나이도 꽤 많았고 매사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각 분대장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고 많이 배우려고 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나와도 매우 친했다
 
그렇게 나와 소대장이 차량을 기다리며 한참 노가리를 까는 도중
 
저~~~~~~~~~ 멀리서 경례소리가 아주크게 들렸다
 
돌켝!!!!!!!!!!!!!
 
 
 
 
여기 일대의 큰 길에는 헌병들이 도로지휘를 위해 간간히 배치되어 있었고
 
나와 소대장은 뭐 사단장이라도 오냐? 왜이리 크게 경례를 하지? 하는 이야기를 했다

222.jpg
 
 
 
그런데..........
 
 
 
 
 
 
 
 
레토나 몇대가 오는게 보이고.........
 
 
 
 
 
 
 
 
 
 
 
 
 
 
 
 
 
 
 
 
 
 
 
 
 
 
 
 
 
 
 
 
레토나.jpg

 
 
 
 
 
 
쉬벌.............
 
 
 
 
 
 
 
 
 
 
 
 
 
 
ㅋㅋㅋ.jpg
 
 별이 다섯개  가 아니고..........네개.........                       ㅈㅅㅇ;;;;;;
 
 
 
 
 
별 4개 레토나를 선두로 레토나 세대 오고있었음..........
 
 
 
소대장과 우리분대는 기겁하여 일렬로 서서 경례를 하였고 레토나가 지나갈때 까지 경례자세로 있었다
 
맨앞 레토나에 타고있던 김장수 육참장, 그 뒤에 레토나에 3군사령관, 그뒤에 우리 사단장과 뒤에 짐짝처럼 실려있던 우리 연대장까지....
 
육군본부같은데서 근무하는게 아닌 우리는 사단장을 제외하고는 별을 볼 기회도 잘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도합 10개가 넘는 별들이 지나가는 레토나를 보고있었고..........
 
나를 옆눈으로 흘겨보던 우리 소대장은...............
 
"야 씨발 너 양머리........." 라고 나즈막히 말했다..........
 
333.jpg
 
 
 
 
 
 
 
 
아차.........
 
 
난 아까 작업전에 하고있던 양머리를 그대로 한 채로 경례를 하고있었다..................
 
"씨발 X됬네........."를 중얼거리며 레토나가 지나가길 기다렸고
 
다행히 목적지는 더 먼곳인지 우리를 지나갔는데.........
 
세번째 레토나 뒤에 짐짝처럼 있던 우리 연대장은 나를 노려보며 갔다................
 
111.jpg
 
 
 
 
 
그렇게 심란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작업지로 가게되었고
 
이거 씨발 양머리했다고 설마 영창가는 그런 X같은 일은 없겠지? 를 중얼거리며 일을 하는둥 마는둥 시간을 보내고 마을회관으로 복귀를 하였다
 
그날 저녁.....
 
연대장이 우리 중대가 있는 마을회관에 왔다

그러고는 사자후를 외친다!!
 
 
"야 아까 양머리 한 새끼 누구야!!!!!!!!!!!!!!!!!"
 
 
나는 아 올게 왔구나... 하고 병장 장대리 하고 관등성명을 외쳤다
 
연대장은 "야임마 니가 임마 어? 병장이라고 임마 너혼자 양머리하고 그러면 안되 임마" 라고 말했고
 
이어서 "군인이 임마 어? 통일성있게 할라면 니네분대 다 하던가 임마 어? 아니면 너도 하지말던가 임마 어?" 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우리분대 전부다 통일해서 양머리 해볼까? 라는 말을 꺼냈다가 바로 아래 후임이 "개소리마십쇼" 라는 말에 깨갱했고 그날이후로 나는 양머리를 하지않았다
 
그렇게 우리연대는 1주일정도? 수해복구작업을 하였고 우리연대장은 국방일보에도 실리게 되었고 우리가 평창으로 온 이유인 5부합동조사는 우리부대가 평창에 있을때 했었는지 아니면 그냥 취소된건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일 없었다
 
평창에서 전역일을 두자리숫자에 들어간 나는 다행히 양머리했다고 영창가는 일은 없었고 무사히 제 날짜에 전역하였다
 
우리 연대장도 아마 이후 다른 좋은곳으로 발령을 간걸로 알고있다
 
 
 
 
 
 
 
몇일전 문득 양머리 9년만에 했다가 생각난 썰 끝!!!~~

출처 고난과 역경을 겪었던 파릇파릇한 약 10년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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